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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Apr 29. 2024

너의 인생을 빌릴게

빌려보니 별거 아니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을 잘 안다. 작은 키에 순하게 생긴 얼굴, 부끄럼을 많이 타는 여성. 그렇지만 나는 사실 그렇게 순하지도 부끄럼이 많지도 않다. 굳이 말하자면 그 반대에 가깝다. 나의 수줍음은 남들에게 갖는 무관심덕에 그렇게 비춰졌을 것이고, 순하게 생긴 외모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외모덕을 조금 봤다. 딱히 스펙을 쌓지 않았어도 운 좋게 면접 기회가 생기면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샀고, 배워가며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그렇게 일을 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나는 일이 능숙해질 때쯤이면 싫증이 났고, 한 곳에서 정착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인생이 지루해지는 것이 싫었다. 마치 쳇바퀴만 있는 햄스터 집에 다람쥐를 넣어둔 것 같은 기분이였다. 애완 햄스터 같아 보이는 나는 어쩌면 꽤나 와일드한 야생 다람쥐였을까?


 20대 성인에게 인생의 카테고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직업(진로), 그리고 연애. 나의 직업은 이렇게 갯벌처럼 밀물 썰물이었고, 그 와중에 연애도 했다. 나의 전 남자친구들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그들은 모두 나와는 달리 꽤나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자 “고 스펙”, “고학력자”들이었다. 여기서 좀 더 솔직해 보겠다. 나는 사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꽤나 잘했었고 부모님의 기대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놓아 버림은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느꼈다. 시험 한번 망쳤다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나는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내가 만나는 이성들을 통해 이를 충족시켰다. 나 스스로가 아닌 “그들이 선택한 나”에게 집중했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헤어지고 나보니 나는 그 사람들의 인생에 얹혀 잠시동안 그들의 인생을 빌렸던 것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었고 나의 것도 아니었다.


 또, 멀리서 보면 빛나 보이는 별도 가까이서 보면 그저 돌덩이이듯 사람 사는 것도 다 똑같다고 별거 없었다.멀리서 보았을 땐 좋아 보였던 것들이 양날의 검이 되어 나에게 비수처럼 꽂히더라. 그렇게 한동안 사람을 믿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의 감정을 믿지 않았다. 인간은 그저 호르몬의 숙주일 뿐이기에 죽을힘을 다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나를 통제하려고 해야 내가 이상하는 나의 모습에 절반이라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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