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2일의 헝가리
2018년 당시 첫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나의 모든 기준은 "남들이 좋다고 했던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사촌오빠가 알려준 대로 3개월 전에 항공권을 끊었고, 프랑스 사는 친구가 알려준 가볼 만한 곳을 계획에 넣었고, 유럽여행 가이드북의 목차 그대로 총 8개의 나라를 여행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도 그래서 가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 알아가는 시절이었다.
타인의 추천으로 간 여행지가 싫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세상엔 이런 것들이 있어. 이제 이 중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보렴"
처음으로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 온갖 잡동사니들을 구경하는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레고도 만져보고, 인형놀이도 해보고, 피규어도 구경하고, 팽이도 돌려보고. 모두 재미있는 물건들이다. 직접 가지고 놀아보니 친구들이 왜 이걸 좋아하는지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게를 떠날 무렵, 눈에 아른거리는 장난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여행 취향을 알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사람들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도 알아갔다.
내가 부자 어린이라면 그 모든 장난감을 다 손에 쥐었을 것이다. 시간도 돈도 모두 나의 편인데, 무엇이 두려우리! 이번 주엔 친구가 좋다 했던 코카서스 3국을 가고, 그다음엔 태어나서 한 번쯤, 카리브해 리브어보드(LiveAboard)도 해볼까!
그게 불가능한 서민 어린이는 이번 유럽여행에서 쌓은 경험 덕에 미래엔 마음에 속 드는 장난감을 고르는 눈눈이 생긴다.
마차시 성당(Matthias Church)의 공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The Church of Our Lady)'이지만,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마차시 1세와 관련된 역사가 많아 마차시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자이크 지붕이다. 조르나이 타일(Zsolnay tile)이라는 헝가리 전통 마차시 왕조의 문양이라고. 내부의 스테인글라스가 굉장히 볼만하다고 들었는데, 결혼식이 진행 중이어서 내부에 들어가진 못했다. 세계적인 명소 마차시 성당에서의 결혼식이라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22살이었던 당시에는 성당 입장을 못해서 느끼는 쓴맛만 강했다면 29살이 된 지금의 나는 그들의 인생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들이기에 헝가리 최고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까? 지금까지 잘 살고 있을까? 어디서 어떻게 만난 사람들일까?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짝꿍을 찾아 영원을 약속하는 시기다. 더 이상 남 일 같지 않은 결혼식. 과연 나는 어디서 누구와 영원을 약속하게 될까?
마차시 성당 옆엔 바로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가 있다. 예전에 어부들이 많이 살았어서 어부의 요새라고 불린다고 한다. 관광객들에게는 부다페스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다. 전망대, 그리고 야경의 일부로만 쓸모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보니 창백한 돌로 만든 석상들이 상당히 섬세했다. 이 날따라 흐렸던 하늘 덕에 회색빛 요새를 지키는 돌석상들의 표정이 사뭇 더 엄중해 보였다.
다음은 겔레르트 언덕(Gellért-hegy)으로 향했다. 이 언덕 또한 전망대로 유명한데,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계단이 많은 가파른 곳이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인기 관광명소가 되었나,라는 궁금증은 꼭대기에 올라가니 바로 해소가 되었다. 알고 보니 겔레르트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시타델라 요새(Citadella)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한국인 여행자들은 쓸데없는 고생은 하지 않는다. 어쩐지 계단을 오르면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한국인들이 언덕 꼭대기엔 넘치더라. 이럴 땐 똑 부러지는 한국인들이 새삼 자랑스럽다. (내가 뭐라고)
시타델라 요새는 원래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헝가리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지금은 부다페스트 최고의 뷰 포인트로 유명하다. 땀 흘리며 올라온 보람이 있는 전망이었다.
그리고 유럽여행 23일 차, 처음으로 밤문화를 즐겼다.
체코에서 헝가리로 오는 야간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동행들과 함께 펍에서 칵테일도 마시고, 대형 클럽에 함께 놀러 가서 유럽인들의 '불금'을 체험해 봤다. 클럽 안은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마치 개미 소굴같이 가느다란 길을 따라 자꾸만 새로운 방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취한 사람들이 몸을 부딪혀가며 분노인지 흥분인지 모를 분을 풀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피자를 팔고 있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차분히 대화를 하며 테이블 축구(Table football)를 하고 있었다. 인종차별적 발언도 간간이 들렸다. 한 번은 참지 못하고 그 남자를 붙잡아 야단을 쳤다. 이미 거의 인사불구였던 남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둘러댔다. 동양인 여자로서 조금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늦은 오전, 세체니 온천(Széchenyi Thermal Bath)을 찾았다.
세체니 온천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온천 중 하나다. 헝가리에서 갑자기 웬 온천인가 할 수 있는데, 헝가리는 온천수가 솟아나는 지열 조건이 매우 뛰어나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온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헝가리인들에게 온천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일상에서의 휴식, 치료, 사교의 공간이라고 한다. 특히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의 치유 효과를 민간요법의 개념으로 강하게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목욕탕처럼 때를 미는 공간을 상상하면 안 된다. 야외의 아름다운 네오-바로크식 건물을 감상하며, 수영복을 입고 느긋하게 체스를 두는 곳이 바로 헝가리의 세체니 온천이다.
안경에 김 서리게 뜨거운 한국식 실내 목욕탕에 익숙한 나에게 세체니 온천은 대형 수영장 같았다. 온천은 동양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나에게 새로운 형식의 '사교형 온천'을 소개해준 곳이다.
온천에서 어젯밤 피로도 녹였겠다, 이젠 배를 두둑이 채울 차례다. 부다페스트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라는 굉장한 별명을 가진 맥도널드 체인점이 있다.
1877년에 지어진 뉴가티 기차역(Nyugati Pályaudvar)에 위치한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인데, 무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설계한 회사가 건설에 참여해서 건물의 건축 양식이 매우 웅장하고 고풍스럽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독특하고 예쁜 스타벅스 지점은 더러 봤는데, 맥도널드는 정말 새로웠다. 평소에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대기업인데도 불구하고 그 이름에 먹칠을 하는 퀄리티의 음식에 실망해서 잘 가지 않는 곳이 맥도널드였는데, 이날은 작정하고 전투적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버거 세트와 밀크셰이크, 그리고 치킨너겟을 시켜 총 12,000원이 나왔다.
역시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지점이라 그런지, 패티가 실하고 채소도 상대적으로 신선했다. 전반적으로 간이 세긴 했지만. 맥도널드가 제대로 일을 하면 이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부다페스트의 80%는 야경이라고. 꽉 채운 이틀을 보냈던 헝가리에서 야경을 뺀 나머지 20%에 여행의 8할을 투자한 셈이다.
지금부터가 진짜라니, 비장한 마음을 안고 국회의사당 뒤로 돌아서 다뉴브강(두나강)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7월의 유럽은 저녁 9시는 되어야 노을이 졌다. 해가 하늘을 한바탕 붉게 물들인 후 물러나자, 드디어 부다페스트에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다 성(Buda Castle)과 어부의 요새, 그리고 세체니 다리까지 모두 금빛으로 물들었다. 아니, 도시 전체가 황금빛으로 변했다. 강가를 걷는 사람들조차 이 황홀한 무대의 일부가 된 듯 금빛으로 일렁거렸다.
하지만 이 모든 금빛 무대 중 단연코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강 건너편 국회의사당이었다.
다뉴브 강 위에 마치 거대한 유리 궁전이 떠 있는 듯 영롱했다. 첨탑과 아치, 섬세한 장식들이 수천 개의 전구 아래서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넘실대는 강에 반사된 그의 그림자는 그를 꼭 닮은 황금빛 윤슬을 빚어냈다. 낮보다 밤에 더 정교함을 뽐내는 건물이라니!
분명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도 부다페스트의 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마저 환한 빛으로 밝혔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밤의 도시, 그게 부다페스트였다.
Budapest, Hungary_ Key Word
- Országház (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 Budavári Nagyboldogasszony-templom (The Church of Our Lady of Buda Castle)
- Halászbástya (Fisherman's Bastion)
- Gellért-hegy
- Citadella
- Széchenyi Gyógyfürdő és Uszoda (Széchenyi Thermal Bath)
- Széchenyi Lánchíd (Széchenyi Chain Bridge)
- Duna (Danube R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