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스테이크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by 시옹
3일의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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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 프라하만 가긴 아쉬워 당일치기로 갔었던 근교,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

대표 도시의 근교로 떠나는 여행은 마치 히트를 친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그 감독의 다른 영화도 손수 찾아보는 것과 같다. 대표 도시가 '작품의 정수'를 보여준다면, 근교 도시는 감독의 '숨겨진 매력'을 보여준다.

관광객을 넘어서 탐험가가 된 느낌이랄까. 물론 2018년 탔던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버스는 한국인과 중국인으로 북적거렸지만, 이런 작은 도전들이 모여 볼리비아, 키르기스스탄, 페로제도 등의 먼 나라들도 혼자 여행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한국 어르신들의 찰진 수다와 함께 설악산 입구로 가버릴 것 같았던 버스는 3시간 후 완벽한 날씨의 체스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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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붙은 눈을 비비며 마주한 오렌지빛 마을을 보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저 주황 지붕은 정부가 지원해 주는 걸까?'였다. 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꼭 닮아있었다. 마을 전체가 한 식구인 것처럼. 구시가지로 가는 길에 체스키가 한눈에 보이는 작은 정원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눈에 받고 있었다.

달달한 바닐라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골목을 걸으니 기분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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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4500원에 에곤 쉴레 아트 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를 구경하기도 했다.

에곤 쉴레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1911년경 어머니의 고향 체스키에 머물면서 많은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이 시기에 에곤 쉴레 특유의 자화상과 인물화가 여럿 탄생했다고. 앙상한 몸으로 굴곡된 자세를 취하는 인물들에게서 묘한 척박함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내가 방문한 시간에 다른 관광객들이 아무도 없어서, 그의 공허한 세계관에 더 깊이 빠져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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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블타바강(Vltava River)을 가로지르는 이발사의 다리(Lazebnický most)에 도착했다. 과거 이곳에 이발소(lazebna)가 있었어서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다리 자체는 짧고 귀엽지만 강가 양옆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체스키크룸로프 성(Státní hrad a zámek Český Krumlov)을 올려다볼 수 있는 명소다.

강가에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을 골라 돼지 스테이크와 코젤 맥주를 시켰다.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처음이었는데, 사실 소고기 스테이크가 너무 비싸 어쩔 수 없이 고른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경치 좋은 강가 테라스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혼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는 것. 혼자 스테이크를 주문해 썰어먹는 것. 혼자 맥주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 이 모든 결정과 선택들이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배운 그 어떤 교육보다 빠르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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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프라하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거리를 더 돌아다녔다.

옛날 체스키 크룸로프의 모습을 담은 전시장이 있었는데,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했다. 분명히 대충 만든 것 같았지만 그래서 더 여기 사람들의 진짜 정서와 문화가 보이는 듯했다. 5만 원짜리 고급 레스토랑 전주비빔밥보다 5천 원짜리 동네 맛집 제철비빔밥이 더 한국스러운 것처럼.

요즘엔 인터넷으로 온 세상이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 각자의 세상 속에 살던 시절에 새로운 문화를 접했다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사람들, 그들이 먹는 음식들, 그들이 말하는 언어들. 두고두고 기억되는 조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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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낯선 감정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새로운 것 그대로 느끼고 싶다.

다시는 밟지 못할 수도 있는 이 땅을 기억하고 싶다.

순진하게도, 어리석게도,

앞으로 다가올 기억들에 덮여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Český Krumlov, Czechia_ Key Word
- Státní hrad a zámek Český Krumlov
- MLS Crêperie
- Lazebnický most
- nám. Svornosti 2
- Egon Schiele Art Cen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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