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나의 2017년 한 달간의 유럽여행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끝나는 여정이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여정의 종착지인 베네치아로 바로 넘어가긴 했지만, 며칠의 여유가 있어서 피렌체(Firenze)와 친퀘테레(Cinque Terre)까지 들리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피렌체와 친퀘테레 모두 포기하고 베네치아에만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 여행의 막바지가 되니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피렌체는 친퀘테레를 가기 위한 경유지에 가까웠기에, 하루만 머무는 한국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누가 알았을까, 발만 담갔다 떠나는 남의 나라 남의 도시에서 처음으로 남자의 번호를 물어보게 될지를.
피렌체의 일정은 여느 유럽 도시와 같이 유명 성당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며,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걸작으로 불린다. 산 로렌초 성당 바로 옆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예배당으로 유명하다. 서양인들도 처음 동양으로 여행을 와서 경복궁을 보면 이런 경외감을 느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계해서 지은 건지 감도 오지 않는 정교함이었다.
다음은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물, 산 조반니 세례당과 조토의 종탑,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을 보러 갔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 언덕을 제외한 다른 명소들이 모두 뭉쳐있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기 편하다. 조토의 종탑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피렌체 도시를 조망하고 싶다면 조토의 종탑을 올라가 보는 것도 좋다.
나는 시간이 하루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이 도시에서 미켈란젤로 언덕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이곳을 지나갔다. 어쩌면 나는 운명의 상대(?)를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만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유럽여행 커뮤니티 사이에서 피렌체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고 전해지는 것이 바로 티본스테이크이다.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키아니나(Chianina)라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품질 좋은 소 품종을 재료로 쓴, 최상의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한우가 있다면 이탈리아엔 키아니나가 있는 셈이다. 보기 좋게 뚜렷한 T자 모양 뼈를 중심으로 안심과 채끝 등심 부위를 두껍게 썰어서, 거의 레어에 가깝게 먹는 것이 전통 방식이라고 한다.
1kg이 넘는 거대하고 둔탁한 스테이크가 커다란 검은 철판에 올려진 채 서빙되었다. 동행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시킬 엄두도 못 냈을 사이즈였다. 우리는 사이좋게 고기를 4 등분해서 각자의 개인접시에 담았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입 안에 넣은 티본스테이크는 강한 소고기향을 풍기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이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소고기로 배를 채워본 것은 피렌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일치기 피렌체 일정에도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보물창고"라고 불리는 우피치 미술관에 들리지 않을 순 없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으니 미술 작품 문외한으로서 아는 작품들의 실물을 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대학교 교양으로 들었던 "서양미술의 역사와 감상" 강의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 나를 괴롭혔던 국영수사탐과 같은 과목들에서 최대한 거리가 먼 강의를 듣고자 선택했던 과목이었다. 성적과 스펙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순수히 과목이 주는 흥미로움에 빠질 수 있는 교육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저런, 과목 선택이 잘못된 걸까, 아님 교수님 선택이 잘못된 걸까. 학기 후반부가 될수록 떨어지던 집중력은, 수업 자료 출력을 잘못해서 5만 원이라는 피 같은 돈을 날린 이후 노트북을 장만한 뒤로는 오늘의 수업이 르네상스 시대인지 바로크 시대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바닥났다. 아무래도 서양의 예술은 종교와 연관된 작품들이 많아서 거기서 흥미가 떨어진 게 아니었을까 괜스레 남 탓을 해본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는 길에 들른 베키오 다리.
베키오 다리는 이탈리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 그대로 피렌체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강(Arno River) 위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다. 무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아르노강의 다른 다리들은 모두 폭파시켰는데, 베키오 다리만큼은 당시 독일군 사령관이 다리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특별 명령을 내려 남겨두었다고 한다.
보행자 전용인 베키오 다리 위에는 신기하게도 상점들이 양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내가 들린 해 질 녘에는 길거리 버스킹이 한참이었다. 온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버스킹을 들으며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인종도 나이도 달랐지만, 여행으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나는 분위기에 티끌 없는 웃음을 지으며 몸을 움직이는 그들은 신기하게도 참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다.
이윽고 도착한 오늘의 하이라이트, 미켈란젤로 언덕.
알고 보니 베키오 다리에서 엄청나게 많은 계단을 올라야 미켈란젤로 광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피렌체 대성당부터 오른쪽에 보이는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 그리고 아르노 강을 에워싼 불빛까지 피렌체 도시를 전부 내려다볼 수 있었다.
동행들과 나는 준비해 온 맥주와 납작 복숭아를 주섬주섬 꺼냈다. 오늘 하루도 성실히 여행한(?) 서로에게 축배를 들며 잔을 기울였다. 이런 낭만적인 곳에 혼자 오지 않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몇 계단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이 마치 그 부분만 해상도를 올린 것처럼 갑자기 선명히 눈에 띄었다.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을 보아하니 한국인 남자 같았다.
그도 오늘 이곳을 처음 왔는지, 아름다운 야경을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문득 나는 더 이상 야경이 아닌 그가 야경을 보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에 대해 이만큼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 평소 낯가림이 없는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인이세요? 와 같은 간단한 영어로 시작한 나의 용기는 "야경을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에 반했어요"라는 생전 처음 입에 담아보는 낯 뜨거운 말은 차마 담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다가 "실례가 안 된다면 번호를 물어봐도 될까요?"로 끝났다. 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였다. 머쓱해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죄송하다고 답을 하는 그 덕분에 나는 그제야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대화를 끝냈더라. "좋은 여행되세요"와 같은 별 볼 일 없는 말로 서둘러 마무리지었던 것 같다.
설렘은 폭죽 같이 피었다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그 폭죽이 피었던 순간이 참 즐겁고 행복하고 짜릿했던 것 같다. 여행을 하다 보면 또 다른 곳에서 나의 폭죽을 찾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하게 된다.
Firenze, Italia_ Key Word
-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
-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
-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 조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
- 피렌체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 티본스테이크
-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