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친퀘 테레
33일간의 유럽여행의 끝을 장식할 마지막 장소는 친퀘 테레(Cinque Terre)였다.
친퀘 테레는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 주에 위치한 해안 지역으로,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따라서 몬테로소 알 마레,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의 다섯 개 마을이 여기에 포함된다.
사실 친퀘 테레는 한 달의 유럽여행 중 나에게 가장 '도전'으로 다가온 곳이었다. 여행의 막바지라 체력이 남아있을 지도 미지수였고, 2018년 당시에는 지금만큼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마음에 꽂혔던 장소기에 꼭 내 눈으로 절벽 위 아름다운 파스텔 집들과 그 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를 거쳐, 말 그대로 이탈리아를 가로질러 친퀘 테레의 관문 라 스페치아(La Spezia)에 도착했다.
하루에 다섯 개의 마을 모두 방문하는 게 가능은 하지만, 이탈리아 소도시의 바이브는 그런 게 아니다. 햇살과 바닷바람을 즐기며 게으르고 평온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친퀘 테레 방문에 대한 예의 같았다. 나는 심사숙고 끝에 그중 세 개의 마을에 들르기로 했다.
라 스페치아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첫 번째 마을은 몬테로쏘. 기차 탑승칸부터 한적한 이탈리아 항구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심지어 기차 티켓을 확인하는 직원조차 없었다.
몬테로쏘는 친퀘 테레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해변가에서 해수욕을 하기 딱 알맞는 곳이었다.
아찔하도록 선명한 7월의 햇살이 바다에 꽂혀 부서졌다. 현란하게 빛을 뽐내는 윤슬 덕분에 바다를 바라보는데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이곳은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인들에게도 휴양지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몸매나 남들의 시선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해변에 누워 세상 편하게 휴가를 즐기는 서양인들 사이, 나와 동행들은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잠깐 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다음 마을로 향했다.
다음으로 선택한 마을은 베르나짜였다. 베르나짜는 첫 번째 마을 몬테로쏘에 비하면 매우 작고 귀여운 바다 마을이었다. 작은 해변가에 선박 된 알록달록한 나무배들이 앙증맞았다.
출출했던 나는 친퀘 테레에 오면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해산물 튀김을 사 먹었다. 그중 가장 익숙한 칼라마리(오징어튀김)를 사 먹었는데, 역시 일반적인 칼라마리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나도 해산물 튀김이 유명한 이탈리아 친퀘 테레에서 칼라마리 먹어봤다 “라는 도장깨기식 마인드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히 훌륭한 맛이었다.
짭짤한 튀김옷 덕분에 자꾸만 아른거리는 맥주 생각을 참으며 마지막 마을 마나롤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 나를 이곳에 오게 한 그 궁극의 사진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유럽여행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어줄 그 장소에 도착했다. 마나롤라!
사진으로 접했을 때도 “이런 곳이 있다고?”하며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압도적이었다.
자세히 보면 어떤 집은 베란다 밖으로 빨래가 널려있고, 어떤 집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만약 화가가 이 광경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하더라도, 나는 직접 보기 전까지 이렇게 시각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을 것 같다.
바위 절벽 위로 꽃이 피어나듯 파스텔 빛의 집들이 솟아있었다. 절벽의 끝과 집들의 끝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절벽 또한 집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이탈리아 항구 마을의 정수(精髓)를 보고 신난 우리는 오랜 여행으로 가벼워진 지갑을 무릅쓰고 맥주를 사 마셨다. 친퀘 테레 지역은 레몬 재배에 최적화되어 있어 레몬첼로라는 이탈리안 리큐어(Liqueur)가 유명하지만, 보석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광산을 캔 광부의 마음 상태였던 우리에겐 맥주만큼 어울리는 음료가 없었다.
내가 앉은 곳이 뷰가 좋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오길래 쉬면서 그분들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팁 줄 돈이 없다며 거절하는 서양인들에게 당치도 않는 소리 말라며 그냥 찍어드리는 거라 호탕하게 말했다. 한국인의 완벽한 사진 각도를 보고 감탄하는 그들의 반응에 다시 한번 기분이 좋아졌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노을과 함께 나의 유럽여행도 끝이 났다.
한 달 이상의 긴 해외여행도, 그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계획한 것도, 유럽 땅을 밟는 것 자체도 모두 처음이었다. 이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혼자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보러 가지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투어를 가지도, 북유럽 페로제도의 하이랜드 카우를 보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언제까지나 아름다웠던 유럽에게, 그리고 첫 용기를 내준 나에게 고마울 것이다.
이 찬란한 노을을 기억하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얻었던 깨달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척박한 세상 속에서도 낭만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20대의 20개국>은 시즌2(아메리카)로 다시 돌아옵니다 :)
Cinque Terre, Italia_ Key words
- La Spezia
- Monterosso
- Vernazza
- Corniglia
- Manarola
- Riomaggiore
- Limoncello
- Frittura di Paranza, Calam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