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미국 교환학생을 코네티컷주로 가게 된 이유 한가운데에는 뉴욕이 있었다.
내가 머물던 페어필드 대학교에서 뉴욕까지는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대구 가는 정도의 수고랄까! 덕분에 4개월 동안 한겨울의 뉴욕을 3번이나 맛보았다.
세계의 심장이라고 하였나. 아니, 세계의 수도라고 하였나. 트렌드의 시작점이자 많은 이들의 로망 속 도시, 뉴욕 타임스퀘어의 겨울은 차디찼다. 기후이변으로 인한 역대급 추위에 코가 얼었고, 그에 지지 않는 엄청난 물가에 마음도 얼었다.
너무도 비싼 숙소 가격 덕에 한 번은 '할렘'이라 불리는 어퍼맨해튼(Upper Manhattan)에서 흑인 노부부의 애어비앤비 지하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할머니께서 너무 춥지 않냐며 장갑을 빌려주셨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에 장갑을 낀 손만큼 마음도 따뜻해졌다. 뉴욕 할렘은 소문처럼 무섭거나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낮에 돌아다녔다.) 그저 '흑인이 많이 사는 동네' 정도로 보였다. 마주치는 흑인 로컬들은 대부분 매우 친절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뉴욕에 대한 환상은 무엇이었을까?
이젠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잘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파리에 가기 전 파리지엔느에 대해 가졌던 로망과 비슷했을까. 그랬다면 아마 대중문화가 나에게 주입한 환상이었을 것이다. 각종 마블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했었고, JAY-Z의 <Empire State Of Mind>라는 노래도 떠오른다. 그 노래에서는 뉴욕을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이라 부른다. 모든 종류의 꿈, 야망, 성공의 기회가 태어나고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대도시,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뉴욕은 기대와는 달리 어지럽고 촘촘한 광화문 같다는 첫인상이다. 사람들은 서울보다 더 바쁘고 지쳐 보였고,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노숙인들이 즐비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뉴욕의 지하철이었다. 최악의 지하철은 프랑스 파리의 경험에서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뉴욕 지하철이 압도적 승리였다. 더러운 승강장에 찾기 어려운 지하철 노선, 그리고 툭하면 운행을 중단해 버리는 돌발상황까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친구와 그래도 웃어넘기려 하는 찰나, 커다란 치즈피자 조각을 입에 물고 철로를 서성이는 쥐를 목격해 버렸다.
하지만 마냥 실망만 하진 않았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도시에 산다는 것이 어떤 자부심을 주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도 고작 세 번의 주말을 뉴욕에서 보냈지만, 영화도 보고 베이글과 커피도 마시며 뉴요커들의 주말을 체험해 보니 나도 모르게 어딘가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물론 영화 티켓 값은 2019년 물가로 20달러라는 입 벌어지는 가격이었다.
실내 푸드 마켓인 첼시 마켓에 가서 맨해튼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가게 스모어도 먹어보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유람선도 타보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디어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큰 동상이었다. 살을 에는 기록적인 추위에도 곧게 뻗은 오른팔에 횃불을 놓지않는 그녀.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모토가 자유와 민주주의임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념물이 아닐까.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역시 타임스퀘어였다. 서울사람으로서 도시가 익숙하다지만, 광장 전체가 화려한 전광판으로 꾸며진 그곳은 확실히 유니크했다. 무엇보다 그 전광판 하나하나의 단가(?)와 그에 등장하는 광고들이 얼마나 많은 마케터들의 피땀눈물 속 아이디어로 탄생했을지 상상하니, 역사의 한 장면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전 세계의 실시간 인기차트를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맛집에서도 메뉴를 잘 골라야 한다 해야 하나.
알고 보니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 등 뉴욕 필수 여행지가 집결되어 있는 맨해튼은 내 취향엔 번지수를 잘못 고른 판단이었다.
나에게는 뉴욕 브루클린이 진정한 숨은 보석이었다.
뉴욕시는 크게 5개의 자치구(Boroughs)로 구분되며, 맨해튼이 뉴욕의 심장부이자 경제, 문화, 관광의 중심지였다면 브루클린은 뉴욕 특유의 빈티지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힙스터 구역이었다. 맨해튼이 종로라면 브루클린은 연남동 같았달까.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 가면 강 건너로 보이는 맨해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독특한 구조의 빌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마치 레고 도시 같았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은 뉴욕 치고 굉장히 한적한 공원이라 더욱 좋았다. 나같이 도시를 힘들어하는 자에게는 어쩌면 맨해튼은 멀리서 봐야 더 아름다운 운 곳일지도 모르겠다.
브루클린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스폿은 바로 브루클린 덤보(DUMBO)다.
1984년 영화 <Once opon a time in America> 포스터부터 시작해서 미국 드라마 <가십 걸> 화보, 한국 예능 <무한도전> 포스터 등 수많은 미디어 패러디물을 만든, 어쩌면 브루클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싶다. 역시나 한국인 관광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실 양쪽의 갈색 건물 사이로 보이는 청색 다리는 브루클린 브리지가 아닌 맨해튼 브리지다. 주변에 주차해 놓은 차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아서 영화 포스터만큼의 아우라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었다.
함께 주말 데이트를 한 친구와 브루클린 빈티지샵을 한참 쇼핑한 후에는 브루클린 브리지로 향했다. 겨울이라 마음이 급했던 해는 벌써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 까를교나 영국 런던 브리지 등 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서양 다리들은 꽤나 많이 가봤는데, 브루클린 브리지는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강철 케이블이라는 굉장히 모던한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을 띄고 있어 전체적인 모습은 전혀 모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무 데크 산책로였다. 차들이 다니는 길 위에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입김으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다리를 끝까지 걸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니 맨해튼 빌딩의 불빛들이 은하수의 별들처럼 반짝였다. 이런 게 도심의 낭만인가 보다.
도시 중의 도시, 뉴욕은 당연히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는 여행지였다.
7년 전에는 그 찝찝함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아마 차들의 짜증을 섞인 경적 소리와 체념한 듯 허공을 보는 길거리 노숙인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이 많은 피곤한 뉴요커들의 일그러진 눈빛 같은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으로는 온 세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서로 다른 문화를 전부 흡수해야 하는 도시로서,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오늘도 도시에는 불이 어김없이 들어오고, 신호등은 열심히 도로를 정리하고, 사람들은 작은 카페 안 커피 한잔에 수다를 떨며 활력을 얻고, 네모난 집 안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긴장과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가.
서울 한강 다음으로 도심의 낭만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뉴욕이었다.
New York, The United States_ Key Word
- Manhattan
- Brooklyn
- Queens
- The Bronx
- Staten Island
- Statue of Liberty
- Empire State Building
- Times Square
- Brooklyn Bridge
- 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 Central Park
- Broadway (Theater District)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
- Museum of Modern Art (M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