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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29. 2021

서로 보듬고 말이라도 따뜻하게

대학원 사회의 미래를 위하여

대학원생이 겪는 심리적 압박


  연구에 대한 열정과 부푼 꿈을 안고 대학원에 진학을 한 대학원생 여러분에게 연구에 대한 부담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32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 2018년에 실시한 대학원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508명의 응답자 가운데 교수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학원생의 비율이 35.9%, 교수 관련 회사 업무에 동원된 것이 19.8%, 심지어 성폭행 등의 폭력 경험 비율도 17%에 이른다고 답한 바 있다 (매일경제, 2018년 10월 19일).


  대학원생이 학위논문 작성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지도교수와의 소통에 따라 대부분 결정된다. 그렇다면 어느 대학원생이 지도교수가 부탁하는 것을 쉽사리 거절할 수 있을까? 심지어 어떤 노동에 임금도 제대로 지불되지 않는다면?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의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경화 선생님께서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최근에는 학술지 편집을 출판사가 아닌 간사에게 맡기자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출판사에 부담하는 편집 비용이 꽤 크기 때문에 간사에게 위임하는 것이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학술지 편집 담당 간사를 별도로 둘 경우, 1년에 학술지를 세 번 발간하므로 간사 수당 50만 원을 3으로 나누면 편집 비용은 약 16만 원이 든다. 간사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학회에서는 공짜로 편집을 할 수 있다. (...) 간사 수당을 업무 시간으로 나누면 턱없이 부족하다. 50만 원을 최저임금인 8590원으로 나누면 약 58시간이다. 연구간사의 경우 일 년에 두 번 학술대회를 진행하므로 한 번의 학술대회에 29시간을, 편집간사는 일 년에 세 번 학술지를 발간하므로 한 학술지에 19시간을 일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업무 시간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참세상, 2020년 11월 9일).


  기사를 보면, 사실 학술지 편집만 간사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다. 학술회의도 준비해야 하고 한국 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 시즌이 오면 평가에 대한 준비를 오롯이 간사가 맡는다고 한다. 사회과학계에서는 나의 경험으로 달마다 적어도 60만 원을 지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인문계의 이런 열악한 현실을 보면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대학원생은 석사과정이라면 분명 다른 곳으로 취직할 수 있겠지만 박사과정의 강을 건너면 사기업으로의 취직 선택의 폭은 사실상 없어진다. 그렇다면 학회로 나가야 할 것인데 이런 열악한 상황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모든 연구실과 모든 교수가 이런 것은 아니다. 대학원 사회에도 분명히 좋은 분이 많이 계신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을 어느 개인이 나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환원할 수 없다. 물론 여러 교수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문제 제기를 할 테지만, 교수 사회가 워낙 좁고 결국 계속 서로 얼굴을 봐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바랄 수 있는 것은 진정 어느 교수 개인의 대학원생에 대한 배려 밖에 없을까. 대학원생은 그럼 지도교수를 잘 선택해서 대학원에 들어가야 할 텐데, 이런 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경험해보기 이전에는 알 수 없을 텐데, 그만두는 상황에 직면하는 원우들은 누구로부터 대학원 생활에서 오는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원해서 들어온 곳이라지만 원하지 않는 노동 환경과 인간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 않나.


그리하여, 임포스터 증후군.


  임포스터 증후군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보자. 임포스터 증후군이란 연구자가 자신의 성취를 믿지 못하고 운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비하하게 되고 성취를 믿지 못한다. 이 연구는 1980년대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여성의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대의 연구에 와서는 남성과 여성에 상관없이 고학력자라면 임포스터 증후군을 쉽게 경험한다는 결론으로 확장되었다 (Perez, 2020: 7). (나는 물론 여성이 학계에서 어떤 것을 겪고 있는가를 논의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판단하지만, 지금 진행하는 논지가 대학원생의 전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추후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대학원 과정, 특히 박사과정을 진입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환경에 진입하면서 자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자신은 학계에서 '외부인 혹은 타자(otherness)'라는 감정을 겪게 된다 (Cope-Watson and Betts, 2010: 5).


  안타깝게도 얼마나 많은 대학원생이 임포스터 증후군을 겪는가에 대한 연구나 통계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또한, 임포스터 증후군을 기존에 가진 정신적인 문제와 구별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최근 폭력의 경험, 자기 효능감, 건강행위가 우울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되고 있다 (김다혜, 2020). 연구의 결과는 자기 효능감과 건강에 대한 관리가 우울감을 낮춘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가는 중요하다. '임포스터 증후군'이라는 단어도 결국 그것을 나타내는 개념에 불과한 것이고.


  내가 겪었던 임포스터 증후군, 혹은 우울감도 다르지 않다. 박사과정에 진입하기 이전에도 나의 성취가 대체 무엇인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써온 논문들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는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대체 어떤 결과를 일구어낸 것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비하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은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느냐도 있지만 결국 주위에 어떤 사람을 두고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 않는가.


  나도 우울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나의 잘한 점을 돌아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 것처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자신의 업적을 돌아보고 글로 적어보면 어떨까. 자랑이면 어떤가. 그 글을 당장 내가 읽어주겠다. 그리고 당신이 잘한 지점이 어떤 것이라고 콕 집어서 말해줄 수 있다. 못하면 어떤가. 어차피 앞으로 박사과정에서든지, 다시 배우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대학원에 계시는 구성원 분들에 대한 제언


  교수도 대학원생으로서의 생활을 거쳐왔다. 당시 권위주의 정권 아래였거나, 벗어난 직후의 대학원에서 경직된 수직 관계의 교수-지도 제자의 생활을 거쳐왔다면 얼마나 힘든 생활을 영위하셨을까. 분명 고생하고 고생한 것이다. 그 당시엔 분명 불만이 많았을 텐데 꾹꾹 누르고 이겨냈다면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사실이지 않는가. 그런 고생과 역경을 이겨내고 나는 교수가 되었다. 그렇다면, 제자들도 지금 나의 이런 꼬장을 견디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예시이다. 교수에게도 교수 나름의 삶이 있다. 행정 업무도 부담이고 제자들에게 장학금을 주려면 연구 용역도 가져와야 한다. 실적을 위해 논문도 쓴다. 정신이 없다.


  박사학위 취득자의 수만 2020년 한 해에만 1만 6천 명이 넘었다. 의약계는 신진 박사의 취직 비율이 80%가 넘는다고 어느 기사는 지적하지만 인문계는 그렇지 못했다 (매일경제, 2021년 6월 21일). 결국, 지도교수의 부탁을 들어도 어느 분야에서는 취직이 용이하지 못하다는 말인데, 나에게 이런 가혹한 현실도 주어질 수가 있다니 너무도 잔인하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학계의 관행도 선진국 수준에 걸맞은 실천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만약 교수로서 자신이 이제까지 만연한 학계의 관행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면, 훌륭한 인품이라도 제자들에게 남기면 어떨까. 물론 정부를 압박하여 제도를 바꾸면 좋겠지만, 문제는 제도와 법, 규칙이 바뀌는 사이에는 유예 기간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와중에도 대학원생들은 상처를 받는다. 훌륭한 인품에는 사람이 따르고, 사람이 따르는 곳에는 자발적인 존경이 따른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할 때에 주위 대학원생이 상처를 받는다는 생각을 교수 여러분께서 해주시면 어떨까.


  대학원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신기한 것은 나의 논문을 작성할 때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논문을 보면 지적을 잘하게 된다. 그렇지만 서로 어려움을 겪을수록 날카로운 질문을 부드럽게 순화해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점이 부족해 보이지만 논문을 많이 고민해서 쓰신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 보완하셔서 다음에 꼭 어디선가 투고를 성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끝낼 수 있다. 서로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기대고 살 수 있으니까.


  물론 이러한 제언이 법적이고 제도적 개선도 아니고, 혹자께서는 교수 집단의 시혜적인 행동을 원하는 것이 아니냐. 왜 이렇게 수동적이냐고 생각하실 수 있다. 나는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제도적인 변화를 위해 국회의 문을 여러 번 두드렸었다. 시간강사법이 제정되는 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사이에 법적, 제도적인 개선이 계속되는 동안 혜택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피해를 보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나는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교수는 어른이 맞다. 그리고 그런 어른에게 시혜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 실천에 대한 말 표현에는 분명 예의가 필요한 것도 맞다. 이러한 배경도 누군가의 존경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대학원 사회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작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대학원 사회를 만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


김다혜, 2020, "대학원생의 자기효능감, 폭력 경험, 건강행위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 : Bandura의 상호결정론에 근거하여", 인하대학교 일반대학원 간호학과 석사학위논문.


매일경제, 2021년 6월 21일, "'박사 인플레'…작년 1만6천명 사상 최대 학위 취득했다."


매일경제, 2018년 10월 19일, "대학원생들의 외침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참세상, 2020년 11월 9일, "가장 무서운 지도교수의 한 마디, “간사를 맡아줘.”"


Cope-Watson, Georgann and Andrea Smith Betts, 2010, "Confronting otherness: An e-conversation between doctoral students Living with the Imposter Syndrome", Canadian Journal for New Scholars in Education, 3(1), https://cdm.ucalgary.ca/index.php/cjnse/article/view/30474


Perez, Christian, 2020, "Caring for the Whole Self: Analy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Graduate Students’ Involvement on Campus and the Onset of Imposter Syndrome", University of San Diego. https://digital.sandiego.edu/cgi/viewcontent.cgi?article=1053&context=soles-mahel-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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