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우 Jul 29. 2021

대학원 재진입과 논문 수정

세 번째 실패의 기록

박사과정에 합격하다.


  원서를 내고 연구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과연 나에게 박사과정을 할 문제의 제기가 있을까? 석사과정 때는 지도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을 이미 일본에서도 절감했기 때문에, 연구계획서는 크게 의미가 없고 들어가서 무엇을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맞는 논문들에 한해서만 기존 연구 검토를 했고, 뭔가 한 이론을 잡고 진득하게 공부한 경험이 없었다. 글쎄, 비교정치의 이론에 대해서 종합적인 관점에서 배운 것은, 석사 때 J교수님의 수업 정도?


  J교수님의 수업은 돌이켜보면 비교정치에 있어 흐름을 짚어주는 수업이었다. 물론 그 교수님의 시각이 들어가 있고, 3주인가를 권위주의 이론에 대해서만 배운다. 처음에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 권위주의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어떻게 유지되는가, 언제 무너지는가를 배우다 보면, 논문을 쓸 때에 어떤 이론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감이 온다. 이제 커다란 이론의 흐름에서 설명되지 못하는 현상들에 대한 가설을 수립하고 그것을 검증하다 보면, 나도 어느새 정치학이라는 과학의 패러다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원서를 지원하고 바로 지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셨다. 이런 사람을 두고 나는 왜 석사 때 무서워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에게나 저자세로 대하는 경향이 좀 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선생님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만큼, 나도 예의는 지키면서 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전화에서도 애정이 느껴졌으니. 아닌가. 이건 분명 석사가 끝나서 사실 지도 제자와 교수의 관계가 좀 완화되었기 때문인가? 아니지. 나는 박사과정에 다시 진입하려고 하니까 완화된 것도 아닌데?


"너, 오늘만 전화하고 합격 발표 날 때까지 하지 마.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전화라도 주고받으면 큰일 난다. 너, 원서 지원 잘했지? 석사 논문에서 발전을 시켜가지고 잘해. 나는 면접 안 들어간다. 굉장히 무서운 선생님들이 들어가셔 가지고 할 거야. 면접 준비 잘해. 네가 쓰려는 분야에 있어서 어떤 이론으로 논문을 쓰고 싶은 것인지 이런 거 잘 생각하고 답안도 생각해보고. 잘해."


  J 교수님의 수업 내용도 살펴보고, 선생님 말씀대로 어떤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준비했다. 면접까지 한 달 반이 남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디게 갔다. 문헌을 계속 찾아봤다. 읽어보니 생각보다 학자들은 특정 분야만 연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분야는 왜 연구를 안 하는 것일까? 그래, 안 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 앞으로 이런 연구를 한다는 정당화를 잘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면접 날이 왔고 온라인으로 면접을 진행했다. 비교정치에서는 J 교수님은 아니지만, 다른 J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J에도 아주 많은 성씨가 있으니까. 교수님께서는 역시 나에게 어떤 이론을 본을 삼아서 어떤 주제의 연구를 진행하고 싶은지 아주 자세히 물어보셨다. 다른 것은 묻지 않는다. 고려대 정외과 면접의 좋은 점은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떤 이론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면밀하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합격했다는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합격하고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마 고려대 정외과가 세상에서 제일 들어오기 힘든 박사과정일걸?" 

"왜요, 선생님?"

"아니, 이번에 박사를 여덟 명이 지원을 했거든? 근데, 너 하나만 붙였대."

"정말요? 왜요? 다른 면접하는 사람들 잘했던 것 같은데?"

"몰라, 선생님들이 무서운 사람들이야. 교수회의에 들어와서 제대로 대답한 사람이 이정우 하나밖에 없었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붙여주지 말자고 했다는 거야."

"아, 정말요?"

"어쨌든 뭐 합격했으니까 축하하고. 다음 주부터 지도 제자 모임을 하는데 거기에 들어와."

"네, 알겠습니다."


  그 뒤로 어떤 연구 모임이던지 지도 제자 모임 밖에서 모이면 나보고 근황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 대신해주신다. 정우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고대 정외과 박사과정에 입학을 했다고, 세상에서 제일 힘든 박사과정일 거라고. 글쎄, 이게 선생님의 자랑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환영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다음 주에 바로 지도 제자 모임에서 이제까지 수정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논문을 수정하고 세 번째로 투고에 실패하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적은 것처럼 논문을 이제 대가들로부터 받은 코멘트를 반영하여 수정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처음으로 이제 석사과정 후배들, 박사과정 선배님들, 지도교수님 앞에서 발표를 하고 코멘트를 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었다. 같은 연구실에서 받는 코멘트니까 날카롭지만 그래도 따뜻한 질문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나의 논문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까, 이 지점에 대해서는 왜 쓰지 않았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 더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렇게 논문을 고치기 이전에, 어쨌든 한 번 고친 상태니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투고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학술지의 티어를 낮췄다. 정치학의 전반적인 주제를 모두 다루는 저널이었다. 보내고 그런데, 하루 만에 데스크 리젝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바로 "주제가 너무 협소하여 정치학의 전반적인 독자에게 어필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였다. 다른 저널에 내보라는 통상적인 에디터의 말과 함께 돌아왔다. 사실, 이 주제로 논문도 내주고 했는데 아무래도 맘에 안 들었나? 그러면 그냥 모든 학자들의 코멘트를 웬만하면 반영해서 보낼까? 어떡하지?


  내가 정당화할 수 있는 부분은 가만히 두고,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만 우선 고친 것은 맞다. 데이터를 대공사 수준으로 뜯어고쳤지만 이론 개진 부분은 사실 가만히 뒀었다. 가설은 두 개였다. 과연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의 선거에서 기대되는 것 같은 결과가 올 것인가? 그렇다는 가설과 그렇지 못하다는 가설 두 개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어떤 것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는가를 살펴보겠다는 구성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전개를 해야 좀 더 논문이 해당 이론 논쟁에 있어 중요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누군가의 코멘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둘 중에 하나를 골라서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우리 지도 제자 모임에서도 박사과정 선배들이 그런 지점을 다시 제기해주기도 하였고. 


그래, 결심했다. 논문에서 가설 하나를 없애고 그냥 나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자. 그 가설을 선택해서 논문을 쓰는 것은 내가 그만큼 이론적인 정당화를 잘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네 번째 투고 도전을 해보자 싶었다. 


  이미 세 번을 투고 거절을 당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오, 이미 시도를 몇 번 했어? 잘했어. 이미 하고 있다니 기쁜데? 나는 첫 논문을 다섯 번을 거절당했어. 그렇게 고치면서 더 나은 논문이 되더라.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이미 두 번을 거절당해서 지친 상태였는데, 국내 저널로 돌려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다섯 번을 거절당했다고 하니까 뭔가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투고 거절을 여섯 번을 채워보고, 아니 일곱 번을 채워 보자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채우다 보면 논문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전 08화 해외 학술지에 도전하다: 2021년(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