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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29. 2021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

닫는 글

  마흔 살의 이정우 님께,


  안녕하세요. 2021년을 살고 있는 서른한 살의 이정우입니다. 그곳은 2030년이겠군요. 날씨는 어떤가요? 여름에는 엄청 덥고, 홍수도 많을 텐데 어떻게 적응하고 계시나요? 누구와 함께 살고 계신가요? 지금 제가 사랑하는 애인이 같이 꼭 옆에 있었으면 좋겠네요. 박사학위는 취득하셨을까요? 무슨 요인이 있어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다면 위로를 전합니다. 혹시 취득하셨다면 축하의 말씀을 보낼게요.


  박사학위를 하시는 동안, 분명 아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셨겠죠. 저는 석사를 끝내고 박사과정으로 들어가기 전에 갑작스러운 기회에 이렇게 제가 무엇을 잘했는가에 대해서 돌아보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생각보다 한 것도 많고요, 학문적으로 배운 것도 많습니다. 저는 인생을 아주 잘 살아왔어요. 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갑자기 이 문장을 쓰니까 눈물이 나네요. 나 자신을 사랑할 사랑은 나밖에 없는데, 이 점을 스스로 무시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좀 후회됩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저의 문장이 어느 정도 순응을 하고 약간 체념을 해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선의 투가 많습니다. 아주 많은 상황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는데요. 저 자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보는 것이겠죠. 결국 과거에 대한 후회가 있고 두려움이 있으면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마음이 상처 받지 않게 해석하는 것이니까요. 지금 저도 사실 문장을 읽으면 가슴이 아픈데, 마흔 살에 뒤를 돌아보는 이정우 님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이렇게 철든 것처럼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저의 모습이 지금의 저를 슬프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석사과정에 대한 칭찬을 할게요. 양적 방법론을 모른 채로 대학원에 들어와서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수업 자료를 제외하고 읽기 위해 잠을 줄인 저를 칭찬합니다.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우연한 기회에 출마하고 당선되어 대학원 원우들을 위해 돌아다닌 1년 8개월을 칭찬합니다. 지도교수의 연구 조교와 프로젝트 조교, 연구소의 조교의 세 자리를 겸직하면서도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저를 칭찬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논문을 1년에 한 편씩 써서 투고한 저를 칭찬합니다. 졸업을 미루자는 지도교수의 이메일에 결국 순응하고 버틴 저를 칭찬합니다.


  고통은 없는 게 낫고요. 겪지 않을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이정우 님에게도, 2030년의 이정우 님에게도 피하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결국 최선의 선택은 지금과 같이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렸고, 그것이 미래의 나의 정신 건강을 결정할 테니까요. 다만, 제가 지금 바라는 것은, 저는 이정우 님께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먼저 숙이고 들어가지는 않기를, 자신이 원하는 논문을 꾸준히 쓰시기를, 그리고 주위의 대학원생에게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다시 총학생회 활동을 하시게 되어도 제도적인 개선도 중요하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원우 옆에 있어주세요. 말을 들어주고 차라리 괴롭히는 교수에게 찾아가서 차라리 대신 협박을 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언론에도 터뜨리고 대자보도 쓰겠다고요.


  부탁드립니다. 제가 지금 부탁드리는 것처럼 저도 주위 사람들 잘 챙기면서 저의 정신 건강도 잘 챙기는, 그런 훌륭한 연구자가 되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생을 비하하지 않겠습니다. 2030년에 당신을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 관리도 잘하시고, 잘 지내고 계세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답십리 집에서,

이정우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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