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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28. 2021

첫 단독 저작 논문을 쓰다: 2019년

이 글은 이정우, 2019, "Education Level of Constituencies, Accountability, and Presidential Impeachment Voting in New Democracies: Evidence from the Philippine House of Representatives", 동남아시아연구, 29(2), pp.193-227의 저작 배경과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냐?


  2018년에 친구와 함께 공저를 끝낸 이후, 슬슬 단독 저작 논문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때까지 준비하고 있던 논문이 있었는데, 바로 2017년도 2학기에 동남아정치론 수업 때 써놓았던 텀페이퍼였다. 사실 초고를 읽어보면 지금 생각하기에 이론적 논의도 너무 얕고 성의가 없어보였다. 홀로 쓰는 논문이니까 논의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텀페이퍼였기에 학기와 수업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써놓은 것이기도 했다. 또한, 고려대에 입학하고 보니 정치학에서 주로 유행하는 방법론은 역사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고 통계 분석을 이용한 것이었다. 대학원에 와서 아주 급하게 통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통계 프로그램 R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 다른 논문의 회귀 분석을 무작정 모방했다. 몇 번 그렇게 모방을 하고 나니 방법에 대해서 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혼자서 만든 회귀 분석 모델을 돌려보자는 생각에 동남아정치론 텀페이퍼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남아정치론은 지도교수님의 수업이어서 연구실에서 동남아의 의회정치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곧 있으면 자신의 논문이 나온다며 이 데이터를 이용하라고 했다 (Shin, 2018). 그 데이터셋은 필리핀의 국회의원들이 각 대수동안 의회에서 법안에 대해 찬성, 반대, 기권을 어떻게 던졌는가를 모아둔 것이었다.


  집에서 데이터셋을 잡고 끙끙대다가 아주 흥미로운 투표 두 가지를 발견했다. 바로 투표가 행사된 당시의 필리핀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 Arroyo)에 대한 탄핵안 투표였다. 탄핵안 투표가 다른 대통령 대에 각각 두 번이 발의된 것이 아니고, 한 대통령에게서 두 번이라고? 뭔가 재밌어보였다. 내가 알기로 필리핀은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서 국회의원들이 꼼짝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탄핵안이 두 번이나 발의된다고? 그럴리가. 그러다가 신문기사를 접했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탄핵안 발의에 직면하고 있다고. 아, 이건 연구를 해봐야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사실 무슨 가설을 미리 세우고 통계 분석을 한 것도 아니고, 일단 가능한 변수를 다 집어넣어서 보았다. 그렇게 통계 분석을 기반으로 적은 페이퍼이기 때문에 이론적 논의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학기를 끝내고 보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논문은 그렇게 덮어두었다. 그러다가 이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선생님에게 전화가 와서 혹시 2018년에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지역원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있을 예정이니 여기서 발표하라는 것이다. 원고를 선생님께 보내드렸고, 발표는 확정되었다.


  발표는 잘 마쳤다. 부산에서 선생님과 야구도 직관하고 재밌게 놀았다. 부산에서 떠나기 전 날 이제 발표를 하고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붙잡고 나의 원고를 주셨다. 원고엔 빨간 줄이 빼곡하고 물음표가 많았다. "다음에 이거 들고 내 연구실로 찾아와"라고 하셨다. 우선 그 자리에선 그냥 알겠다고 하고 신경쓰지 않았다. 좀 무섭기는 했다. 그리고 이메일로 약속을 잡고 그 다음 주엔가 선생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선생님께 보여드리면서 이 글을 가지고 찾아오라고 하셔서 왔다고 했더니, 갑자기 선생님의 표정이 굳었다.


너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냐?


  "아니, 앞으로 공부하려는 애가 글을 이렇게 써서 어떡해? 그리고 정치학 연구를 할 때 가설을 완벽히 짜고 그 다음에 통계 분석을 해야지. 아무리 통계 분석이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이론이 훌륭해야해. 그래야 좋은 연구지. 그리고 지금 이 문장이 너도 이해가 되냐? 글이 이렇게 짜임새가 없어가지고 누구보고 어떻게 읽으라는거야."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뒤부터 선생님께서는 어느 부분이 각각 왜 말이 안되는지 자세히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부터 눈에 초점이 잘 맞지가 않고 모든 세상이 흔들리게 보였다. 그래도 끝까지 꼿꼿이 앉아있으려고 노력했다. 자존심이었을까.


  아니, 이론적 논의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고, 다른 논문들을 가끔 봐도 내가 쓴 것보다도 정말 형편없는 논의를 가져올 때가 많은데, 나는 대체 무엇을 모방해서 써야하는거지? 그럼 선생님도 나한테 어떻게 하라고 방법을 알려주던지. 이렇게 문제만 이야기하시고 해결점을 이야기 안해주면 나보고 어떡하라는거지? 글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이 이때부터 더 많이 시작되었다. 또한, 이때 친구와 공저를 시작하고 역시 문장력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서 자존심이 정말 많이 구겨졌다. 그런데, 배움엔 원래 자존심을 세우면 안되는 법이다. 이때부터 이론적 논의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한국동남아학회 연례학술회의 참가와 투고


  이듬해 2019년에는 지도교수님께서 미국으로 연구년을 가셨다. 학교엔 아무도 없었고 졸업도 한 해 밀렸다. 어차피 조교 일도 해야하고 총학생회장 임기도 끝내야하니까, 이 참에 단독 저작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한국에 계시지 않을 때에 동남아학회에 발표하러 다녀오고 논문도 짜임새있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론의 틀이 될 논문을 검토했다.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새로 고려대 정외과에 부임해오신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이 논문의 방법론과 이론적인 논의에 대해 상담을 했다. 그때 신임 교수님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신임 교수님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논문을 쓰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데이터셋을 아예 새로 만들거나, 혹은 기존의 연구에 존재하는 큰 이론을 경쟁을 시키는 형태로 가서 어떤 이론을 좀 더 부각하거나. 내가 사용하는 데이터셋은 이미 있는 것이니까, 그럼 큰 이론들을 경쟁하게 하고 그 중에서 하나가 중요하다는 점으로 이론을 만들어볼까? 그럼 필리핀과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들이 탄핵 투표를 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무엇일까? 이것이 연구 질문이었다.


  필리핀의 대통령은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고, 정치인들은 대통령에 충성하면서 유권자들에 선심을 제공하기 위한 자원을 얻는다. 따라서, 대통령이 원하는 법안은 거의 모두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통과된다 (Shin, 2018). 기대할 수 있는 가설 하나는 바로 필리핀의 정치인들은 대통령에 충성하기 때문에 탄핵안에 반대표를 더 많이 던질 것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정치인은 유권자의 요구에 따라 반응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요구에 대해 공약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표를 얻어 당선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유권자들은 대부분 선심이나 개인적인 혜택을 원하고,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유권자들은 선심보다는 정책을 원한다 (Shin, 2015). 이 의견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는 대통령 탄핵에 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가설을 가지고 한국동남아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고, 나쁜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꼭 투고를 하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꼭 알려달라는 토론을 맡아주신 교수님들의 말에 위로를 얻었다. 그래서 욕심을 끝까지 가져가고자 논문을 최종적으로 수정하여, 해당 분야인 동남아시아연구 학술지에 역시 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영어로 쓴 원고였기 때문에, 영어로 완성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수정후 게재 결과를 받을 수 있었고 논문은 최종적으로 2019년 중반에 출간되었다.


투고 이후


  선생님께서 부산외대 학술회의 이후에 꾸짖지 않으셨다면 사실 이 글을 투고해야겠다는 오기를 가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당시엔 속상하고 기분이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는 생각을 되돌아보니 하게 되었다. 결국 과거는 지나고 나면 미화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글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고민은 계속 되고 있다. 깔끔하고 정돈된 문장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쓰고 있는 문장들을 보면서도 부족해보이는데. 또한, 통계 분석이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이다. 석사 때에 와서 이렇게 급하게 배우는 분석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 이 질문은 사실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도 유효하다. 고민을 정말 많이 하면서 썼는데 다 쓰고 나니 큰 오류는 아니지만 부족해보이는 그런 것들. 하긴 과거는 늘 후회하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참고 문헌>

Shin, Jae Hyeok, 2015, "Voter Demands for Patronage: Evidence from Indonesia",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15, pp.127-151.

Shin, Jae Hyeok, 2018, "Legislative voting in the pork-dominant parliament: evidence from the Philippine House of Representatives", Journal of Legislative Studies, 24(3), pp.338-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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