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밴쿠버에 사는 한인 이민자 치고는 캠핑에 대해서 잘 안다고 우쭐거린 적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캠핑을 한 지도 거의 20년이 되었고, 그 어렵다는 여름철 (연휴주말)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도 척척 해내며, 록키나 토피노처럼 운전만 6시간 넘게 걸리는 곳으로 찾아가서 캠핑을 하는 것도, 그것도 일주일 넘게 캠핑장에 머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현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 비교하더라도 한 해 동안 찬 바닥에서 자는 날이 결코 적지 않았고, 방학 때 외갓집에 놀러 가는 것처럼 맨날 가는 곳만 가는 현지인 캠핑에 비해, 밴쿠버 아일랜드 서쪽 끝인 토피노에서부터 주 경계를 넘어서 가는 밴프, 자스퍼, 그리고 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레벨스톡 국립공원까지 꼬박꼬박 찾아갔으니 이바구를 털 것도 꽤 많았던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캠핑 에피소드들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기도 많이 했고, 또 캠핑 예약 비법이나 다른 스킬들 - 모닥불 불 붙이는 법, 혹은 타프 치는 법 등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똑같은 잘난 척을 반복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는 책까지 내게 되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좀 많이 과대포장이 되었다는 걸 느낀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캠핑 전문가라고 소개가 되면 여전히 낯설다. 마치 TV에 나오는 자연인 - 뱀을 사냥해서 저녁 반찬으로 먹고, 나무를 베어 책꽂이를 만드는 - 과 같을 거라는 기대를 받기도 해서 당혹스럽다. BC주 산림청 관할 지역에서 노지 캠핑하는 것도 아니고, 가능하면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또 가능하면 전기가 들어오는, 시설이 잘 갖춰진 주립공원이나 국립공원을 선호한다고 해명을 하면 상대로부터 저으기 실망스럽다는 눈치도 받게 된다. 하지만 어쩌리.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캠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놀려고 하는 거라서, 좀 더 눈을 즐겁게 하는 광경을 보면서, 산들거리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면서, 가끔은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신나게 정크푸드도 먹는 것에도 관대해지면서 놀기 위해 캠핑을 한다.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을 잘 해내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냥 더 관심이 많고, 더 절실하게 원해서 예약 취소나 변경에 따르는 금전적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 딱히 별 다른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척 주관적인 이유로 캠핑을 다니는 터라 사실 캠핑장에 대한 선호도도 일관성이 없다. 캐러반을 처음 구입했을 때만 해도 이제 날씨에 상관없이, 장소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천하무적 캠핑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추워서 캐러반 실내에만 갇혀 먹고 자는 캠핑을 몇 차례하고 나니 역시 캠핑은 날이 좋을 때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해 캠핑을 부활절 연휴부터 시작해서 추수감사절 연휴에 마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한 때는 도장 깨기처럼 광역 밴쿠버와 더 밖으로 새로운 캠핑장을 찾아다니던 것도 이제 심드렁해진다. 풍경이 다르고 시설은 다르겠지만, 결국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 캠핑 경험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더 결정적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더라도 풍경이 좋고 이웃 캠퍼들이 좋아서 잘 가던 주립공원 캠핑장들도 이제는 운전할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점점 소원해진다. 단지 더 좋은 풍경을 만끽하고자 해서 몇 차례 갔던 백패킹도 이제 기력이 딸리고 모기들의 공세에 버티지 못해 점차 그만두게 되었다. 뭐... 무척 길게 썼지만 결국 이젠 우리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편한 곳만 찾아다니는, 그리고 갔던 곳만 계속 가는 그런 보수적인 캠퍼가 되었다는 이야기.
보통 광역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캠핑장이라고 하면 스쿼미시 근교에 있는 '포트코브 주립공원 (Porteau Cove Provincial Park)'을 꼽는데, 해변을 따라 몇 안 되는 사이트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비교적 따뜻하며, 전기도 들어와서 그런지 그 인기가 가히 슈퍼스타 급이라 캠핑날 4개월 전 예약 사이트가 열리는 시간이 되면 거짓말 안 보태고 0.01초 만에 예약이 끝나버린다. 때문에 예전에는 인터넷도 느리고 컴퓨터도 느리고 손도 느린 우리들이 이곳을 쉽게 예약하기는 당연히 힘들었다. 보통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4월이나 추위가 시작되는 9월 정도에, 재수 좋으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갈 수 있었고, 그 외엔 대부분 계속 헛발질만 해야 했었다. 이곳만 노리다가 사이트가 다운되면 다른 곳 예약도 못하는 경우도 빈번해서 아예 여름철 연휴 캠핑은 포트코브를 포기하고 다른 캠핑장 예약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중, 팬데믹 이전 몇 해 전부터 BC주에서는 캠핑 예약 운영을 여러 차례 변경하는 일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공원 면적을 자랑하는 BC주라고 할지라도, 캠핑을 하고 싶어 하는 인구 폭증을 기존 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캠핑 예약을 사재기한 후 대량 취소하거나 타인에게 2차 판매를 하는 편법이 이어지자 주정부에서는 예약사이트 discovercamping.ca를 관리하는 외주업체를 여러 번 변경하고, 또 예약 규칙을 새롭게 개정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2017년부터는, 자신의 주소지를 기입한 계정을 만들어야만 예약이 가능했고, 하나의 계정으로 동일 기간 동안 여러 장소의 캠핑장 예약이 불가능해졌으며, 같은 주소지가 적힌 신분증을 제출해야 캠핑장 입장이 가능해졌다. 또한 체크인 예정 날짜 보다 24시간이 지나도록 체크인을 안 하면 전체 예약이 몰수되고, 여름철에 캠핑장을 예약했을 경우 캠핑 시작날짜를 변경하지 못하게 해서 연휴 시작 며칠 전부터 미리 예약하는 꼼수를 사전에 방지했다. 또한 포트코브와 같은 몇몇 인기가 많은 캠핑장에 한해 최장 캠핑기간을 14일이 아닌 7일로 제한을 거는 걸 시작했다 (https://engage.gov.bc.ca/bcparksblog/2016/12/22/discover-camping-changes-for-the-2017-camping-season/). 하지만 2017년에 바뀐 예약 사이트의 경우 광역 밴쿠버 지역 캠핑장 실시간 예약상황을 지도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옵션이 빠져서 원성을 사기도 했고, 접속 과부하로 여전히 사이트가 종종 다운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019년부터는 공개입찰을 통해 discovercamping.ca 사이트 관리를 기존의 camis.com에서 eDirect로 변경했다. 같은 미국 회사더라도 eDirect의 경우 워싱턴 주나 미시간 주와 같은 미국의 주립공원 관리에 경험이 더 많았기에 그 부분에서 점수를 더 많이 땄던 것으로 보였지만, 기존의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했던 것인지 실제로 예약하는 데에 있어서 서버가 종종 다운되는 현상은 여전했다. 새롭게 '빈자리 알림' 설정 기능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어느 캠핑장의 자리가 취소되면 알림을 받을 수는 있다고는 했는데 예약한 사람 입장에서는 일찍 취소한다고 해서 예약비를 덜 날리는 것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초,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캐나다 모든 공원의 캠핑이 금지 - 자동 예약취소되었다가, 실외활동이 오히려 신체건강이나 정신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6월부터 캠핑 예약이 다시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나 타 주에서의 유입에는 제한을 두었고, 샤워시설 등 공공시설 안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그리고 기존에 캠핑 시작 날 4개월 전부터 예약이 가능했던 걸 2개월 전으로 축소해서 운영을 했다. 그 후로도 2차 유행, 3차 유행 때마다 지역 보건청 관할 구역을 넘어선 여행에 제한을 두는 등 캠핑장 운영은 시시때때로 변화하였는데, 그보다 코로나 이전과 가장 달랐던 점은 해외여행 제한으로 여름철 여행인구들이 지역 내 캠핑 인구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 그래서 캠핑 예약이 더욱더 힘들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여전히 포트코브나 앨리스레이크, 골든이어즈와 같은 인기 캠핑장 예약을 하려면 사이트가 계속 다운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결국 2022년이 시작하면서 주정부 자체적으로 예약 사이트를 운영하기로 결정을 했고 새로운 camping.bcparks.ca라는 도메인이 출범하였다.
새 예약 사이트가 시작되었지만, 그리고 팬데믹이 거의 끝나면서 각종 여행제한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예약은 캠핑시작 4개월 전이 아닌 2개월 전부터 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2022년이야 말로 캐나다에서 캠핑을 시작하면서 포트코브 캠핑장을 가장 많이 예약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서버증설로 인해 사이트가 다운되지 않아서 그렇거나 지도상에서 캠핑장 예약 상황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돌아와서 그랬다고 생각했었지만, 어쩌면 새로 런칭한 예약 사이트의 운영이 제대로 안 돌아가서 그랬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새로운 예약 사이트는 인터넷 브라우저의 쿠키에 많이 의존을 해서, 만일 카트에 한 예약을 담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서 그게 취소가 되면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이 사실을 조기에 발견한 사람들은 예약을 이곳저곳 비교해 가면서 전투적으로 하기 위해 크롬이나 사파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브라우저를 동시에 열어서 예약을 하여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또, (아마도 사이트 오류로 인해)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캠핑 시작날 일정조정이 가능해지면서, 일단 주중 평일부터 일주일간 예약을 한 다음, 며칠 후 그 앞부분을 잘라먹는 꼼수가 공공연하게 통용되기도 했다. 특히 매년 가을에 갔던 토피노 여행을 2022년에는 여름에 가게 되면서, 가을 휴가는 포트코브에서 일주일 간 아주 지겹게, 단물 다 빼먹으면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12월이 되면서, 주립공원에선 새로운 캠핑 예약 시스템을 또 발표했다. 어쩌면 이렇게 한 해도 안 거르고 매년 예약 정책이 바뀔 수 있는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만, 문제가 있는데도 안 바꾸고 그냥 가는 것도 공감할 수 없었기에 그냥 응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2023년 1월 3일부터 시작된 새 시스템의 헤드라인은 이제 2개월 전이 아닌 캠핑 시작날 4개월 전부터 예약이 가능한 걸로 다시 돌아간다는 점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소리소문 없이 슬그머니 도입된 새 정책도 있었다. 어쩌면 이전부터 공지는 미리 되어왔었으나 어떤 기술적 한계로 구현은 안 되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주립공원 사용경험을 가능한한 여러 사람에게 분산한다는 것이 그 핵심으로 보인다. 일단, 하나의 계정당 같은 캠핑장에서 할 수 있는 예약일 수가 연간 14박 (포트코브의 경우 7박)으로 제한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이번 부활절 기간 동안 포트코브 캠핑을 7박 8일 예약했다면, 앞으로 2023년 내에 같은 계정으로는 포트코브 캠핑 예약을 더 이상 못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캠핑 시작 딱 4개월 전에 예약을 했다면 그 캠핑일정은 변경이 안된다는 규칙도 새로 도입되었다. 예를 들어, 6월 30일부터 시작되는 캐나다 데이 연휴 캠핑을 2월 25일에 예약했다면, 그 캠핑일정은 더 이상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6월 25일에 시작하는 걸로 2월 25일쯤 미리 예약한 후에 나중에 가서 앞 일정을 잘라먹는 꼼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https://bcparks.ca/reservations/frontcountry-camping 참조).
하지만, 이전까지는 캠핑 시스템이 변경되면 그때마다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서 꾸준하게 홍보를 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나름 비밀리에 추진된 변화였던 건지 아니면 다른 연유인지 바로 얼마 전까지 알지 못했다. 게다나 4월 부활절 연휴 캠핑예약의 경우에는 일정 변경마저 가능했고, 4월 초인 현재까지 내 계정으로 예약된 포트코브 캠핑장 예약은 (워크인을 포함) 이미 7박 제한을 넘은 상태인데, 아마도 공지는 1월 초에 미리 나갔었는지 몰라도 실제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새로 생긴 제한을 뒤늦게 알았던 것인지, 2023년 1월에 캠핑 예약을 할 때만 해도 주중 평일 시작 캠핑부터 순식간에 동이 나는 등 예약이 거의 불가능했었는데, 8월 BC 데이 연휴 캠핑 예약을 하는 4월 초에 와서는 전반적으로 좀 느슨해진 게 느껴졌다. 뭐 그렇다라도, 막상 내가 하는 예약은 힘들면 여전히 그 예약은 힘든 거라고 할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