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선 Jun 26. 2024

딱히 별일은 없더라도

2024년 상반기 캠핑 결산

2024년에도 캠핑은 계속되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회사의 사정으로 예전만큼 자주 가지 못하고 그냥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것도 보통 2박 3일 정도였다는 점. 게다가 올해는 캠핑날마다 비가 와서 밖으로 잘 놀러 다니지 못했다는 점 등이 있겠다. 4월 말 즈음 갔었던 포트캠핑 (Fort Camping) 민영 캠핑장에서도 줄곧 비가 왔었고, 이후 5월, 6월, 골드크릭 (Gold Creek) 주립공원 캠핑장에 갔을 때도 비가 왔으니 이 정도면 누군가가 짚새기 인형을 만들어서 저주를 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6월 캠핑 때 강우량은 그래도 적은 편이었지만, 마침 가제보를 철거할 때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저걸 또다시 꺼내 말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도 하루 웬종일 비가 퍼붓는 건 밴쿠버 성격에 안 맞는 일이어서 가끔 살짝 갤 때마다 밖으로 나다닐 수는 있었다. 특히 4월 초 부활절 연휴 3박 4일간 갔었던 포트코브 (Porteau Cove) 주립공원은 몇몇 순간을 제외하곤 제법 해가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별도 많이 나왔었고).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매우 낮아서 두터운 패딩을 입고 가스 모닥불을 계속 켜고 있어야 했지만. 라면 하나를 끓여 먹더라도 이렇게 나와서 바다를 보며 (그리고 캘리포니아 물범의 꽥꽥 소리를 들으며) 먹는 라면은 차원이 달랐다. 그보다 이때의 수확이라면, 포트코브 캠핑장에서 바닷가가 아닌 안쪽 (6, 8, 12, 16, 20, 23~30번 사이트) 사이트도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점. 그동안 해변과 접해있지 않았다고 무시했었는데, 바닷바람도 훨씬 덜하고 화장실도 가까운 이점이 있었다.



뭣보다 전기가 들어오는 캠핑장도 정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 맞다. 여긴 캐나다지. 그리고 이렇게 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전이 된 거라 더 불편했었기 때문에, 다음번부턴 전기가 들어오는 캠핑장에 가더라도 정전대비 비상식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전 때문에 샤워실 역시 아예 쓰지 못했건만, BC 주립공원 측에서는 전기사용료 8불 /박만 환불을 해주었을 뿐 (그것도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만) 샤워실 폐쇄에 대한 금전적 보상 같은 건 없었다 (Again. 맞아. 여기 캐나다지). 아무리 시설 관리가 허접하고 고객 불만 대응이 엉망이더라도 주립공원 이용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리라.  







포트랭리에 위치한 포트캠핑은 민영캠핑장답게 전기와 상수도 시설을 제공하기 때문에 캠핑 트레일러가 본격적으로 혹사당할 여름이 오기 전에 정기점검을 하기 좋다. 이때 보통 물탱크 소독을 한다든지, 식수 필터를 교체한다든지, 환풍기 망을 청소하거나 창문틀 누수 방지 작업을 한다든지 해야 하는데, 올해는 비가 2박 3일간 끊임없이 쏟아져서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이때 점검을 하지 못한 탓에 5월 캠핑 동안 트레일러 창문에서 침대로 비가 줄줄 새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흑 ㅠㅠ... 그래도 캠핑장 도착 첫날 저녁엔 비가 살짝 멈칫하는 순간이 있어서, 포트랭리 다운타운 (캠핑장과 걸어서 5분 거리) 식당 Saba Bistro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 멋들어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주중에는 반짝하니 맑다가 주말마다 비가 내렸던 올해 밴쿠버 봄 날씨는 직장인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광역 밴쿠버 지역 - 내륙, 오카나간 지역 - 밴쿠버 섬 지역에 산불 발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BC주 북부 지역엔 그래도 종종 발생했더라도 매해 이맘때부터 오카나간 지역에 내려졌던 산불경보 - 캠프파이어 금지와 같은 명령은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래. 캠핑이 뭐 별 건가? 산불이 없는 게 낫지 그래도. 뭐, 그렇다고 미리 계획된 캠핑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지만.


5월 골든이어즈 골드크릭 캠핑장에서도 비는 계속 왔어도, 가끔씩 잠깐 갤 때마다 촉촉해진 숲의 향기를 맡으며 걷는 기분은 그 이상 상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마다 영화 <애프터 양>에서 제이크가 양에게 최고의 차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음.. 맞아. 근데 이런 걸 상상해 볼 수는 있어. 말하자면, 자네가 어떤 숲 속을 걷고 있는데, 숲 길에는 낙엽들이 깔려 있어. 그리고, 비가 막 그쳤는데, 방금까지 비가 와서 축축해진 길을, 자네가 걷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모든 느낌들이 이 차 한 잔에 다 들어있는 거야 (Yes, but I imagine things like you are walking through a forest, and there are leaves on the ground, and it just had rained, and the rain has stopped, and it's damp, and you walk, and somehow, that is all in this tea)








골드크릭 캠핑장은 다른 주립공원 캠핑장과 비교하더라도 사이트 간 간격이 넓고 나무와 수풀로 채워져 사생활 보호가 좋으며, 개별 사이트 공간도 무척 넓은 걸로 인기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캠핑장 둘레길 (Trillium Drive)을 따라 만들어진 TD 사이트들의 공간이 더 널찍하고 풍경도 좋아서 캠핑장 예약 시 가장 먼저 동이 나는 편이다. 그래도 6월 캠핑 예약 때에는 무척 운이 좋았는지 TD48 사이트를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 며칠간 날이 좋았어서 오래간만에 캠핑 장비를 뽀송뽀송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될 예정이었다.


캠핑 세팅을 마치고 맥주 한 캔과 함께, 음 오늘도 트레일러 주차를 완벽하게 했구먼, 헛헛, 하며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는데, 으응? 저건 뭐람? 캠프 사이트 뒤편에 펼쳐진 수풀 뒤로 하얀 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캠핑장 뒤로 깔린 오프로드 위로 차들이 쌩쌩 달려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라? 심지어 트레일러 지붕이고 테이블이고 뽀얀 먼지로 뒤덮여있다. 아놔... 날이 건조하면 건조한 대로 또 애로사항이 있네. 아니 그것보다, 여기에 이런 도로가 있었나? 골드크릭에 한 해에도 몇 차례씩, 참새 방앗간 들리듯이 캠핑을 왔건만 이런 상황을 전혀 짐작하지도 못했다. 핫핫핫. 참나. 캠핑을 본격적으로 다니게 된 지 15년인데, 나도 아직 멀었구나.


27도 더위가 예보되었던 금요일에는 그래도 숲 속에 들어와 피서를 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날 밤부터 조금씩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더니 일요일에 캠핑 짐을 철수하는 동안에는 제법 많은 비를 맞아야 했다. 어쩐지. 아침에 호수까지 산책을 하는 동안 사람이 별로 없더니만, 전화가 안 통하는 캠핑장에 있느라 몰랐지만 오늘 비가 오는 예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뭐. 어쩌겠어. 밴쿠버인데. 그래도 비가 좀 내리니 흙먼지는 없어졌네... 싶었는데, 흙먼지와 빗방울이 뒤섞인 채 덮여있는 차 꼴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렇게 2024년 상반기 캠핑이 끝났다. 기록을 보니 6월 캠핑까지 해서 지난 7년간 이 작은 캠핑 트레일러 안에서 200박을 채웠다. 이 정도 썼으니 창문으로 물이 새는 것 정도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캠핑장 안에서나 길 한복판에서 퍼지는 일 없이 열살도 더 된 우리 차에 매달려 잘 다녀주니 고마울 뿐이다. 7월에는 간만에 이제껏 안 가본 주립공원 캠핑장에 간다. 오카나간 지역에 있는 베어크릭 주립공원 (Bear Creek Provincial Park)은 오카나간 호숫가 풍경과 켈로우나 다운타운에의 접근성, 그리고 전기가 공급되는 캠핑장이라는 이유로, 광역 밴쿠버의 포트코브 캠핑장만큼이나 열광적인 인기를 얻는 곳이다. 그러나 예전에 출장을 다닐 때마다 사막처럼 고온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동안 기피했던 곳이었다. 거기까지 운전해서 가느니 차라리 록키를... 하면서. 물론 때때로 큰 각오를 하고 가려고 했을 때마다 산불이 나기도 했었지만... 그곳에 올해는 간다. 캠핑장 광경을 꼬박꼬박 유튜브로 올리는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위 속에서 캠핑을 하는 건 여전히 저어했겠지만, 아무튼 올해는 간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는 건 항상 설레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또 긴장되는 일이다. 여행사 프로그램 대로 좇아다니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직접 운전하고 가서 맨땅에 노숙하는 여행이라서 그런가? 7년을 끌고 다녔더라도 트레일러 운전은 여전히 부담이 된다. 이번처럼 켈로우나 시내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 승용차들의 잦은 추월을 예상하는 운전은 더욱 그렇다. 그래도 갑자기 빡세진 회사 일정을 뒤로 하고 모처럼 휴가를 얻었다.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놀아야지. 백날천날 숲과 비만 보이던 유튜브 영상도 뙤약볕 아래 호수가 나올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의 망치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