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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l 30. 2024

익숙해질 만하면

2024 오카나간 캠핑 #1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아내는 옆에서 "익숙해져서 긴장이 풀릴 때쯤이면 이렇게 꼭 한 따까리씩 하게 해 주네..."라고 뇌까렸다.






몇 년 전부터 아내가 꼭 가고 싶어 하던 캠핑장 '베어크릭 주립공원 (Bear Creek Provincial Park)'. 넓디넓은 오카나간 호숫가를 따라 사이트들을 깔아놓아 물놀이하기도 좋고, 전기가 들어오는 사이트도 많고, 샤워시설도 풍족하게 있기로 유명한 곳. 켈로우나 시내까지 차로 15분 내외, 근처에 유명한 오카나간 와인 양조장들이 즐비한 곳. 캠핑장 하늘이 뻥 뚫려 있어서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을 원 없이 관찰할 수 있는 곳. 자동차를 이용한 가족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캠핑장이란다. 그래서인지 광역 밴쿠버 지역의 포트코브만큼이나 예약하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더위에 무척 취약한 나로서는 결코 구미가 당기지 않은 곳이었지만.


게다가 올해 날씨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여서, 바로 3주 전까지만 해도 폭설주의보가 있었던 곳이 이제 와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이쯤 되면 날씨 탓을 하면서 계획을 변경하자고 아내를 설득하기 힘들어진다. 정작 가게 되면 날씨가 또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결국은 갈 운명이었는지 예약하기 그렇게 어렵다는 캠핑장을 어떻게 매년 찜해두는 것에는 성공했었으나, 번번이 산불이니 날씨를 이유로 아내에게 포기를 종용했던 전적이 있었던 지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비씨지역 캠핑장 소개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못 이기는 척하면서 올여름휴가는 베어크릭으로 굳히게 되었다. 사실 이곳처럼 시내와 가까운 곳에 있는 캠핑장에 가게 되면 준비가 무척 단출해지는 장점은 있다. 무엇보다 식자재들을 미리 쟁여놓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급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인해 다른 옷가지가 필요하더라도 시내에 나가 사 오면 될 일이다. 물론 술도 마찬가지겠지. 아무래도 물놀이를 할 꼬락서니라서 다른 짐들이 또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지만.


출발날 아침, 무척 더울 예정이라 아침부터 일단 12시간 버티는 두통약을 하나 먹는다. 아마존에서 주문해 둔 운전석 햇빛 차단막도 부착해 본다. 현재 연비로 봤을 때 약 450km 정도 갈 수 있다. 집에서 캠핑장까지는 약 400km.  50킬로 정도 여유면 중간에 기름 넣지 않고 그냥 쭉 가도 되는 걸까? 트레일러를 끌고 주유소에 들르는 건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펌프 두 개의 공간을  다 차지하는 것도 민폐지만, 트레일러를 끌고 좁은 어딘가로 들어갈 때는 뒤쪽 트레일러가 어딘가에 닿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주유소처럼 행인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곳에서는 후방까지 관찰하기가 녹록지 않은 탓이다. 50km 정도 여유면 그냥 가야겠다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코카할라 고속도로 정상에 있는 졸음 쉼터에서 잠깐 허리를 펴고 가더라도. 가능하면 RPM 4000을 안 넘어가려고 에어컨도 아껴 쓰며 간다.


그런데 코카할라 고속도로 입구 좀 지나가니 차량 정체가 장난이 아니다. 이건 뭐. 실시간으로 연비가 뚝뚝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인다. 이 상태로는 기름을 안 채우고 가기 힘들 것 같은데... 저 앞에 보니까 사고가 나서 경찰이 차선을 하나 완전히 막고 서있었다. 에구 더운데 고생이 많네. 눈인사를 하고 지나가니 그 뒤에 어떤 차가 뼈대만 남은 전소상태로 놓여 있다. 아니, 저건 뭐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는 거지? 이게 바로 전조였다는 걸 이 때는 몰랐다.


코카할라 고속도로에서 나와 메릿 (Merritt) 시에 들러 기름을 넣으려 하는데, 으응? 항상 가던 그 주유소가 안 보인다. 고속도로 출구로 나오면 바로 있던 그 에쏘 주유소. 생각하고 보니 그 주유소는 캠룹스 방향으로 가는 길 출구에 있었던 것 같다. 켈로나로 연결되는 97C로 빠지는 출구에는 주유소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메릿 시내까지 트레일러를 끌고 들어가는데 3킬로 정도 지나니 주유소가 나온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북적북적하지만 마침 저 앞자리가 비어있네. 천천히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덜컹. 응? 바퀴가 연석을 밟았나? 근데 천천히 앞으로 가려고 하니 잘 안 나간다. 그제야 사이드 미러를 봤더니 프로판 주유기를 둘러싼 볼라드에 긁히면서 트레일러 옆이 찌그러져 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사고도 사고지만, 이렇게 되면 트레일러를 어떻게 뺄 수가 없다. 볼라드랑 접촉한 부분이 트레일러 바퀴를 중심으로 앞부분인지 뒷부분인지가 중요하다. 앞부분이면 차를 접촉 반대 방향으로 전진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뒷부분이면 당연히 접촉이 더 심해진다. 뒷부분일 경우에는 차를 접촉 반대 방향으로 후진하면서 접촉을 떨어뜨려야 한다. 이 은혜로운 팁을, 차를 무진장 왔다 갔다 하며 트레일러 좌측하단을 다 긁어가면서 이번 기회에 배우게 되었다. 무척 비싸게.


프로판 가스로 냉장고를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패널 부분이 가장 많이 찌그러졌다. 암모니아가 새지는 않았으려나... 걱정된다. 뭐 어쨌건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기름을 넣고, 출발한다. 그리고 캠핑장까지 한 시간 동안, 후회와 한숨만 계속되었다. 왜 굳이 행인들이 많은 그곳으로 들어가려 한 거지. 근데 거기 볼라드가 있었나? 만일 볼라드가 있었다면 트레일러 옆 전체가 긁히지 않고 아랫부분만 집중적으로 긁힌 거지? 아니, 애초에 도대체 왜 굳이 기름을 넣으러 간 거지? 오르막을 트레일러를 끌고 올라가면서 에어컨도 맥시멈으로 켜고 간다. 아, 몰라. 기름도 만땅인데. 엔진이 터져라 밟는다. 그러고 보니 오카나간 지역 캠핑장은 처음 와보는 거네. 웨스트 켈로나를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정체가 심하다. 에이 뭐. 기름 넣고 오기 잘한 걸지도. 캠핑장까지 오는 길도 꼬불꼬불 장난 아닌데, 그래도 우예우예 이렇게 왔다.


엉엉엉



트레일러 주차를 마치고 피해상황을 자세히 파악한다. 에라이. 이걸 어떻게 고치나. 한숨이 다시 나온다. 그래도 전원은 들어오네. 에어컨도 켜지네. 그런데 장난 아니게 덥다. 예보에 의하면 38도. 그리고 우리 사이트에는 그늘이 별로 없었다. 트레일러를 설치하고, 짐을 대충 꺼내어 놓고, 아내는 점심 준비를, 나는 가제보와 남은 캠핑 가구들을 마저 설치하고 있는데 갑자기 트레일러가 주저앉는다. 이건 뭐지? 알고 보니 트레일러 바닥에 있는 스테빌라이저 잭이 휘어서 트레일러를 지탱을 못하고 있었던 것. 덜컥 꺾이면서 트레일러가 뒤로 밀려났다. 아놔. 정말 볼라드가 밑에서 올라온 건가? 아 몰라. 연구를 하기엔 너무 덥다. 일단 후퇴. 트레일러의 에어컨 품으로. 아 더워도 너무 덥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눈을 좀 붙여야겠어서 일단은 샤워부터 하기로.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사이트 수에 비해 샤워시설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광역 밴쿠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 중 하나인 골든이어즈 골드크릭 캠핑장의 경우 160여 사이트에 있는 캠퍼들이 남녀 각각 4개의 샤워부스를 나눠 써야 하는 형국이지만, 베어크릭에서는 140여 캠프 사이트가 10개의 사워 부스를 나눠 사용한다. 게다가 전기가 들어오는 사이트도 많아서 커다란 RV들이 많다. 개인 샤워시설을 사용하는 캠퍼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그래서인지 샤워를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은 주로 저녁 식사시간 즈음인 6~7시경인데 그때만 반짝하고, 보통 취침 전에 샤워를 하는 우리들은 편하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넉넉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관리가 꼼꼼하다는 것도 장점이 되겠다. 일단 밤 11시부터는 공원 진입로를 아예 잠가서 외부인이 못 들어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골프카트나 트럭을 탄 공원 관리요원이 돌면서 사이트 점검을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 씩 스프링클러가 돌아 잔디밭과 나무에 물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잔디밭에 텐트 치는 건 금지). 이렇게 까지 꼼꼼하게 관리를 해도 남자 화장실 소변기 하나가 망가져 있는 건 참 특이했다. 캠핑장에 머물던 일주일 내내 수리가 안 되었었는데, 여기에 대해 '남자들이 그만큼 험하게 써서 그렇다'와 '남자들은 웬만한 고장에 대해선 별로 불평을 안 해서 그렇다'라는 주장으로 아내와 또 입씨름을 하며 캠핑 첫날을 마치게 되었다.  











베어크릭 주립공원 (Bear Creek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bear-creek-park/ ) : 비씨주 내륙 캘로나 시에서 호수 건너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캠핑장. 총 18개의 더블 사이트를 포함해서 총 143개 드라이브인 캠프사이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워크인 사이트는 없다), 그중 스무 개가 넘는 사이트들이 호숫가와 마주하고 있다. 켈로나 시내까지의 접근성, 오카나간 호수를 품고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오카나간 주민들은 물론 비씨주 주민과 멀리 앨버타에서도 인기가 높은 캠핑장이다. 총 143개 사이트 중 51개 사이트에 전기가 공급되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사이트들에 좀 더 나무가 무성해서 서늘한 그늘을 즐기기 좋다. 2023년 산불로 인해 식수를 받고 오수를 버리는 새니스테이션 (Sani-station)이 전소되어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캠핑장 곳곳에 있는 수도꼭지가 호스를 연결할 수 있는 나사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RV를 근처에 정차한 후 물을 받을 수가 있다.

 



가까운 시내 : 캘로나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3.5/5

프라이버시 : 2.5/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5/5

RV 정화조 : 없음 (화재로 전소)

RV 급수 시설 : 캠핑장 내부 수도꼭지 사용권장

캠핑 사이트 크기 : 2/5

나무 우거짐 : 2/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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