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이어즈 주립공원 - 골드크릭 워크인
다섯 살 즈음이었나? 부산 가야 아파트 앞마당에서 내려가는 긴 비탈길이 끝나면 <근대화 연쇄점>이라는 간판을 단 구멍가게가 있었다. 초저녁이 지나고 서늘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어머니와 누이와 같이 가게 앞까지 아버지의 퇴근을 마중 나가곤 했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제법 컴컴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겹기도 하고 배도 고프기도 해서 적잖이 찡얼거리고 있다 보니 어머니도 무료했는지 갑자기 내기를 걸었다. 내가 혼자서 비탈길을 다시 올라가 그 어두운 밤에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오면 500원을 주겠다고. 그때는 500원이 아직 지폐로만 존재했을 때. 몇 해 전 출시한 새우깡이 50원 했고, 문방구에 가면 각종 프라모델 장난감들이 보통 50원부터 시작하던 때여서, 500원이면 웬만한 독일군 탱크 프라모델을 살 수도 있었다. 당연히 두 번 생각 안 하고 냅다 달렸다. 부모들이 자식에 대해 참 모른다. 당신이 낳고 5년을 키웠더라도 아이가 어둠 속에 혼자 다니는 걸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돈에 그렇게 환장했다는 걸 몰랐던 거다. 산을 깎아서 만든 그 아파트 주변에는 그냥 흙더미나 덤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5분도 안되어 한 바퀴 돌았겠지. 그리고 그 500원은 아직도 못 받았다.
어릴 적부터 혼자 하는 걸 좋아했다. 같이 할 때보다 더 잘하기도 했었고, 사람은 자기 자신 정도는 혼자서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종종 사람들로부터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많다"라는 얘길 듣는데 그건 혼자서 다 하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스킬일 뿐. 중고딩 때 등하교도 친구들과 같이 한 적이 별로 없었고, 수험공부도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라 집에서 그냥 혼자 하는 편이었다. 그럼 외로움을 잘 안 느끼는 편이냐 하면 그건 아니어서, 오히려 주변 대다수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되면 큰 외로움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다... 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와 같은 마인드였었던 것. 여친을 사귈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서 밤이 너무나 춥고, 타인의 체온이 그리워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지만, 보통 1월부터 시작해서 대부분 한 해를 넘기기 못했던 그 연애들을 생각하면 정말 지독하게 싸웠던 기억들만 남는다. 내 삶에 상대의 생각이 섞이는 것이 마치 상대에게 잡아먹히는 거라고 두려워했었던 것인지 날 방어하기에 급급했었다. 대화라는 것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상대에게 공감을 얻고 '좋아요'를 받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다양한 생각들을 듣고 더 많이 배우기 위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 한참 나중이었다.
당연하게도 결혼해서 아내와 처음 갈등이 있었던 부분도 분업과 업무분장에 관한 것이었다. 일을 나눠서 각자 독립적으로 할 일을 하자는 내 생각과 웬만하면 식구끼리 일을 같이 하자는 아내의 생각은 극과 극이어서 서로 적응하느라 시간이 무척 걸렸었다. 그리고 곧, 도움을 청하기 전에 조언을 듣는 것을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나와, 어떤 작은 일 하나라도 결정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상의를 하고 싶어 하는 아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아플 때 혼자 내버려 두기를 원하는 나와, 옆에서 꾸준히 챙겨주고 간호해 주길 바라는 아내의 갈등으로 번져갔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분업화가 되어 서로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손발이 맞는 편이지만, 캠핑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업무분장이 매우 순탄치 않았다. 대화를 통해 타인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일을 나누는 것을 내 몸을 써서 직접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당연하게도 웬만한 건 내가 직접 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캠핑 준비에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내가 일이 너무 많고 내 몸이 힘들어 캠핑을 점점 싫어하게 되기도 했다. 당장 트레일러를 운전, 관리하거나, 불을 피우거나, 장작을 쪼개거나, 짐을 나르거나, 텐트를 치고, 타프를 치고, 망치질을 하고, 밧줄을 묶고, 음식을 준비하기까지 등등 이 모든 걸 내가 혼자서 하자니 도저히 쉴 틈이 나질 않았다. 뭐, 지금에 와서는 부분적으로 일을 나누기도 하고, 또 기계장치의 힘을 빌기도 하고 하면서 좀 많이 편해진 것도 있지만.
그래서 뜻하지 않은 손목 부상 때문에 나름 머리가 복잡해있었다. 망치질을 대신해줄 만한 기계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성능이 미덥지 않거나 손목의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당분간 텐트 캠핑은 물 건너간 것인가? 수술을 받고 회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언제쯤 정상적으로 손목을 쓸 수 있을지, 아니면 과연 그럴 날이 오게 될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차선책은 밧줄을 이용하는 것. 골드크릭 워크인 캠프 사이트의 텐트 패드의 경우 주변 지형에 비해 위로 약간 봉긋 솟은 모양이어서 밧줄을 아래로 바짝 당긴 후에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묶는다면 걸려 넘어질 위험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추가 안전조치로 야광색이 나는 밧줄과 페그도 따로 장만해 두었다. 그러고도 워크인 캠핑을 포기할지 말지 마지막 날까지 고민했었다. 텐트 치는 건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저 멀리 떨어져 주차된 차에서 이것저것 갔다 나르고 다시 옮기고 하는 것이 무척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올여름 역시 이미 원 없이 캠핑을 한 상태여서, 한번 정도 취소를 한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말을 맞아 날씨도 더워지고 또 아내가 호수에서 수영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기에 (올초부터 연습해 온 수영실력을 호수에서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또 이 때다 싶어 스노클링 장비도 마련했기에), 그래. 함 해보자. 하면서 출발했다.
물론 텐트 캠핑으로 결정되면 편한 부분도 있다. 일단 트레일러 준비, 연결 같은 사전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 그리고 운전을 아내에게 맡길 수가 있는 점. 특히 이 날처럼 회사에서 하루종일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날은 이 사실이 무척 고맙다. 아무리 일을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운전은 여전히 피곤하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니까 대신 운전을 해주고 돈을 버는 직업도 존재하는 것이겠지. 피자 조각으로 재빨리 허기를 달랜 후 미리 샤워를 하고 출발했는데, 캠프 그라운드 입구에는 체크인하는 캠퍼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입구 게이트 하우스를 리노베이션 한다고 해서 올해 초에 부스를 없앴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산망이 안 되니까 수기로 일일이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또 궁금한 게 많은 캠퍼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이것저것 조목조목 묻고 있다가 보면 어느새 저 뒤로 대기줄은 삼천리. 질문 사항이 있는 차들은 체크인을 먼저 한 후 옆으로 빼서 대답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 정도 융통성을 기대하는 건 이미 20년 전에 접었다.
이번에 캠핑장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사이트에 송충이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작년에도 초여름엔 괜찮다가 8월 초부터 갑자기 송충이 개체들이 늘어나 호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지지난주에 관리사무소에 문의 메일까지 보냈었는데 답은 “현재까지는 문제없음”으로 짤막하게 왔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짐 풀기 전에 꼼꼼히 점검을 해보고 나서야 마음을 놓고 텐트와 침구류, 주방도구, 먹거리 등을 주차장에서 사이트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도중 어떤 건장한 노인이 오프로드용 자전거를 타고 멈춰 서더니 대뜸 묻는다.
“너희 여기서 자 본 적 있어?”
나이가 들어 성격이 점점 더 까칠해지는 건지, 소수인종으로서 피해의식이 겹겹이 쌓여서 그런 건지, 요즘은 무례한 백인을 보면 심사가 곱게 나오질 않는다.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냐면, 여긴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응? 저 호숫가에서 보트 소음 때문에?”
“아니. 이 인간들이 시끄러워 No. These people!!”
주변 이웃 캠퍼들의 데모그라피를 보니 갓난아이와 2세 딸을 데리고 온 젊은 백인 부부,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날아다니는 6-7세 남자아이 둘이 있는 인도계 부부가 보인다. 그래도 these people이라니. 그게 차별적인 표현으로 조심하게 된 지 꽤 되었을 텐데. 저렇게 앞뒤 분별 못하고 아무거나 막말하는 인간들은 어디나 있다. 싸우기도 귀찮지만 그렇다고 공감해 주기도 싫다. “아니, 여긴 공원이고, 누구나 자기 인생을 즐길 권리는 있는 거지” 하며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더니 “참 나, 이해를 못 하는구만 Oh, you don’t understand!” 하며 꽥하고 사라진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성인들이 밤늦게 술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우는 소리,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면, 그냥 자기 별장을 사서 거기서 놀았어야지. (하지만 그 갓난아기는 밤새 숨이 끊어지도록 울었습니다. 텐트 캠핑 때는 꼭 귀마개를 동반할 것을 추천합니다)
텐트를 치고 나서 이제 밧줄을 매려고 여기저기 각을 재보고 있으려니 아내가 갑자기 "나도 망치질할 수 있는데.." 하며 휙 나선다. 으... 으잉? 저러다 손가락이라도 때리면 어쩌려고. 이보시오, 이제 우리, 뼈가 잘 안 붙는 나이라오.. 하며 말리려고 했지만, 곧잘 한다. 뭐, 여전히 자세는 무척이나 어설프고 페그도 절반 정도 들어가다 말았지만, 적어도 손가락이 세배로 부은 아내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뛰어갈 일을 없어 보인다. 아니 그럼.. 저렇게 잘하면서 이제껏 왜 나만 한 거여? 걱정되고 고마운 감정이 0.5초 정도 버티다가 이내 억울함이 스며든다. 왜 나만 했냐고? 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지랄 맞은 성격 탓이다. 내가 해야지 내 맘에 들게 할 수 있다고. 그걸 누굴 탓하겠어. 아내가 망치와 씨름을 하는 동안, 나는 자동차 배터리와 인버터, 그리고 제빙기를 동원해서 칵테일을 만들었다. 텐트 캠핑하러 와서는 얼음까지 만들고 있는 내가 참 오바의 극치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또 할 수 있는 걸 안 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따로 할 것도 없고. 놀러 왔으면 놀아야지.
한 낮 작열하는 태양열로 데워지는 숲 속 공기에 비해 밀도가 높은 호수물은 늦게까지 따뜻해지지 않기에 오후가 되면 산들바람이 호수 쪽으로 분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언덕 너머 반짝이는 호수를 보는 일은 황홀하다. 그래, 워크인이라 짐 옮기고 하는 게 좀 불편하긴 하지만 경치는 죽이네. 그래도 다른 캠핑장 워크인 사이트가 $13 ~23을 받는데, 이 골든이어즈 인간들은 무슨 배짱으로 드라이브인 사이트 가격 ($35)을 다 받는 건지 모르겠다 (https://nrs.objectstore.gov.bc.ca/kuwyyf/camping_fees_and_policies_supplement_113d76cb46.pdf). 심지어 이곳 골드크릭 워크인 사이트처럼 테이블 있고 모닥불 화로도 있는 앨리스 호수 워크인 사이트도 1박에 $23인데... 무슨 호텔들처럼 경치 값 받는겨? 사이트도 좁고 프라이버시도 비교적 안 좋은데 어찌 드라이브인 사이트 가격을 받는 거지? 생각해 보면 캠핑 하나 하는 것도 주립공원에는 참 억울한 일은 많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다. 놀러 왔으면 놀아야지. 왜 화를 내고 그래.
다음날 아침 호수물이 완전히 식기 전에 내려가 수영을 해볼 참이었지만, 캠핑장에 오면 어떻게 이렇게 잠을 잘 자게 되는 건지. 느지막이 일어나 사발면에 에스프레소를 한 잔 때리고 나니 식곤증이 또 몰려온다. 휴일에는 역시 아침 먹고 또 자야죠. 해먹을 걸어두고 흔들흔들 잠에 든다. 10시가 넘었는데도 호수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여전히 서늘하다. 한참을 쉬다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오리발과 스노클을 챙겨서 호수로 내려가 본다. 골드크릭 캠핑장에서 알루엣 호수로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3가지. 보통 캠핑장 입구 P5 사이트 근처에서 출발해 가장 큰 해변 A로 향하는 널찍한 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자갈길이긴 해도 경사가 그리 깊지 않고 잘 포장이 되어 있는 편이라 자전거나 수레, 유모차로 가기도 편한 편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동반한 가정집에서 호숫가 수영을 원한다면 대부분 이 길을 사용한다. 여름철 한낮에는 수레에 각종 튜브 등을 싣고 내려가는 사람들을 잔뜩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알루엣 캠핑장과 연결되는 호숫가도 이곳이다 보니 이곳 호숫가는 항상 사람이 많은 편.
이 호숫가에 가는 길은 또 다른 길이 있다. 동쪽 샤워실에서 산기슭 (호수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숲 속) 산책로가 나오는데, 뭐 산책로라 하기에는 사실 표지판도 없고 길도 정확히 보이질 않아서 찾기 어렵지만 암튼 Gold Creek Viewpoint Trail이라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우측에 캠프 사이트들을 보면서)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철조망이 나온다. 다시 철조망을 따라서 조금 내려가면 갯바위들이 모여 있는 작은 호숫가가 나오는데, 이곳은 바로 알루엣 호숫가의 좌측 해안 B와 바로 연결된다. 이 호숫가는 무척 협소한 편이고, 모래사장 없이 갯바위들만 즐비해 바로 깊은 호수와 맏닿아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그나마 여길 찾아오는 사람들도 수영을 하기보다는 낚싯대를 들고 온다.
또 다른 길은 골드크릭 호숫가로 가는, 경사가 꽤 까다로운 산길인데, 바로 워크인 캠핑장과 연결되어 있다. 애초에 이런 작은 산책로들은 그전에도 워낙 관리를 안 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 간 팬데믹을 핑계로 아예 관리를 멈춘 것 같아 보인다. 나무가 무너져 길이 끊기거나 비가 안 와서 길이 무너져 있어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래도 엊저녁부터 튜브를 들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양손으로 저렇게 짐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 튼튼한 두 팔로 나무를 붙잡고 내려가면 못 내려갈 것도 없어 보였다. 아 맞다. 나 팔 다쳤지...
더듬더듬 조심해서 내려가보니 이쪽 호숫가에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다. 그냥 몇 개의 보트와 튜브들이 누군가가 미리 맡아둔 자리라는 것만을 시위하고 있었다. 바로 골드크릭 건너편, 노스비치 캠핑장과 접한 호숫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지만, 여기처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은 자주 들락날락 하긴 어려운 편이다. 작은 튜브에 바람을 채운 후 아내는 그 위에 올라타 유유하게 일광욕을 즐긴다. 발을 담가보니 호숫물은 여전히 전날의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맑은 수면 아래로 송어의 치어들이 내 발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이 보인다. 하. 이것들도. 참. 잘 생긴 건 알아가지고. 옛다. 각질이다.
난생처음 스노클을 입에 물어보니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입도 제대로 안 닫히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영화에서 본 것처럼 대충 물고 물에 들어가 보니 어라? 생각보다 물 안에서는 호흡이 쾌적하다. 이 정도면 이대로 몇 시간이고 떠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호수 내부 사정은 물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뭔가가 잔뜩 떠 있어서 시야도 흐리고, 의외로 물살이 제법 세어서 헤엄을 치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스포츠용품점에서 떨이로 구매한 작은 오리발은 내 발에는 맞지 않아서 그냥 슬리퍼만 신고 들어왔더니, 내 발장구 실력만으로는 이 물살을 이겨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가려고 사력을 다해도 그 자리에 맴돌더니 어느샌가부터 어디가 수면이고 어디가 해변인지 분간이 안 간다. 에그머니나. 한 손에는 고프로를 들고 호기롭게 들어왔던 건 까맣게 잊고 양손으로 허우적 대면서 간신히 호숫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노클이 잠기면 그걸 통해 물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얼른 스노클을 입에서 뗀 후 헤엄을 쳤지만 수영을 배우기 전에 스노클링을 시작했다면 엄청난 패닉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호숫물을 퍼먹게 될 줄이야. 내 발 각질도, 타인의 각질도 먹었겠지. 그뿐 아니라 여긴 개들도 호숫물에 첨벙첨벙 들어가는데. (캐나다에선 구충제를 어디서 구하는 지도 모르는데 ㅠㅠ)
골드크릭 워크인 캠핑장의 가장 큰 장점은 호수 위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밤낮으로 따뜻한 바람과 서늘한 바람이 왔다 갔다 한다. 지난 6,7월에 드라이브인 사이트에서 묵었을 때는 (작년처럼 송충이는 없었어도) 작은 블랙플라이와 No-See-Um 들에게 적잖이 피를 갖다 바쳤고 그 이후로 한 주 정도 알러지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바람이 계속 불어오는 워크인 사이트에서는 적어도 그런 작은 날벌레들의 공격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곳 워크인 사이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동쪽을 향해 늘어서 있다는 것. 그래서 골든이어즈와 알루엣 호수에 비치는 일출을 텐트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날은 저녁놀보다 훨씬 더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서 가슴을 설레게 했었다. BC주 내륙 지방의 다발성 화재와 그로 인한 대기오염 때문에 태양이 붉게 물들었다는 건 무척 마음이 아팠지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회사를 다니고 퇴사하고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인생은 원래 독고다이"라는 신념은 계속되었었다. 사실 그런 나 자신이 무척 못나게 보이고 부끄럽기도 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성격 탓으로 치부해버리곤 했었다. 나중에 <제5 원소>를 극장에서 볼 때, 우주 대악당으로 나오는 게리 올드맨이 "일을 제대로 끝내려면 (남 시키지 말고) 직접 하는 수밖에 없어! If you want something done, do it yourself, yep!"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혼자 빵 터지다가 서글퍼지기도 했다. 이런 성격은 악당들이나 갖고 있는 거구나.. 하고. 취업 면접을 볼 때에도 가장 힘든 질문은 "타인과 협력해서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례"를 드는 것이었는데, 한창 일자리를 찾으러 다닐 때에는 면접에서 백이면 백 항상 나오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했었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자신을 아무리 몰아붙여도 자기 만으로는 완벽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완벽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고 어차피 인간 사회란 부족하고 비루한 개체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게끔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일 하나하나를 완벽하고 깔끔하게 해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만일 그게 좀 더 삶을 재미있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절차라면,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주목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절충할 수 있게 되겠지. 비록 팔목을 다치고 나서야 페그 머리를 삐죽 남겨 둔 아내의 망치질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이후 안전에 대한 보완책만 있다면 사실 페그가 얼마나 깊고 깔끔하게 들어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저 면접 질문을 지금 받는다면 나 자신의 소통능력이나 리더십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발견했고 팀플레이를 통해 그걸 어떻게 극복했었는지를 얘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