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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Nov 04. 2021

RV 캠핑

포트 캠핑

[먼저 용어 정리를 하자면, 이글에서 RV란 Recreational Vehicle이라고 해서 놀러 다닐 때 캠핑 및 생활을 할 수 있는 레저용 차량을 통틀어 말합니다. RV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캠핑용 트레일러 역시 그중 하나에 속합니다. 캠핑용 트레일러는 유럽이나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카라반이라고도 불립니다]


2016년 캠핑은 애초에 얼떨결에 시작했었기 때문에 캠핑장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던 터라, 2017년에는 연초부터 록키 차박 캠핑을 위해 국립공원 캠핑장 예약에 몰두했다. 아내는 이번엔 그냥 관광지 주차장 답사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트레일 산책이나 등산을 하고 싶어 해서, 아예 벤프 근처에서만 집중적으로 돌아다녀 보려고 루이스 호수 캠핑장에만 머물기로 했다.


한동안 앨리스 호수나 폴퍼스베이 등 주립공원 캠핑을 하면서 차박의 간편함을 충분히 즐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많은 제한을 느끼기도 했다. 일단, 준비할 거리가 별로 없는 간편함이란, 사실 많은 걸 준비할 수 없는 공간 제약 때문에 나오는 것이어서, 캠핑을 하는 동안 주로 간편식이나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 경우, 하루 이틀 캠핑이나, 아니면 캠핑장이 시내와 가깝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난 밴쿠버 아일랜드 캠핑처럼 장기 캠핑의 경우에는 식자재 / 요리 도구 보관함을 따로 마련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또한, 추위도 문제였는데, 차 안에서 누워 자는 동안이야 그리 추위를 심하게 못 느꼈지만, 캠핑이라는 게 노숙이 전부인 여흥이 아니어서, 앉아서 책을 본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할 때의 난방시설에 대한 별도의 고민 역시 필요했다.


애플보다는 윈도즈 컴퓨터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뭔가 하나를 살 때마다 그 자체의 완성도도 고려대상이지만 차후의 확장성에 많은 점수를 주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2016년 초에 차박용 차를 보러 다닐 때에도 내부 취침 공간과 함께 캠핑 트레일러 (카라반)를 견인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고려대상이 되었었다. 다행히 캐나다 시장에 나오는 3500cc 급 중형 SUV의 경우 대부분 5000 lbs까지 끌 수가 있어서, 웬만한 소형 트레일러라면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아내에게 미리 말은 안 했지만, 먼저 견인 성능을 첫째로 고려해서 후보 차량들을 정하고, 그중에서 안전성이나 품질에 대한 리뷰들을 더 살펴보고 후보를 좁힌 다음에, 직접 하나하나 시승하고 누워보고 해서 골랐다. 어쩌면, 우리 습성상 차박 캠핑은 금방 졸업하고 곧바로 카라반을 구입하게 될 것이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엔 차박 시스템으로 최소 2년은 갈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차피 카라반을 구입한다 하더라도 그것만 딸랑 사면 끝이 아니라, 그걸 견인할 수 있는 힛치 (Hitch 견인 고리)와 힛치 리시버 (Hitch Receiver. 견인 고리를 달 수 있는 커다란 철제 브래킷으로 차량 바닥에 설치한다)도 설치해야 하고, 카라반처럼 덩치가 어느 정도 되는 여행용 트레일러의 경우, 자체적인 (전자석) 브레이크가 달려있어서 브레이크 컨트롤러 역시 따로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액세서리들은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가면서 적당한 트레일러를 시간을 두고 쇼핑하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름에 벤프에 또 간다고 하니, 차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그 동네에는 식료품을 살 만한 마땅한 곳이 벤프 시내밖에 없었고, 밴프 시내 식당에서 매 끼니 사 먹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낌새가, 뭐 대단한 산악 행군 같은 걸 기대하고 있는 눈치여서, 잠이라도 좀 편하게 자고 싶은 마음도 컸다. 뭐. 그럼. 어차피 내년에 지르나 올해 지르나, 어차피 이왕 지를 거 조금이라도 젊을 때 사서 체력이 있을 때 신나게 가지고 놀자… 뭐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카라반 쇼핑에 나섰다.


이번 록키 캠핑에는 RV를 사 가지고 가자는 계획에, 아내는 의외로 순순히 동의를 했다. 또 은행 빚을 만드는 짓거리가 좀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놀러 다니자는 기본적인 인생관은 서로 통했던 것이다. 사실, 이 즈음에는 서로의 여가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 달라져서 (그리고 갱년기 초입이라 아직 쌈질한 힘이 남았어서) 갈등도 많았고 피 튀기게 싸움도 많이 했던 때였는데, 또 이렇게 놀러 다니려고 돈 쓸 궁리를 할 때는 서로 죽이 착착 맞는 걸 보니.. 아.. 이제 정말 가족이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처음 RV 구입을 위해 이리저리 다니던 중, 은행 대출 금리를 알아보기 위해 동네 S 은행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Financial Adviser (재무 상담가?)를 하시던 분이 한국 사람이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면서 이 얘기 저 예기를 하고 나서 대출용도에 대해 대답을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RV는 절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아는 사람 그거 샀다가 세번 정도 쓰고 나서 계속 처박아 두고, 결국은 헐값에 팔았다.”, “차라리 원한다면 렌트를 해서 써라.”라고 매우 심각하게 우리를 뜯어 말리는 것이었다.


대출 고객을 한 명 더 확보하는 게 은행으로서는 이익일 테니, 이분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배신해서라도 고객 자산 안전에 더 충실한 조언을 해준 것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미 RV 캠핑의 5년간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둔 터라서,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 빙긋빙긋 웃어넘겨 버렸다.


사실 렌트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캐나다 국립공원 주차장마다 그야말로 넘쳐흐르는 렌트 RV 회사인 CanaDream의 RV의 경우, 작은 밴 스타일 RV (Class B)가 1박에 $250 정도 했었는데 (2017년 기준. RV 캠핑 여행이 인기 대폭발한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1박에 $359) , 이러면 6박이면 벌써 $1,500이 되었다. 여기에 보험료, 세금 포함하면 $2,000이 훌쩍 넘어서, 이렇게 되면 당연히 루이스 호수 앞에 있는 페어몬트 호텔에서 3박 정도 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은가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게다가 비쌌던 것도 비싼 거였지만 여름철 성수기 렌트는 이미 일 년 전에 예약이 가득 차 있어서, 뭔가 해 볼 방법이 아예 없었다. 어찌 되었든 보험과 세금 포함해서 1박에 $300이라고 하면, $1,8000짜리 트레일러를 사서 60일만 다녀도 본전을 뽑는 거라는 계산이 자연스럽게 도출되었다 (그리고 RV 구매 후 2021년 10월까지, 총 38회 캠핑으로 124박 162일을 썼으니 본전 두 배 정도는 뽑은 셈이다).


캠핑 트레일러를 구입할 때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은 바로 주차문제였다. 일단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고 또 지하 주차장에 우리 자리가 하나 남아 있으니, 가능하면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만한 트레일러이기를 바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파트 주차장에 RV를 세워두는 건 규칙 위반이었지만..). 물론, 주변의 다른 민영 RV 캠핑장이나 RV Park 같은 곳에 임대를 하는 옵션도 있었지만, 최소 월 $100의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두었다.


사실, 아내나 나나 둘 다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캠핑 트레일러는 예전 60년대 히피들의 상징인 ‘볼러 (Boler https://www.boler-camping.com/portfolio/history-of-the-boler/)라는 제품이었는데, 13ft. 길이로 일단 작고 가벼웠으며, 보트 제작에 사용되는 유리섬유 (Fiber Glass) 외장이라 평생 비가 샐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결정적으로 귀여웠다. 하지만 이미 애저녁에 단종이 되었으며, 최근에 다시 나오는 재활용 제품들의 경우, 노후 상태가 너무 가지각색이라 얼마나 오래 더 쓸 수 있을지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 만일, 상태가 좋은 재활용품이 있었다면, 어쩌면 주차장소를 돈 주고 임대하더라도 그 ‘볼러’를 선택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접이식 트레일러 (Folding Trailer)’나 ‘티어드롭 (Teardrop https://www.theteardroptrailer.com/)’이라고 불리는 눈물방울 모양의 작은 트레일러 중에서 골라야 했는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티어드롭’의 경우엔 공간이 협소해서, 우리에겐 딱히 차박과 별반 달라 보이질 않았다. 적어도, 자고 일어나 실내에서 곧바로 커피 물을 끓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은 나왔으면 했다.


‘접이식 트레일러’에도 평소에는 꼭꼭 뭉쳐져 있다가 캠핑장에선 위아래로 이리저리 잡아 빼서 침실 공간을 만들어내는 ‘텐트 트레일러 (Tent Trailer)’의 경우에는 확장공간 외벽 재질이 방수천인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곰이 나오는 캠핑장에서는 음식을 다른 곳으로 옮겨놔야 하는 문제는 똑같이 발생한다. 이렇게 차 떼고, 포 떼고 하다 보니, 우리에게 별다른 옵션이 없어 보였고, 결국 선택한 RV는 ‘접이식 트레일러’ 중 천장을 세모꼴로 올려서 쓰는 ‘에이프레임 (A-Frame) 트레일러’가 되었다.


이렇게 캠핑 트레일러를 구입하는 것이, 매장에 가서 ‘이거 주세요’ 하며 그냥 집어올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차에 그 트레일러를 쓸 수 있는 장치들이 먼저 다 마련되어 있어야 했다. 이렇게 5~6월 동안은 매장을 다시면서 전시 제품 구경을 하고, 한편으로는 ‘힛치’나 ‘브레이크 컨트롤러’와 같은 견인 액세서리들을 하나씩 사서 설치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가격에 팔고 있는 딜러를 발견했고, 차에 달아서 한번 시운전을 해봤는데…… 아… 정말… 후진하면서 깜짝 놀랐다. 트레일러 후진 시에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의 반대로 핸들을 꺾어야 하는데, 그것도 트레일러 길이만큼 더 먼저 꺾어야 하는 것이어서, 애초에 아무 경험도 없던 나로서는 너무 크게 당황했다. 마치 손을 아무리 뻗어도 상대에게 닿지 않는 악몽을 계속 꾸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이날은 후퇴.


집에 와서 좀 검색을 해보니… ‘트레일러 후진’에 대한 첫 경험을 적은 글들이 수만 개 쏟아졌다. “캠핑장에서 다른 사람이 트레일러 후진하는 걸 보고 웃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번엔 당신이 웃길 차례..”라는 식으로, 트레일러 후진의 어려움과 연습 방법에 대한 글들이 차고 넘쳤다. 하긴, 한국에서는 트레일러 면허가 따로 필요하다고 하니.. 내가 딱히 운전 센스가 없어서 후진이 어려웠던 게 아니었고, 결국 방법은 많은 연습과 경험뿐이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수많은 트레일러 후진 팁들 중에서 가장 유익했고, 지금도 쓰고 있는 방법은 “똑바로 후진을 한다고 가정을 할 때, 사이드미러를 보다가 트레일러 엉덩이가 오른쪽으로 튀어나오면 핸들을 우측으로, 왼쪽으로 튀어나오면 핸들을 좌측으로 꺾어라”라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또 다른 유익한 팁은 “트레일러 후진은 원래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감을 잡은 후, 카라반을 인도받으러 갔을 때 영업사원한테 한 번 더 물어봤다. 도대체 후진을 금방 익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는지.. 영업사원은 여전히 매우 친절한 표정이었지만, “그거야.. 뭐..”하며 얼버무렸는데, 그 말 줄임표 뒤에 “네 사정이지..”가 붙었을지, “극복해야지..”가 붙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요즘은 무슨 제품 하나를 살 때에도 추가 액세서리 구매를 추천받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필요한 부속품이 있다면 겸사겸사 같이 구매하는 것도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 우리가 구매할 카라반은 ‘접이식 트레일러’ 치고는 길이가 제법 긴 트레일러였어서, 커브를 돌 때 원심력으로 차체가 따라 흔들리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퀄라이저 (Equalizer)'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무게 분배 장치 (Weight distrubuter)라고도 하는 이 장치는, 무겁고 긴 트레일러를 소형차로 견인할 때, 견인 고리에 집중적으로 부과되는 트레일러 무게를 앞뒤로 골고루 나누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트레일러가 꺾이는 각도를 제한해서 커브 시 흔들리는 현상 (Fish Tail 현상)을 최소화해준다.


아내의 도움으로, 그리고 그동안 커다란 회사 차량을 몰면서 출장 서비스를 다녔던 경험 덕에, 오는 내내 덜덜 떨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집 주차장까지 몰고 올 수 있었다 (심지어 지하 주차장에서는 후진으로 들어갔다). 너비가 2m 조금 넘고, 길이가 5m 조금 넘는 크기여서, 어떻게 어떻게 주차 칸 하나에 다 들어갈 수는 있었는데, 그 안으로 정확히 넣기 위해서는 손으로 밀어야 했다. 여행용 트레일러 치고는 작고 가벼운 편이지만 그래도 1t 가까이 나가는 무게였는 데다가, 주차장 맨 구석에 있는 우리 집 주차 칸에 약간 경사가 있어서, 손으로 밀어 넣는 데에도 두 사람의 근력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렇게 세워놓고 보니, 앞으로 놀러 다닐 생각에 가슴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캠핑 트레일러라는 것이, 단순히 잘 끌려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전기, 냉난방, 엔터테인먼트 등, 마치 하나의 주택과 같은 기능이 따 들어있기 때문에, 매장에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성능을 체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상하수도 및 전기가 공급되는 사설 캠핑장에 가서 모든 걸 연결하고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보통 시내에 있는 RV 캠핑장이나 RV 파크의 경우에는.. 뭐라 할까.. 뭔가 좀.. 그냥 주차장 같은 느낌이어서, 아무리 RV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거기서 돈을 내고 하룻밤을 묵는 것이 영 꺼려졌었는데, ’포트 랭리 (Fort Langley)’에 있는 사설 캠핑장인 '포트 캠핑 (Fort Camping)'은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산책로나, 자전거 도로, 아기자기한 식당이나 상점 등, 놀 거리 볼 거리가 풍부해서 한번 가봐도 괜찮을 듯싶었다.

'포트 캠핑 (Fort Camping)' 주변의 산책로, 자전거 도로, 프레이저 강변


일반적으로 RV 캠핑 손님을 많이 받는 사설 캠핑장의 경우에 RV 주차방식에 따라 두 가지 캠프 사이트가 있는데, '풀쓰루 (Pull Through) 사이트’의 경우에는 캠프 사이트 앞뒤가 열려 있어서 (트레일러를 매단 채) 전진을 하는 방식으로 주차를 할 수 있고, ‘백인 (Back in) 사이트’는 캠프 사이트 한쪽으로만 입구가 있어서 후진으로 주차를 해야 한다. 물론 주차가 쉽기는 ‘풀쓰루’가 훨씬 쉽겠지만, 아무래도 ‘백인’에 비해 이곳저곳 많이 공개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 또 보통, 주차장처럼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서 이웃 사이트와 바짝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우린 겸사겸사 후진 연습도 할 겸, ‘백인 사이트’로 잡았다.

차에 연결한 채 후진해서 집어 넣는 백-인 (Back In) 사이트


날이 맑아서 우천 시 방수상태 테스트는 못했지만 그건 딜러가 미리 테스트했다고 했으니 믿기로 하고, 일단 전기며 수도며 모두 연결해서 각 기계들의 기능을 점검해보았는데, 다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싱크대 하수 배관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했다. 뭐.. 수리공으로 밥 벌어먹는지라, 간단한 배관 수리도 직접 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꼼꼼한 점검을 미리 안 하고 제품을 팔아먹은 딜러가 좀 야속해졌다 (그리고 또, 이후에는 건전지에 이상이 있는 것도 발견한다).


물론, 1년 동안 품질 보증 기간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재까닥 재까닥 고쳐주겠다고는 했지만, 몇 푼 아껴보겠다고, 집에서 제법 먼 곳에서 구매를 한 터라, 자잘한 문제 하나를 AS 받으려고 또 트레일러를 달고 끌고 가기가 너무 귀찮았던 것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중고품을 알아보는 게 나았을 거라는 후회도 들었다.


사실.. RV의 품질 문제를 딜러에만 책임을 지울 수가 힘든 것이.. RV라는 상품 자체에 품질기준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이후에 RV를 끌고 캠핑을 다니면서 만났던 100% 모든 이웃 캠퍼들이, 다 자기 RV의 품질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매장에서 최소 만 오천 불 정도를 주고 신제품으로 구입한 상품인데... 사실 이건 뭐.. 너무 허접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싱크대나 식탁 재질로 그냥 MDF 보드에 라미네이팅 한 것이고, 좀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나사가 빠지기 십상이다. 우리가 구입한 트레일러의 경우 삼각 지붕이고 평소엔 지하주차장에 보관하는지라 그나마 오래 버텼지만, 보통 일반적인 평면 지붕 캠핑 트레일러를 비수기 동안 실외에 주차해두고 그러면 일 년 만에 비가 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아니… 만 오천 불 주고 소형차를 사면, 그래도 믿고 타고 다닐 수 있게 나오는데, 새 차를 샀는데 일 년 만에 비가 샌다거나 그런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째서 RV라는 제품의 품질은 이 모양인가?


이미 RV를 사고 아직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 지름질에 대해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름 변호를 해본다면... 먼저, 자동차 산업의 완성차 품질과 비교하는 건 좀 부당하다는 점인데, RV가 가격에 비해 품질관리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대량 생산과 대량 판매가 가능한 완성차들이 품질에 비해 판매 가격이 매우 낮은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대 기아 자동차의 2019년 영업 이익률은 3.5%인데, 그래도 매출이 106조 정도 되니, 3.5% 마진을 남기더라도 먹고살 만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RV 제조사의 경우 손바닥만한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경우가 많아서, 판매량도 그렇게 많지 않고 매출도 자동차 회사에 비교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북미에서 가장 큰 RV 제조사 중 하나인 Winnebago의 경우에는 뉴욕 주식시장에도 공개된 대기업이고, 2019년 매출은 26억 정도, 그리고 영업 이익률 13%, 순수익은 약 1억 3천 정도를 달성했다. RV 업계의 대기업의 수익도 이 정도밖에 안 되니, 같은 가격대라고 하더라도 같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참고로 유럽 RV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폭스바겐의 EuroVan-California의 경우는 북미 시장에는 정식 수출을 하고 있지 않은데, 폭스바겐 공식 입장에 의하면 차량을 북미 기준으로 변경하는 비용에 비해 예상 매출이 크지 않기 때문에 수출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https://www.adventure-journal.com/2019/08/its-absurd-the-new-vw-california-camper-van-isnt-sold-in-the-us -heres-why/)


매출도 매출이지만, RV의 경우 대부분 현지 제조 / 생산이기 때문에 인건비나 설비, 폐기물 처리 등 비용도 커지고, 또 가격을 맞추려니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오히려 RV에 설치되어있는 가전제품들 -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오디오 등 외국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들의 품질이, RV 트레일러 조립 품질이나 내장 가구 품질보다 더 우월하다는 건 정말이지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RV 제조의 경우 압도적인 품질로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선두주자가 없어서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대부분 RV 구매자의 경우, (돈 내고 노숙하는)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RV의 낮은 품질 기준 때문에 생기는 돌발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하기 (심지어 즐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RV를 사용하다 보면, 이건 정말 소비자를 이렇게까지 우롱할 수 있는가 생각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단적인 예로 북미에 있는 RV의 60% 이상이 같은 수납함 열쇠 (CH751)를 사용한다는 점도 그렇다 (https://www.truckcamperadventure.com/replacing-your-worthless-ch751-locks/). 우리가 구매한 트레일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 사실을 알자마자 새로 바꿔 달아야 했는데, 아니.. 한 캠핑장에 있는 RV 중 60%가 같은 잠금장치를 쓴다면… 그게 무슨 잠금장치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많은 RV 사용자들은 이걸 제조 결함이라고 제조사에 항의하지 않고, 그냥 자기들이 알아서 교체한다)


여하튼, 싱크대 배관 수리를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테스트를 마쳤던 이때는 아직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마냥 설레었던 때여서, 아내와 함께 여기엔 옷걸이를, 저기에는 수납함을.. 등등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테스트 캠핑 밤을 보냈다.






포트 캠핑 (Fort Camping https://www.fortcamping.com/) : 광역 밴쿠버 '포트랭리 (Fort Langley)' 의 '브래 섬 (Brae Island)'에 위치한 민영 캠핑장. 섬이라고는 하지만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차량, 혹은 도보로 진입할 수 있다.  광역 밴쿠버에 있는 대부분의 사설 RV 캠핑장이 그러하듯이, 사이트 간 간격이 매우 가깝고, 캠핑 비용도 주립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하지만, 상하수도 및 전기, 샤워실이나 세탁실 등 모든 편의시설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 주립공원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개별 사이트의 크기도 무척 협소해서 차량 1대, RV 1 대 이상 주차가 불가능 하고, 방문객 차량 주차공간이 따로 없지만, 캠핑장 바로 옆에 브래 섬 공원 (Brae Island Regional Park)이 있어서, 방문객은 공원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포트 랭리 시내와 바로 다리 건너 위치하기 때문에, 포트 랭리의 재미난 음식들이나 쇼핑거리들을 즐길 수도 있고, 캠핑장 주변의 다양한 산책로 역시 즐길 수 있다. 특히 성수기 공휴일 포트 랭리 시내는 주차 난이도가 극악에 가깝기 때문에, 아예 포트 랭리에서 하루를 즐기려면 캠핑장을 예약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겨울 캠핑도 여름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지만, 대개의 민영 캠핑장 처럼 수세식 화장실을 잠가둔다고 해서 화장실을 가지고 있는 RV만 캠핑이 가능하다.



가까운 시내 : 포트 랭리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4/5

이동통신 / 데이터 : 가능

프라이버시 : 1/5 ~ 2/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샤워실 유료. 겨울엔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있음. 그리고 풀서비스 RV 사이트에는 하수도 시설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 3/5

나무 우거짐 : 2/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4/5







<RV를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하는 점>

   

주차 : 저택에 살면서 자체적으로 넉넉한 주차 공간이 있지 않는 한, 주차 문제야말로 RV 구매 전에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광역 밴쿠버의 대부분 시청에서는 RV (특히 트레일러)의 길거리 주차를 금지하고 있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트레일러라고 할지라도, 대개의 주민 자치회에서는 RV 주차 금지를 규칙으로 정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 근처 RV 캠핑장이나 RV 파크에다가 월정액을 지불하며 주차를 하게 되는데, 광역 밴쿠버의 경우 장소에 따라 $100~$200 정도 한다.

  

브랜드 / 매장 : (Airstream을 제외하고) 북미에서 유통되는 대부분 RV 트레일러의 품질은 매우 조악하기 때문에, 품질 자체에 많은 기대를 하는 건 무리가 있다. (마치 테슬라 신차 구매할 때처럼) 어차피 뽑기 운이고, 고쳐 가면서 써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하다. 본인이 집수리나 기계 수리에 어느 정도 경험이 없다면, 가능한 한 집과 가까운 매장을 선택해서,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꼬박꼬박 AS를 받도록 하자. (하지만, 대개의 RV 딜러의 경우, 자동차 딜러와 달리,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자금력에서 자동차 딜러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워런티 (Warranty 품질 보증) 기간 : 새로 구매한 RV의 경우 1년 전체 보증기간이 따라오고, 바퀴 축 (Axle)에는 10년 보증기간이 따라온다. 하지만, 북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RV 워런티 (Warranty 품질 보증)는 최초 소유주에게만 적용되고 이전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중고로 구매할 경우에는 제조사 AS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융자 : 일반 자동차 구매와 달리, RV 구매 시 대출의 경우에는 마치 주택 모기지처럼 20년~30년 장기 상환 옵션이 많다. 물론 판매 촉진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은행에서 이자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큰 반면에, 세월이 지나도 가치 하락이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4.5% 금리의 25년 상환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대출원금의 75% 넘는 금액을 이자로 내게 되는 것이고, 첫 5년간은 그냥 이자만 줄창 내는 거라서 5년 뒤에 목돈이 생겨 죄다 갚는다고 하더라도, 대출원금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걸 발견하게 된다.


달라지는 캠핑 스타일 : RV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견인 차량에 끌고 다니는 트레일러 (카라반) 형과 차량 자체에서 숙박 및 취사가 가능한 모터홈 (Class A, B, C) 형이 있을 텐데, (폭스바겐 캠퍼와 같은 초소형 Class B를 제외하고는) 죄다 운전하기에도, 주차하기에도 너무 거추장스럽다. 모터홈의 경우, 캠핑장 밖으로 간단한 쇼핑이나 관광을 다닐 때조차 그 큰 덩치를 끌고 다녀야 하는 단점이 있고, 트레일러는 이동 중에 갑자기 주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말하자면, 차를 몰고 가다가 어쩐지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발견하더라도, 혹은 야생동물을 발견하더라도, 휙 하고 차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렵게 된다. 또한, 트레일러가 되었든 모터홈이 되었든, 이들도 기계 혹은 설비라서 (마치 집처럼) 정기적으로 점검과 관리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때문에 접이식 트레일러의 경우 장기 캠핑 중 하루는 RV 점검으로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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