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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Oct 29. 2021

아웃도어 온도차

내언 폭포 주립공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편으로는 전 세계적인 미의 기준이 여리여리한 몸매보다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건강미로 옮겨가면서 한국이나 북미에서 운동 붐이 일게 되자, 아내가 주로 알고 지냈던 또래의 SNS 이웃들 외에도, 많은 블로거들이 이른바 ‘아웃도어 라이프’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내 역시, 몇 해 전부터 시작한 필라테스나 요가와 같은 간단한 운동 덕택에 저질 체력 그룹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고 있었고, 그렇게 될수록, 등산, 장거리 트래킹, 백패킹 등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진 기반의 SNS가 대유행하면서 각 지역 명소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성지순례 도장 찍듯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가며 ‘인생샷’ 운운하며 인증을 하는 것도 유행했는데, 여기에 자연경관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BC주가 빠질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BC주  ‘마운트 커리 (Mt. Currie)'에 위치한 ‘조프리 호수 (Joffre Lakes)’는 인스타그램의 스타가 되었다.


캐나다 록키에 있는 여러 호수들을 보면 에메랄드라고 해야 하나, 비취라고 해야 하나, 암튼 어떨 때는 그런 찬란한 녹색 보석들의 색감을, 어쩔 때는 파스텔 톤의 녹색 물감을 뿌린 것 같은 호수 색깔이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 색깔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데, ‘조프리 호수’에 가게 되면 바로 이런 광경을 록키까지 가는 반에 반도 안되는 수고를 들여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세번째 호수까지 걷는 5.5km 정도 (880m 오르막)의 가벼운 산행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멋진 풍경을 확인했을 때의 충격에다가 성취감까지 플러스해준다. 그래서인지, 조프리 호수는, 2010년대 중반부터 몇 년 동안 광역 밴쿠버의 인스타 성지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는데, 새벽에 가지 않으면 주차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건 당연하고, 등산로 역시 항상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바람에,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주립공원 산행로 중에서 맨 처음 폐쇄되었고, 등산로 정비를 마치고 2021년 7월이 되어서야 예약제로 다시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7년, 차박 덕택인지, 멀리까지 나가서 1~ 2박 캠핑을 하는데 별로 피곤함을 덜 느끼게 되자, 아내는 조프리 호수 등정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사실, 아내나 나나 등산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던 때는 아니었고, 자연경관을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샷 하나 찍으려고 굳이 먼 곳까지 가는 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아마도 당시 아내의 의도는 ‘하기 싫지만 (재활 운동 성격으로) 해야 하는 등산을 위한 동기부여 차원’으로 조프리 호수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일 테지만, 일주일 내내 빡센 육체노동을 버텨낸 후 주말에는 좀 여유 있게 쉬고 싶은 나로서는, 조프리 호수의 풍경으로도 도무지 동기부여가 안되어서 몇 차례 아내와 갈등이 있었고, 아주 지난한 설득과 삐짐 등이 반복되다가 결국 조프리 호수를 가게 되었다.


워낙에 인기만발에, 사람들이 붐비고 주차장이 일찌감치 차는 거로 유명해서, 아예 아침 7시쯤에 도착하는 거로 했다. 조프리 호수 등산로 입구까지는 집에서 3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하므로, 30분 정도 거리의 팸버튼 (Pemberton) 시에 있는 ‘내언 폭포 주립공원 캠핑장 (Nairn Falls Provincial Park Campground)’ 에 미리 가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새벽같이 가보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BC주 캠핑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립공원 캠핑장을 대량으로 예약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웃돈을 받고 파는 암표 장사들 또한 극성을 부렸었는데, 그래서 2017년부터 BC 주립공원에서는 새로운 예약시스템을 도입하고 동시에 체크인 시 신분 확인을 하는 등 추가적인 절차를 마련했지만, 그래도 여름 연휴에는 여전히 예약이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수개월 전 조프리 등정 계획을 잡았을 때부터 캠핑장 예약을 해두고 이날만을 기다렸었는데, 내가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당직근무가 잡히는 바람에 또 한바탕 실랑이가 있었다. 캠핑장 관리 회사에 (어렵게 어렵게) 전화가 닿아,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사정을 말해봤지만, 2017년부터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의 바뀐 규칙 때문에 도착 예정일 다음 날 오후까지 (원래 규정대로라면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인데, 특별히 예외를 주겠다고 했다) 도착을 못 하면 예약 전체를 몰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물론 환불도 없다). 


‘내 돈 내고 내가 예약한 날이 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하는 상식적인 의문이 당연히 뒤따랐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직도 이런 시스템에 대해 누구 하나 소송을 걸었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법률적 검토도 끝난 규정인 것 같다. 공공재산에 대해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게 하자는 취지여서 사람들이 그냥 수긍하는 걸 수도 있다. 참고로 '캐나다 헌법 (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s)'에도 사유재산 보호에 대한 조항이 없다.


다행히 직장 동료가 당직근무를 대신 서주기로 해서 가까스로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일 둘 다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어, 저녁도 가는 도중 패스트푸드로 때웠지만, 캠핑장에 도착하니 이미 9시가 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랜턴에 의지한 채 텐트를 치는 고생을 안 해도 되어, 차박 시스템에 다시 한번 뿌듯해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내언 폭포 주립공원 캠핑장’은 팸버튼 시내로부터 5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다음날 일어나 대충 등반 준비를 하고 나서, 팸버튼 시내 맥도널드에서 또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겸사겸사 그곳 화장실도 쓰고). 그리 어려운 등산 코스는 아니라고 하지만, 워낙에 우리 둘 다 저질체력을 간신히 벗어난 상태였고, 등산도 글로 배워 등반용 근육이 신생아 수준이었기 때문에, 초코바에 음료수 등 조난 방지를 위한 아이템들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등 잔뜩 긴장을 한 채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라? 주차장이 아주 널럴했다. ‘우리가 좀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5월 연휴에 이렇게까지 여유로울 줄이야.’ ‘8시만 되어도 차 댈 곳이 없다고 아우성을 하던 인터넷 글들은 뭐람?’ ‘역시 인터넷 정보는 어느 정도 거르고 들어야 해.’ ‘괜히 아침부터 설레발을…’ 등등 투덜투덜하면서 가방을 메고 등산로에 진입했는데…


꽁꽁 얼어 있었다. 호수도, 등산로도.


등산로 입구 (좌)와 등산로에서 본 첫번쨰 호수 (중), 그리고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준비하는 사람들 (우)



조프리 호수의 첫 번째 호수는 입구에서 5분 거리에 있다길래 거기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진입로 자체가 얼어붙어서 미끄러운 상태든지, 아니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5월 20일에 있던 일이다. 당시 30분 거리의 팸버튼 시내 낮 기온은 20도를 상회했다. 


꽁꽁 언 첫번째 호수를 확인한 아내는 잠시 멘붕 상태에 빠졌다가, 이내 다시 고집을 부리며 가는 데 까지 올라가 보자고 나를 잡아끌었는데, 얼마 못 가서 절뚝이면서 내려오는 일군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몇십 미터 더 갔다가 도저히 안 돼서 포기하고 돌아오던 중 미끄러져서 다쳤다고 한다. 결국 이날 등산은 포기하게 되었다. (다친 청년에게는 매우 미안한 얘기지만.. 나이스 타이밍!)


엉금엉금 거의 기다시피 해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어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스키를 신고 있었다. 그렇구먼. 5월 조프리는 스키가 필요한 날씨였던 것이다.  팸버튼 시내로 돌아와서 간단한 점심거리를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갔다. 잠시 휴식을 가진 다음, 캠핑장 옆에 있는 폭포 (내언 폭포 Nairn Falls)에 가보기로.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야 했는데, 머리에 냅다 퍼붓는 뙤약볕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모기도 장난 아니었고. 하하.. 바로 30분 거리의 저 위쪽은 눈이 쌓여서 등산도 불가능한데..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지..

하지만 내언 폭포는 한 여름 기후


딸랑 한 시간 걸었지만, 만만치 않은 더위 때문에 땀에 흠뻑 젖어서 샤워를 해야 했다. 내언 폭포 주립공원 캠핑장은 수세식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고, 심지어 수돗가 (City Water)도 없어서 수동으로 펌프질을 해서 흙이 섞인 지하수라도 끄집어 올려 쓰는 환경인데, 다행히 시내에 있는 마을 회관에서 유료로 (2017년 당시 $3.5) 샤워 시설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해마다 팸버튼에서 열렸던 음악 축제 (Pemberton Music Festival) 덕분에 만들어 둔 시스템이라는데, 2017년부터 주최 측이 부도가 나서 행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샤워를 마치고 가뿐한 몸으로 주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하고 평이 좋은 타이 식당이 있어서 반신반의 (관광지 식당들은 대개 인터넷 리뷰가 좋다) 하며 들어가 봤는데, 오. 너무 입에 맞았다. 그전까지 타이 음식 하면, 코코넛을 잔뜩 넣거나 시큼한 레몬그라스 향이 가득한 남부지방 요리만 경험했었는데, 이곳의 타이 음식은 '치앙마이'와 '이산' 쪽의 북부지방 요리라고 한다. 때문에 중화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오너 셰프에게 밴쿠버에서도 이 정도로 맛난 타이 요리는 찾기 힘들었다고 했더니, 콧방귀를 뀌면서 은근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이 아니면 죄다 지방-시골이라고 생각하는 서울 사람 관념이 몸에 배었던 것이다.


다음 날에도 팸버튼 시내에 나가서 동네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은 후, 그 근처에 있는 어린이용 산악자전거 연습장을 한 바퀴 돌았다. 애들처럼 자전거로 점프를 하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오르막 내리막을 즐기면서 탈 수는 있었다. 


팸버튼 시내 초입에는 ‘원마일 호수 (One mile lake)’라고 해서, 호수를 둘러싼 주변 산책로가 약 1마일 정도 길이가 되는 예쁘장한 호수가 있는데, 연꽃잎이 즐비한 반짝이는 호숫가에 나무 판잣길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마치 물 위로 걷는 느낌을 주는 곳이라,  팸버튼에 갈 일이 있으면, 자전거로든지 도보로든지, 꼭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하지만 매번 갈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한번 산책로에 들어서면 쉬지 않고 걷거나 달려야 한다. 단 10초라도 멈추면 여지없이 모기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원마일 호수 산책로


마지막 날, 캠핑장을 일찍 나선 후, 요 ‘원마일 호수’를 한 바퀴 더 걸어 본 다음 집으로 향했다. 팸버튼에서 밴쿠버로 오는 길에 ‘위슬러 (Whistler)’와 스쿼미시를 지나게 되는데, BC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데다가 동계 올림픽 스키 경기도 열렸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슬러였지만, 왠지 그동안 우리와는 그다지 많은 인연이 없었던 터라, 마침 여기까지 온 김에 동네를 찬찬히 구경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근무까지 바꿔가며 조프리에 갔었는데 허탕을 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전에 갔었던 캐나다 록키 산맥 근처의 ‘밴프 (Banff)’도 그렇고, 이곳 위슬러도 그렇고, 캐나다의 (적어도 서부 캐나다의) 관광 도시들은 어쩐지 생김새가 비슷하다. 작고 귀여운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 왠지 사진으로만 봤던 스위스나 북부 독일의 어떤 마을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역사가 짧은 북미의 관광 도시들은 유럽 도시 흉내를 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념품 가게 방문 등 관광객 흉내를 내며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다가, 파스타로 요기를 한 후 위슬러 시내 마을들을 잇는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좀 더 탄 후 집에 돌아왔다. 캠핑 다녀오면 빨래며 정리가 한참이라, 한숨을 쉬며 이 귀찮은 걸 왜 하고 있나 싶다가도, 다음 캠핑은 어디로 가볼까 궁리하고 있는 우리였다.





내언 폭포 주립공원 (Nairn Falls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nairn_falls/) : 위슬러에서 팸버튼 방향으로 20분 정도 가는 길, 팸버튼 도착 5분 전 내리막길이 시작할 무렵 99번 도로 우측에 갑자기 입구가 나와 입구를 놓치기 십상이다. 약 100개의 자동차 캠핑 사이트 \들을 가지고 있는 결코 작지 않은 캠핑장이지만, 어쩐 일인지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실은 물론, 수돗물조차 연결이 안 되어 있다 (하지만, 편의시설이 없는 만큼 가격도 저렴해서, 일박에 2017년 기준 $22불). 두 개의 수동 펌프가 있으나, 흙먼지가 다 빠진 지하수 물을 끄집어내려면 최소 5분간은 꾸준히 펌프질을 해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5분 거리에 있는 팸버튼 마을 회관에서 샤워실을 유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린 강 (Green River)이 보이는 암벽을 접하는 캠핑장 서쪽과 남쪽에 있는 캠프 사이트들이 가장 널찍하고 또 풍경도 좋은데, 좀 위험한 측면도 있어서 아이들을 동반한 캠퍼들에게는 권장을 안 하는 사이트들이다. ‘내언 폭포’ 또는 팸버튼 시내, 그리고 ‘원마일 호수’로 직접 연결되는 산책로가 캠핑장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어느 길이나 모기떼들로 매우 악명이 높다.


가까운 시내 : 팸버튼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통화 가능, 데이터는 매우 부분적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2/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3/5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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