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 꿈
12월의 문. 한복 같은 옷을 입고 우산을 쓴 아저씨와 개구리가 그려져 있다.
"난 늘 이 그림이 좀 이상했어. 우산이랑 저 아저씨랑 느낌이 좀 다르거든. 중국 같기도 하고 일본스럽기도 하고."
"화투의 그림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거라 그럴 거야. 다른 그림은 안 그런데 12월 카드에서는 일본의 느낌이 나지."
"화투가 일본 거야? 우리나라 놀이가 아냐?"
"그게 처음엔 포르투갈인들이 하던 놀이였는데 투기, 그러니까 도박처럼 그 놀이가 심해지니까 금지시켰대. 그러다 포르투갈과 일본이 무역을 하면서 가까워졌는데 그때 포르투갈 사람들이 일본에 카드놀이를 전해주었어. 일본에서는 지금의 12개의 그림을 그려서 놀이하게 된 거고."
"서양 카드놀이가 동양의 카드놀이로 변한 거네."
"그렇지. 화투의 유래는 포르투갈이지만 지금의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온 거니까."
"화투가 일본 놀이라니 좀 그렇네."
"그럴 필요는 없어. 너희들도 젠가, 다이아몬드 놀이하는데 그런 놀이들도 우리나라 전통놀이는 아니잖아. 일본에 대한 감정보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가족들이 명절 때 노는 놀이 문화라 생각해."
"그래. 화투가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하더라고."
감시자는 어려 보였지만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아이야. 똑똑하기도 하고.'
"뭐라고? 아이!"
"아, 생각을 읽을 줄 알지! 쏘리, 미안~"
다음 문에 빨리 열렸으면 했는데 12월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저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잡아봐."
내가 운동을 잘하는 걸 어떻게 아는지 감시자는 별걸 다 시켰다.
뛰어오르는 순간, 나뭇가지가 위로 쑤욱 올라갔다.
"이건 반칙이야. 나뭇가지가 위로 올라가면 어떡해!"
"개구리의 길이와 비례하게 네 키만큼 올라간 거야. 개구리가 했던 것처럼 네 키에서 나뭇가지를 붙잡아야 문이 열려."
"뭐~? 너무 높은데... 저 개구리가 나뭇가지를 붙잡은 게 맞아?"
"응. 난 거짓말 안 해. 마지막 문인데 그냥 열리겠어? 쉽지 않을 거야."
쉽지 않을 거란 감시자의 말에 승부욕이 올라왔다.
첫 번째 점프, 실패!
'와~ 이거 생각보다 높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점프를 했다.
두 번째 점프, 실패!
멋지게 성공하고 싶었는데 은근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나 김대성이야. 공부는 못해도 운동은 자신 있다고!'
세 번째 점프, 실패!
"아, 아깝다. 붙잡을 뻔했는데..."
"얼른 성공해. 시간이 얼마 없어."
"시간이 얼마 남았는데?"
"55분"
헐~그렇게 폴짝폴짝 개구리처럼 뛰어올랐지만 실패였다.
"조금만 쉬었다 할게. 이러다가 다리에 힘 빠지면 그땐 더 못 뛸 것 같아."
"그래. 계속 뛸 때마다 높이가 낮아지더라."
"뭐? 네가 해봐. 쉬운지."
"난 감시자야. 김대성이 아니라."
딱밤 한 대만 때렸으면 할 정도로 얄미웠다.
내가 얄미워하는 걸 아는지 감시자는 주저앉아있는 나의 옆으로 오더니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은 일본의 서예 창시자 <오노노 토오호우>인데 공부를 하다가 힘들어서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왔다가 개구리가 여러 번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붙잡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학문을 갈고닦아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대."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냐?"
"널 맡게 되었을 때 나도 공부 좀 했지."
"그러니까 나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거지?"
"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과 전신 스트레칭을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았다.
'그래 해보자. 개구리도 해냈다는데. 나도 할 수 있어. 하나, 둘, 셋. 점프!'
손에 나뭇가지가 잡혔다.
"아싸, 성공이다. 성공!"
감시자는 엄지척을 들어주었다. 문이 열렸다.
저승문
동굴 속인지 어두웠다. 여기저기 붉은빛을 띤 기둥들이 보였다.
"여긴 어디지?"
"저승문"
"뭐? 저승문! 이승문이 아니라? 내가 저승에 가려고 이 고생을 했단 말이야?"
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감시자를 보았다.
"아니. 마지막 관문이야. 저승문에서 널 받아주지 않아야 넌 이승, 너의 세계로 갈 수 있어."
감시자의 말을 듣자 흥분이 가라앉으며 발끈하며 말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럴 수 있어. 마지막은 이제까지의 꿈들과 달라서 더 놀랬을 거야. 너만 그러는 거 아냐."
"그래도 미안해. 너에게 발끈했어."
"지금처럼 차분하게 너의 생각을 말해. 그럼 돌아가게 될 거야. 그리고 나랑은 여기서 헤어져."
"왜? 너도 끝까지 같이 가야지."
"여기가 끝이야. 넌 열두 열쇠의 의미를 다 얻었고 여기까지 도착했어. 네 정수리의 12개의 구멍도 다 막혔고. "
머리 정수리 부분을 만져보니 구멍이 없었다. 신기했다.
"12월의 의미는 모르겠는데. 말도 안 했고."
"넌 이미 알고 있어."
감시자는 손을 내밀더니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자고 했다.
"섭섭하네. 정이 들었나 봐."
"나는 시원한데."
"말이라도 시원섭섭하다고 하지."
"그래. 시원섭섭해."
"엎드려 절 받기네. 12시간 동안 고마웠어.
너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정말로!"
"김대성, 너 멋진 아이더라. 우리 아빠가 왜 헬멧을 주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우리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되면 내 안부 꼭 전해줘. 많이 사랑한다고..."
"그럼 꼭 전해줄게. 걱정 마."
나는 감시자와 한참동안 악수를 했다.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넉넉할 거야. 12월 열쇠의 의미가 떠오르면 차분하게 말해. 잘 가~"
"잘 있어. 감시자!"
나도 모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감시자는 손을 한번 더 잡아주었다. 그리고 감시자는 사라졌다.
'12월이라. 외할머니가 뭐라 했는데...'
그때 외할머니 국수가게 벽에 붙어있던 12월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손님이야!"
#외할머니 국수가게#
"할머니~국숫집이니까 5월 국수 그림을 붙인 건 알겠는데 12월 그림은 왜 붙였어요?"
"12월은 손님을 의미하거든."
"그럼 12월 말고 그거 있잖아요. '똥'아니 '돈'을 의미하는 그림요!"
"11월?"
"네. 돈 그림을 붙여둬야 돈을 많이 벌죠."
"돈보다 난 손님이 좋아. 손님이 많이 오면 돈은 저절로 벌게 되거든."
"돈이 많으면 힘들게 국수 안 팔아도 되잖아요."
"그렇겠지. 하지만 돈은 욕심을 낸다고 금방 벌어지고 부자가 되는 게 아냐.
손님은 내가 정성껏 국수를 말아준 만큼 찾아오고 서로 정이 쌓이니까 손님 부자가 좋은거지."
"네. 할머니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러네요."
손님의 의미를 알게 되자 어떤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 앉으세요."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말없이 의자에 앉자 그 남자는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지금부터 질문을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 주세요."
"네."
"당신은 12시간 동안 12개의 꿈에서 각 열쇠의 의미를 얻었습니다.
그 의미들을 생각해 보고 당신이 이승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십시오."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대답할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다.
"제가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짧은 순간에 엄마와 아빠, 외할머니, 감시자,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철없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래서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신의 말에는 어떤 두려움과 망설임도 없군요."
"네. 저를 믿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자격이 충분하군요."
남자는 웃으며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저승문이 뒤집어지더니 새하얀 문이 나타났다.
"저 문을 열고 나가세요."
나도 90도로 깍듯이 폴더인사를 하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김대성,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