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12-11화 새로운 삶과 인연

by 해어화

눈을 뜨자 천정의 불빛이 환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잠시 후 형광등이 선명하게 보였고 엄마의 얼굴이 내 눈동자로 들어왔다.

어지러움이 없어서 가뿐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대성아! 엄마야, 엄마!"

엄마는 한참 쳐다보시더니 나를 와락 안으셨다.

"엄마."

"그래. 엄마야. 눈 떠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엄마, 저 외할머니 만났어요."

"뭐?"

엄마는 놀래며 나를 쳐다보셨다.

"외할머니가 도와주셔서 돌아온 거예요. 그리고 잘 지내고 계시니까 너무 슬퍼마세요."

"그래? 그랬구나."

엄마는 우선 수긍을 하면서도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요? 아빠 보고 싶어요."

엄마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빠가 서 있었다.

"아빠~"

"그래. 대성아. 아빠 여기 있어."

아빠는 내 옆으로 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손을 꼭 쥐고 계셨다. 따뜻했다.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엄마, 아빠 우리 예전처럼 같이 살아요. 제가 겪은 일을 들으면 두 분 마음도 풀리실 거예요."

엄마와 아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셨다.

그날 저녁, 나는 오늘 깨어난 사람 답지 않게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쏟아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12시간이 다 되도록 깨어나지 않아 정밀 검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내가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렇게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다음날 퇴원했다. 건강상태는 "이상 없음"이었다.

여름방학의 3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현수야, 나야 대성이!"

"너 깨어났어? 걱정했잖아!"

"응. 퇴원하고 바로 전화하는 거야."

"진짜 걱정했는데..."

울먹이는지 현수의 말이 끊겼다.

"너 우냐?"

"울긴 누가 우냐? 몸은 어때?"

"너랑 오늘 놀아도 될 정도!"

"다행이다. 그래도 오늘은 쉬어. 내일 놀자!"

"그래. 오늘은 부모님과 집에 있으려고. 내일 만나. 내가 전화할게."

"알았어. 내일 전화해."

현수와의 전화를 끊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사고 전과 그대로였는데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책상 위가 깨끗했다.

'아, 헬멧과 명함!'

"엄마! 빨간색 헬멧 어딨어요?"

"그거? 네 자전거 손잡이에 걸려있지. 그 헬멧이 네가 말했던 헬멧 아냐?"

"네. 맞아요. 돌려줘야 해요."

나는 현관문을 열고 자전거로 갔다.

빨간 헬멧이 보였다. 헬멧 안을 들여다보니 명함 한 장이 보였다.

"다행이다. 명함이 있네."

헬멧과 명함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명함을 보니 처음과 다른 명함이었다.

'어? 명함이 바뀌었나? 이게 아닌데!'


[HOUR & DREAM

사랑하는 사람의 12 마법을 믿어라!]는

[HOUR & MEMORY 스튜디오

T. 070-111-2222]였고

뒷면은 12개의 열쇠 그림이 아닌 12개의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쿠폰과 주소가 한 줄 적혀있었다.


다른 명함인 것 같아 순간 놀라고 당황했지만 전화번호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전화해야겠다.'



"여보세요?"

"네. 아워 앤 메모리 스튜디오입니다."

"저기.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지난번에 자전거 사고 날 뻔했던.."

"아, 기억나죠. 어디 아파요?"

"아뇨. 멀쩡한데요. 헬멧 돌려드리려고요."

"그래요? 반가운 소식이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저씨가 주신 헬멧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았어요."

"네? 혹시 사고 났었어요?"

"네. 그런데 하나도 안 다쳤어요. 헬멧 덕분에."

"정말 다행이네."

"이번 일요일에 제가 스튜디오로 찾아갈게요."

"학생, 자전거 타고 오면 위험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아니요. 아빠 차 타고 갈 거예요."

"그래? 그럼 명함 뒷면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와요. 학생 만났던 바닷가랑 멀지 않으니까."

"네. 언제 시간 되세요? 일요일도 가게 하나요?"

"일요일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게 여니까 언제든지 괜찮아."

"네. 그럼 11시쯤에 갈게요."

그렇게 감시자의 아빠와 약속을 잡고 통화를 마쳤다. 왠지 흥분되고 떨렸다.



일요일, 아빠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밖을 내다보며 내가 이렇게 위험한 도로를 자전거로 갔었나 싶어 왠지 아찔하고 부끄러웠다.

Hour&Memory 스튜디오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층 집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주제의 사진 스튜디오가 보였고 창문 너머로는 바다가 보였다.

" 안녕하세요!"

아빠가 먼저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감시자의 아빠가 안쪽 스튜디오에서 나오셨다.

"어서 오세요. 어, 그 헬멧 학생이네. 반가워요."

나는 그제야 반갑게 맞이해주는 감시자의 아빠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다.

감시자처럼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잘생기고 성격 좋게 생기신 분이셨다.

하지만 그날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빠와 나는 아저씨가 주시는 차와 음료수를 먹으며 인사를 나누고 헬멧을 돌려드렸다.

"안 돌려줘도 되는데. 학생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돌려주다니 정말 고마워."

"아뇨. 아저씨께는 소중한 헬멧인데 당연히 돌려드려야죠!"

"그게 무슨 말인지... 소중한 헬멧은 맞는데. 뭘 아는 것처럼 들리는데."

"음... 제가 하는 말이 안 믿어질 수도 있지만,

제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아저씨의 딸을 만났어요.

정확하게는 저의 감시자였고요. 그리고 호떡이랑 사고 이야기도 들었어요."

"아니, 어떻게! 꿈에서도 나는 우리 딸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아저씨는 적잖이 놀래셨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똑똑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어요. 그리고..."

"그리고 뭐?"

"그리고 가족을 무척 사랑하는 아이고요.

특히 아저씨, 아니 아빠를 만나고 싶어 했어요."

아저씨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고 나는 말을 잠시 쉬어야 했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이라. 딸아이 이야기를 들으니 실감이 나지 않네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희도 대성이가 의식 없이 누워있을 때 지옥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는데

딸을 잃으셨다니 그 슬픔이 얼마나 크셨겠어요."

"사실 헬멧은 딸아이거라 버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 헬멧 없이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보면 딸아이가 생각나서 주곤 했는데 신기하게 다시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그때마다 감사하는 말과 함께 헬멧을 돌려받으니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위로받게 되더라고요."


나는 궁금증이 생겨 아빠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다른 사람들은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그럼. 네가 처음이야. 헬멧을 줄 땐 명함도 함께 주어서 명함에 적힌 주소를 보고 찾아왔었지. 다음날일 때도 있었고 일주일이나 한 달 뒤도 있었고."

"난 특별한가?"

"허허. 특별하다기보다는 사고가 날 뻔했는데도 조심 안 하고 진짜 사고가 난 건 학생이 처음인 것 같아. 말하고 보니 특별하긴 하네."

"아. 그런가요?"

나는 먹적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우리 딸, 나리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을까?"

"이름이 나리예요? 예쁜 이름이다."

"그래. 나리꽃이 필 때 태어난 꽃같이 예쁜 아이지."

나는 나리라는 이름을 되뇌며 아저씨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감사지와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학생 고마워. 우리 딸이 저세상에서 그런 멋진 일을 하고 있다니. 나도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

"네. 저도 감시자가 나이는 어리지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보다 어리지는 않아. 누나지.

아마 그날 사고 났을 때의 모습이라 그런 것 같아."

"그래요?"

"지금 살아있다면 중학생이지."

중학생이란 말이 다소 충격이었지만 저승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긴 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대성이 목숨의 은인인데 제가 형님으로 모셔도 될까요?"

"제가 딸아이를 보내고 사진만 열심히 찍고 살아서... 사람들을 잘 만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고 놀 줄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빵만 열심히 굽고 있어요.

주식하다 실패해서 대성이 엄마와 이혼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는데...

이번 대성이 일로 다시 합치게 되었고 대성이가 아무런 이상 없이 건강하게 깨어난 것이 너무 감사해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형님과 형님 따님 덕분입니다."

"형님이라고 부르니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네요. 정말 동생이 생긴 것처럼요."

"저도 외동이라 늘 형님이 있었으면 했어요."

"그럼 의형제가 되시는 거예요?" 나의 질문에

"그렇지! 넌 큰아버지라 불러."라며 아빠는 나의 목덜미를 밀며 다시 인사를 시켰다.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허허."

"그런가요? 허허"

좋은 분위기만큼 스튜디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고 환했다.



"아저씨, 아니 큰아버지, 스튜디오 이름이 아워 앤 메모리 맞아요? 아워 앤 드림 아니에요?"

"시간과 기억, 메모리 맞는데."

"제가 처음 명함을 봤을 땐 메모리가 아니라 드림, 꿈이었거든요."

"대성이가 잘못 봤겠지. 딸아이를 기억하려고 스튜디오 이름을 다시 바꿨었는데."

"분명 드림이었는데. 제가 영어는 잘 못해도 드림 정도는 알거든요."

"그래? 그럼 시간과 꿈, 그것도 괜찮은데 아워 앤 드림으로 바꿀까?"

"아뇨. 그럴 필요는 없고요. 명함도 신기해서요. 모든 게 마법인 것 같고."

"난 마법보다는 행운인 것 같구나."

감시자의 아빠는 행운이란 말을 하셨다.

"저에게는 기적 같습니다. 대성이가 무사히 깨어난 것도 따님의 소식을 듣게 된 것도 우리 집에 다시 행복이 돌아온 것도. 이게 기적이지요."


이렇게 각자 마법, 행운, 기적이라 말했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고,

누구나에게 가족은 소중하며,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김대성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누구보다 안전을 지키며 자전거를 탄다.

나는 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간과 삶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간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승문 앞에서의 감시자의 마지막 눈빛과 표정, 그리고 외할머니의 모습과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지금의 나는 그때와 같은 5학년 1반이다.

다만 나이가 12살에서 51살이 되었을 뿐!

자전거 샵을 운영 중인 나는

예쁜 아내와 딸을 둔 아빠이며

우리 부모님의 아들이자

큰아버지네의 조카로 잘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5학년 때 겪은 신비한 경험을

19살, 대학생이 된 나의 딸에게 이야기해 주면서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딸의 웃는 얼굴에서 감시자,

아니 나리 누나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을까?

'혹시...? 설마...!'


-끝 & 또 다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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