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12-7화 유월과 칠월의 꿈

by 해어화
유월의 꿈

6월. 붉은 모란꽃과 노란 나비가 그려진 문이다.

열쇠를 보여주자 나비가 날갯짓을 했고 문이 슬며시 열렸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유치원 앞이었다.

"늘봄 유치원"

내가 다닌 유치원이었다.

입구 위로 <늘봄 유치원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입학식 장소인 강당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강당 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반별로 줄줄이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바깥쪽에 디귿자로 둘러져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 지금부터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원생들과 학부모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나는 학부모인 양 벌떡 일어나 여섯 살의 나를 찾아보았다.

'6살 때 내가 해님반? 구름반? 별님반? 달님반?'

7세에는 무지개반이었던 기억이 나는데 6세는 헷갈렸다.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어린 나를 잠시 뒤 찾을 수 있었다. 키가 작아서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구름반이었네.'

나도 모르게 어린 나를 찾아냈다는 만족감에 뿌듯

했다. 부모님이 자신의 아이들을 단번에 찾을 때 이런 감정이리라!

학부모석을 쭉 훑어보니 엄마와 아빠, 외할머니가 나란히 앉아계셨다.

어린 나는 입학식에 집중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부모님만 찾는 눈치였다.


확인할 사람을 다 보고 나니 입학식이 재미가 없었다. 유치원을 둘러볼 겸 밖으로 나왔다.

"여긴 하나도 안 바뀌었네. 그대로야."

야외 놀이터와 화단, 텃밭을 구경하고 구름반을 구경하려고 건물로 들어갔다.

덧버선이 놓여있었다. 운동화 위에 덧버선을 신고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구름반 친구들, 반갑습니다"

교실 현관문에서 복도 창문으로 선생님이 직접 제작해서 걸어둔 가렌더가 보였다.

교실로 들어가 보니 내가 소인국에 들어온 거인같이 느껴졌다.

"교실이 생각보다 작네. 그땐 넓었는데!"

추억에 잠기며 내 이름이 적힌 사물함 앞으로 걸어갔다. 유치원 가방과 웃옷을 넣어두는 곳이라 문이 없이 뚫려있었고 상단의 봉에는 옷걸이가 걸려있었다.

역시나! 입학을 축하하는 선물상자가 사물함 속에 하나씩 들어있었다.

"유치원 때가 좋았지. 그땐 공부 스트레스도 없고 즐겁고 건강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나도 모르게 라떼버젼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교실 앞쪽에 커다란 화분이 보였다.

알록달록 쪽지들이 매달려 있었다.

"TO. 김대성" 이라 적힌 쪽지를 열어보았다.


[사랑하는 대성이에게.

대성아, 유치원 입학을 축하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어서 이제 유치원생이 되다니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 기쁘단다.

엄마는 대성이가 "정직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아빠는 대성이가 "성실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넌 엄마와 아빠의 큰 기쁨이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멋진 김대성~♡]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의사, 판사, 교수, 경찰이 아니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순간 띵~했다.


"부모님 훌륭하시네. 너 많이 찔리겠다."

"야, 너! 쪽지도 읽었냐?"

"아니, 네가 방금 말했잖아."

"아, 그랬나? 나도 의외라 놀래서."

"양심은 있네. 놀랬다니.

엄마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게임에만 열심인 김대성인데."

"어쩌다 한 번씩이지. 밥 먹듯이는 아니다!"

"아니긴. 네 말대로라면 이러고 있지 않을 건데."

"이제 달라지면 되지!"

"말이야 쉽지. 나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

정말 네가 독하게 맘먹고 달라지면 몰라도."

"나 할 수 있거든!"

"그래. 해봐. 내가 바라던 바야."

감시자 꼬맹이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는 바람에 나는 얼굴과 귀로 열이 치솟는 것 같았다.

"반성은 그만하고. 이 꿈의 의미는?"

"어? 어... 그게."

얼버부리면서 쪽지를 만지작거리다

하나의 문장이 내 눈에 꽂혔다.

<넌 엄마와 아빠의 큰 기쁨이야!>


"기쁨! 그래 6월 그림의 의미는 기쁨이었어.

그러니까 이번 열쇠의 의미는 내가 부모님의 기쁨이다. 아니,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다~라는거야."

"맞아. 이번에도 의미를 잘 찾았어.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지. 때로는... 크나큰 슬픔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감시자의 목소리가 떨려 쳐다보니 두 눈에 눈물이 차올라 글썽글썽했다.

"왜 그래? 감동받았냐?"

"그래. 너희 부모님 쪽지에."

"너도 부모님 많이 보고 싶지?"

"응."

톡톡 쏘아붙이던 감시자가 우울해 보이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그냥 속 시원하게 울어. 실컷 울면 홀가분해질 거야.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된다고 하잖아."

나는 가슴 쪽을 가리키며 감시자의 눈치를 살폈다.

내 말이 끝나자 눈물샘이 터진 감시자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꺼이~꺼이~울더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옆에 있어주었다.


"우리 엄마랑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엄마는 항상 날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셨어. 아직도 엄마품의 온기가 생생해.

그리고 우리 아빠는...

나 밖에 모르는 '딸바보'였어.

내가 좋아하는 호떡을 언제든지 사주실 정도로.

그날도 자전거를 타러 나가서 호떡을 사 먹었어.

잠시 호떡을 먹는 동안 난 헬멧을 벗고 있었고 다시 자전거를 탈 때 귀찮아서 쓰지 않았어.

아빠는 위험하다고 내 머리에 헬멧을 씌워주려 했는데 난 속도를 더 높여 달렸어.

그리고 갑자기 오토바이가 나타났고...

사고가 났어.

아빠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

그런데 그 소리가 잊혀지지 않아..."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감시자의 슬픔이 너무 커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그냥 감시자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나의 손이 어깨에 닿자 감시자는 나를 보았다.

"아빠는 나의 헬멧을 계속 차에 넣고 다니셔.

그날은 그걸 너에게 준거야."

"그랬구나. 몰랐어. 너희 아빠에겐 중요한 물건인데... 내가 꼭 돌려드릴게."

"꼭 그렇게 해줘."

감시자를 보며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감시자는 금세 씩씩해지더니 나의 가슴을 팔꿈치로 툭 치면서 쪽지가 달린 화분을 가리켰다.


나뭇가지 안쪽에 반짝이는 열쇠가 달려있었다.

일곱 번째 열쇠였다.


칠월의 꿈

7월. 싸리와 커다란 멧돼지가 그려진 문이다. 멧돼지가 나를 덮칠 것 같아 움찔하며 경계를 했다.

쫄고 있던 내 앞으로 멧돼지가 다가왔고 나는 얼른 열쇠를 주었다. 싸리밭 뒤로 문이 열렸다.



익숙한 아파트가 보였다.

사다리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가구를 올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사다리차를 올려다보는 가족이 보였다.

나는 들킬까 봐 얼른 가로등 뒤로 몸을 숨겼다.


"여보, 대성아, 우리 아파트야."

"아빠, 정말 우리 집이에요? 우리도 아파트에서 살아요?"

"그럼. 봐봐. 네 책상도 올라가고 있잖아."

"아싸, 신난다."

전세가 아닌 우리 집을 사서 거기다 새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온 날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새 아파트라 집이 엄청 깨끗했고 무지 넓었고 더 좋았던 건 7살 내 인생에 나의 방이 생긴 날이었기 때문이다.

"대성아, 그렇게 좋아? 엄마랑 같이 안 자고 혼자 대성이 방에서 잘 수 있겠어?"

"네. 내 방에 침대도 있는데 혼자 잘 수 있어요."

어린 나는 한껏 들떠있었다.

"여보, 수고했어요. 빵가게로는 아파트 살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게요. 횡재했죠. 내가 투자한 주식 종목이 대박 날지 누가 알았겠어요. 난 행운아예요."

"나 같으면 겁이 나서 주식에 투자 못했을 텐데.

당신 대단해요."

"뭘요. 당신과 내가 빵가게를 열심히 해서 번 종잣돈으로 투자한 결과인걸요.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도 있지만. "

"우리 집도 생겼고 외식해요. 이사한 날은 짜장면 먹어야죠!"

"상가에 중국집이 있던데 거기서 먹어요."

"야호, 짜장면 먹으러 간다. 짜장면! 신난다~!"

어린 나는 짜장면을 먹을 생각에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아빠가 주식으로 대박 났었구나. 내가 일곱 살 때는 두 분이 사이가 좋았었네.'

젊은 엄마와 아빠를 보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늘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던 우리 집에 나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건, 내가 1학년에 입학하던 여덟 살부터였다.

어두움이 몰려왔지만 다행히 우리 가족들의 첫 집이자 새 아파트였던 이곳에서 6년째 잘 살고 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알면서 묻긴 왜 물어?"

"아는 척하면 네가 기분 나빠하니까."

"감시자님이 절 배려해 주시니 감동입니다요."

"김대성, 그만 하지~!"

"아. 넵!"


나는 눈치껏 대화를 멈추고 열쇠의 의미를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화투로 하루의 운세를 보시면서

7월 그림이 나오면 행운이 찾아오겠다며 좋아하셨다.

"그래. 7월 그림은 행운, 횡재를 뜻해. 그러니까 이번 열쇠의 의미는 열심히 살면 행운도 따르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는 같아. 즉 열심히 살면 행운이 따라온다~는 말이지."

"오케이~. 이젠 제법 여유가 생겼나보네. 말투를 보아하니. 그런데 너무 돈에 욕심을 부리면 찾아온 행운이 불행으로 변할 수도 있어."

"오~아주 철학적인데. 학교 선생님 같아."

"칭찬? 아님 놀림?"

"네가 생각하는 그거."

"유치하게 내가 그랬다고 따라 하냐?"

"기브 앤 테이크! 주고받는 거지."

"give and take! 영어로 쓸 수는 있으면서 쓰는 거야?"

감시자의 도끼눈과 따발총 같은 빠른 말 공격에 나는 냅다 뛰었다.

'당근 모르지. 제대로 쓸 수 있으면 내가 영어 부진이 아니지.'

그랬다. 나는 영어 부진학생이다.

사실 영어뿐 아니라 수학도.

지극히 나의 핑계지만 우리 집으로 몰려온 어둠도 공부를 멀리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감시자를 피해 뛰다 보니 아파트 놀이터에 도착했다. 숨이 찼다.

이 놀이터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5학년이 되면서 놀이터보다는 학교 운동장, 인근 공원 등이 나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그네가 보였다. 마침 아무도 없어서 그네를 탔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네의 착지는 적당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맛이지~'

그네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야. 안전불감증!"이란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나의 엉덩이는 그대로 그네 위로 내려앉았다. 어느새 감시자가 도착해 있었다.

"이곳에서도 그러냐? 넌 아직 멀었어."

"아니. 조심할게. 미안~"

그네가 어느 정도 멈추자 나는 안전하게 그네에서 내렸다.

부끄러워서 어찌나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던지 눈앞이 온통 놀이터 바닥 색깔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반짝이는 열쇠가 놓여있었다.

"찾았다. 다음 열쇠!"

열쇠를 들어 올리며 감시자를 쳐다보니 여전히 도끼눈이었고 두 눈으로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눈을 피했다.

"미안해. 다시 안 그럴게.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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