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검술 미치광이. 사람들이 한때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아내는 검으로 최강이 되겠다는 나의 목표를 멋있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부조차 이 시대에 검을 수련하는 것은 전통문화의 멸종을 지연시키는 것 이외의 가치는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던 시기였다.
아내를 만난 곳은 은행이었다. 아내는 대출 담당 창구의 직원이었고, 그즈음 나는 사부가 지병으로 낙향해서 도장을 차리기 위해 은행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담보도 직장도 없는 내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없었다. 아내가 다니던 은행에는 세 번이나 갔다. 아내가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모르지만,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때는 누구에게 반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내가 계속 간 이유는 다른 은행과 달리 아내가 자꾸 희망을 줬기 때문이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고객님.
아내는 항상 대출 상담이 끝날 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대학생 두 명이 회칼을 들고 은행을 방문한 것이다. 그들은 미리 계획을 짰는지, 순식간에 청원경찰을 제압했다. 창구에 있는 현금만 탈취해서 달아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소나기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내 손에는 장우산이 들려 있었다.
일반인과 검술 유단자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은, 샛별 유치원 개나리반 아이들과 청와대 경호팀이 싸우는 것과 같다. 나는 정확히 우산을 네 번 휘둘러 회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들을 기절시켰다.
-멋있어요.
아내가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 일로 나는 은행에서 감사패를, 경찰서에서 포상금을 받았고, 아내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메뉴는 초밥이었다.
-고객님이 잡은 그 강도들 말이에요. 초밥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대요.
아내가 말했다.
-제가 잡지 않았다면, 꿈을 이뤘을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말했다.
-모르죠. 더 큰 강도가 됐을지도.
아내가 말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은행 강도가 초밥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고객님이 남편이 되기도 한다. 아내와의 식사는 꽤 즐거웠다. 우리는 그 후로도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만났다. 어느새 아내는 나를 고객님이 아니라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담보도 직장도 없는 사람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은행원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승낙을 받기 위해 장인을 찾아갔을 때가 기억난다. 아내는 서류심사 통과를 위해 신랑감 후보 승인을 위한 서류를 날림으로 작성했다. 장인은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래, 검사라며? 어디서 근무하나? 나도 중앙 지검에 친구가 한 명 있어. 사시는 몇 기지?
밥을 먹으면서 장인은 질문을 쏟아냈다. 서류작성자는 모른 척 물을 가지러 갔다.
-한자가 다릅니다. 검사할 검에 일 사자가 아니라, 칼 검자에 선비 사자를 쓰는 검삽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승인 거절을 당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결혼제도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다. 은행은 상사의 결재가 없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신부는 아버지의 결재가 없어도 결혼을 할 수 있다.
검은 손으로 사용하는 무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검술에는 상반신보다 하반신이 더 중요하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아야 제대로 휘두를 수 있다. 아내는 내게 균형과 안정감을 줬다. 내가 검도왕전을 두 번이나 우승한 것도 신혼생활 즈음이었다. 내게 검술을 가르친 것은 사부지만,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아내인지도 모른다.
15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내는 한결같이 나를 응원해줬고, 나는 응원에 힘입어 계속 정진했다. 우리 사이에 자식은 없었는데, 내가 문제인지 아내가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둘 다 딱히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병원에도 가보지 않았다.
아내는 정말 갑자기 죽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