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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Oct 24. 2021

[#동료교사] 좋겠다 샘은. 미술 편하니까

부러워요! 시험문제 안내도 되고!

[미술수행평가]로 '광고디자인 비평 발표'를 진행 중이었다.

평소 눈에 띄지 않던 얌전한 학생이 엄청난 발표를 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학생 반의 담임과 식사를 하다가 그 아이의 칭찬을 했다.



"지연이가 최고의 발표를 했어요. 컨텐츠 내용도 좋고 조형 분석하는 시각도 예리하고 비판적 사고가 뛰어난 아이더라고요. 발표 스킬도 처음과 끝에 문제 제기를 통일성 있게 해서 대학생 이상의 발표를 했어요. 얌전한 아이가 발표도 자신있게 잘 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이어지는 동료교사의 말에 목이 꽉 막혔다.



"지연이가요? 신기하네......

 걔 공부 잘하는 앤데 미술을 왜 그렇게 열심히 했지?"



'공부를 잘하는 애가 미술을 왜?'

라는 말에서 그의 생각을 직면하고 말았다.




"샘은 좋겠다! 시험문제 안내도 되고 진짜 부럽다!

시험문제 안내면 수업 때 뭐 해요? 그림만 시켜요?"


"샘, 부러워요! 시험 채점 안 해도 되고.

미술은 애들이 직접 다 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목이 터져라 가르쳐야 하는데."


"예체능 교사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된다잖아요.

같이 학교에 근무해도 교과마다 완전히 다른 직업이라니까!"


"미술샘이라 역시 옷 입는 게 다르네.

미아 샘은 월급 받아서 전부  옷 사죠?"


"선생님, 학교 홍보 사진을 찍을 건데요. 미술시간을 찍고 싶어요. 이젤 펴놓고 아이들 준비시켜 주실 수 있나요?" (아직도 미술시간에는 학생들을 이젤 앞에 앉혀 그림을 시키 줄 아는 교사들이 다.)


"저 강사 샘은  쳐도 한참 있다 교실로 들어가더라.

국영수였으면 벌써 난리 났다! 미술이어서 망정이지."


"샘은 수업 때 뭐해요?"

(교사가 수업 때 뭘 하긴요? 수업을 합니다.)


"미술시간에 애들은 뭐 그려요?

 잘 그려요? 열심히 안 하죠?"


"샘은 좋겠다. 그냥 그림만 시키면 되잖아요.

미술 샘들 보면 수업 때 애들 조용히 그림만 시키고 우아하게 창가 보면서 커피 마시지 않아요? 진짜 부러워요!"


"미술 수행평가 점수를 뭘 그렇게 고민해요?

그냥 다 잘 주세요. 애들 미술점수는 신경 안 쓰잖아요.

입시에도 안 들어 가는데 아무 상관 없어요.

힘들게 고민하지 마요, 샘! 대충 해요!"


"샘은 시험도 없고 수행평가 100%면 수행은 몇 개 해요?

진짜 부러워요!"


"하긴 학부모들은 국영수 교사가 담임인 걸 더 좋아하죠.

예체능이 담임이라고 기대를 안 하니 더 편할 거예요.

일단 담임한테 바라는 게 없거든요.

국영수는 성적 안 나오면 담임 탓을 한다니까요?

우리는 미술 샘이 부럽기만 해요."



이는 내가 동료교사들로부터 직접 들었던 말들이다.

모두 악의 없이 별 생각 없이 말들이라는 게 씁쓸하.




임용시험을 합격하고 3월 2일자로 내가 '교사'가 됐다.

여기저기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말이 귀하고 감격스러워서 내 인생 2회차 직업인으로서 좋고 유능한 교사가 되어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학교라는 사회는 기대와많이 달랐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학교에서의 '미술'은 '미술'이다. 수능에 나오지 않는 교과,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 교과, 비주류교과, 주변교과.

교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요교과'라는 단어를 쓴다.

'주요'라는 단어에 담긴 본질은 위계이자 서열이다.

나머지는 배경이라는 암묵이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미술, 음악, 체육은 같은 교과군인 '예체능'으로 묶여 있다. 그마저도 예체능 교과 내에서는 '음미체'로 항상 음악이 먼저고 그 다음이 미술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수능 문제에 나오지 않는다고, 대입에서 합격당락을 결정짓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학교는 너무나 당연하고 당당하게 미술교과를 '주변교과'라 부른다.

아마 백 년은 더 걸릴지도 모른다. 지식이 중시되는 입시공화국인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불가능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공교육에서의 미술교과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본다.  

아이들은 미술이나 음악 시간을 통해 마음속에 뭉클한 어떤 것을 품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을 매년 본다. 그것은 시험에 나오는 것부터 섭취해야 하는 진도형 교과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각이다. 그 감각의 뜨거운 씨앗 하나가 아이들 평생의 예술적 감동의 열매로 맺힐 수도 있다.



예술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만이 예술을 하고 예술만이 주는 깊은 울림이 있다.

가장 감수성이 폭발하는 시기의 청소년 아이들에게 예술적 감각과 시각을 알려주고 싶다.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사들의 시각과 인식부터 바뀌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주요'와 '주변'으로 나뉜 교과에 대한 포지셔닝이 와해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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