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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01. 2024

그래서, 보물 951호는 어디에 있나요?

김해 한글 박물관 _ 선조국문유서



#문화원 옆 한글 박물관

한글 박물관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세상이 변했다고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예전엔 택시를 타고 건물 이름만 말하면 기사분들이 알아서 척척 가셨는데 요새는 거의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시는 것 같다. 도시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복잡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님은, 운전한 지 15년 되었는데 길을 다 잊었다면서 네비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는 농담을 하며 웃으셨다. 휴대폰의 단축 버튼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편리해서 무조건 의존하다 보면 기계만 점점 똑똑해지고 사람은 갈수록 단순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이 한글 박물관이 어딘지 모르실만했던 것이, 복잡한 시내에 숨어 있는 데다 큰 건물옆에 겨우 끼여 있는 것처럼 보였고, 2021년 11월에 개관했으니 미처 1년도 되지 않아 지역민들에게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한글 박물관 바로 앞에 내려주시면서, 잃었다 생각한 택시 기사의 자존심을 회복하시려는 듯, 김해 문화원으로 가자 그랬으면 금방 알았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김해 한글 박물관은 김해 문화원 바로 옆에 있고, 주차면적이 얼마 되지 않아서 필요하면 옆의 문화원 주차장을 이용해도 된다. 지나치기 쉬울 것 같은 번화한 거리에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담해서 부담없고 어쩐지 쉽게 친해질 것 같다. 프런트에서 맞아 주시는 분도 다정하고, 시원한 그늘의 야외 쉼터도 있다.



#호머 헐버트


그런데 한글 박물관의 출입문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 외국인의 사진이었다. 한글 박물관에 웬 외국인일까, 호머 헐버트, 살펴보니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으로 영어교사 겸 선교사로 왔다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신 분인데 그야말로 '훌륭한 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하셨고, 아리랑을 최초로 서양 음계로 채보하셨고, 독립신문 발간에도 참여하시고, 우리말에 대한 논문도 발표하시고, 한글에 띄어쓰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게 한 분이고, 고종의 대미 특사로 해외에 여러 번 파견된 독립운동기도 하다.


1949년에 노구를 이끌고 한국의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하러 오셨다가 7일째 되는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평소의 소원대로 한국 땅에 묻히신, 정말 한국과 한글을 사랑하신 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로비의 왼쪽에 있는 설치물이다. 예쁘기도 하고 '한글 박물관'이라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는 한글에 관한 아이들의 생각을 표현한 그림과 짧은 글들이 귀엽게 매달려 있다. 한쪽 벽면을 모자이크처럼 채우고 있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금세 내게도 전해져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사회가 달라지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변하기 마련이다. 부쩍 늘어난 외국어 같은 줄임말이나 띄어쓰기나 받침을 무시하는 광고판과 문자 메시지등은 일종의 언어 파괴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가면 띄어쓰기가 안 된 이정표의 뜻을 이해하는데 한참 걸리고, 줄임말은 흡사 외계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슬그머니 몇 개의 줄임말은 농담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한 때의 유행처럼 사용하는 말이나 글의 습관이 한글의 원형을 잊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다. 아마 이렇게 한글박물관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으로 한글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여러 개의 전시실

김해 한글 박물관은 여러 개로 나뉜 전시 공간이 있다. 1층에는 특별한 기획 전시가 있을 때만 여는 기획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한뫼 이윤재 선생 기념관(제1 전시실)과 눈뫼 허웅선생 기념관(제2 전시실)과 더불어 영상실도 있다. 그리고 3층과 옥상은 아이들의 독서나 놀이공간이다.


제1 전시실, 이윤재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연보로 표현한 벽이 있다. 특히 여러 분들이 기증한 책과 소장하고 있는 책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진열된 수장고는 인상적이었다. 내용물보다 인테리어 감각에 먼저 마음이 갔다. 수장고에는 '조선말 큰사전'등 박물관의 유물 일부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장치는 슬라이딩 도어처럼 움직이는데 진열된 책 위에 있는 화살표와 서로 일치시키고 스크린을 터치하면 그 책의 내용이 나타난다. 맞은편에 있는 내 키보다도 큰 대형 사전도 같은 방식이라 아이들이 무척 재밌어할 것 같다.


제2 전시실, 한글학자 허웅선생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방이다. 한글 연구의 관한 자료들 뿐 아니라 집필실에서 직접 쓰시던 컴퓨터나 프린터 같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1950년~ 80년대 국어시험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터치 스크린이 설치된 교실도 있다. 어릴 때, 국어시험을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몇 개 풀어보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동행이 있었다면 꽤 재밌게 놀았을 것 같다.



영상실, 세 벽면이 대형 화면이다. 영상이 계속 바뀌면서 나레이션으로 설명도 함께 나온다. 방 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글 자음 형태의 의자에 눈길이 갔다.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_보물 제951호


김해 한글 박물관의 제 2전시실에는 선조 26년에 작성된 보물 제951호인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가 있다.  


선조 국문 유서(宣祖國文諭書)는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 가 있을 당시인 1592년 9월에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로 쓴 교서이다.


당시 남해안 지방에는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협박이나 회유를 당해 일본군에게 협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조선과 명나라가 연합작전으로 전면적인 반격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일본군 점령지 안에 있는 조선 백성들의 협조가 필요했고 그를 위해 만들어진 문서다.


교서의 내용은, 포로로 잡혀가 일본군에게 협조하며 산 백성들의 죄는 묻지 않고, 대신 왜군을 잡아오거나 동태를 알아오는 자에게는 신분에 상관없이 벼슬을 내릴 것이니, 명나라와 조선군이 연합하여 왜군을 소탕하기 전에 빨리 적진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백성들이 돌아오도록 권유하는 이 유서는 선조 임금이 서울로 돌아오기 한 달 전에 내려졌다. 당시 김해수성장(金海守成將)으로 있던 권탁(權卓, 1544~1593)이 포로의 친척으로 가장하여 유서를 휴대하고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김해성에 잠입하여, 40여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백성 100여 명을 구출했다.

권탁 사망 후, 선조 국문 유서는 중요 유품으로 간주돼 후손들에 의해 대대로 보존돼 왔다. 1855년 무렵에는 김해 유민산 아래에 권탁을 기리는 사당 현충사를 지으면서 곁에 어서각을 세워 유서를 봉안했다. 낱장으로 된 이 문서는 가로 75cm, 세로 48.8cm의 규격으로 ‘유서지보(諭書之寶)’라는 보인(寶印)이 세 곳에 찍혀 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선조국문유서는 1975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16일 보물 제95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현재 부산박물관에서 보관, 관리하고 있다.


부산이라고? 나, 오늘 김해 한글박물관에서 보고 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모두 '부산'이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보관했다는 '선조 어서각'이 김해에 있는데도 그 문서는 지금 부산시립박물관에 있다고 나온다. 김해 공항도 이름만 '김해'지 부산 소속이라더니 김해가 광역부산의 한 도시인가? 문서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김해 시민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것에 꽂혀서 인터넷 바다를 한참 헤맸다. 하마터면 한글박물관에 전화해서 물어볼 뻔했다.(물어볼 걸 그랬나..?) 그러다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잠깐 이해하려다가 또 막혔다. '선조국문유서는 1592년 9월 한글 방문(榜文)의 형식으로 조선 팔도 각지에 나붙었던 유서다. 그렇다면 아마 수십 장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김해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고...? 근데 보물로 지정된 건 '권탁'이 가지고 있었던 것일 텐데... 아닌가? 선조국문유서는 몇 장이든 다 보물 951호인가? 휴.. 물음표는 다시 도돌이표가 되었지만, 어디든 있으면 됐지 뭐.. 외국인 신분이라 그런지 시민 의식이 부족해서 그냥 포기했다.



3층은 올라가는 계단부터 아이들의 놀이 공간인 걸 알아챌 만큼 환하고 아늑하다. 도톰한 매트가 깔려있는 책 읽는 다락방 같은 곳도 있고 옥상으로 나가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트릭 아트도 있다. 마침 엄마와 함께 온 꼬마가 '루빅스 큐브'위에서 사진을 찍고 엄마와 함께 그걸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아마 시진으론 평면이 아니라 정말로 큐브 위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글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려는 부수적인 노력이 많이 보였다.



김해 한글 박물관의 출입문 위에는, 더위에 지쳤을 땐 언제든 박물관 안으로 들어와서 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 마음씀에서 느낀 첫인상처럼, 작은 박물관이지만 선하고 다정한 동네 어른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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