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Jul 18. 2024

한낮의 틈,

SFU


또 거기?


라고 물으면서 풋, 웃음이 났다.

 

신선한 샐러드 재료도 많고, 음식도 취향껏 골라먹을 수 있고 맛도 괜찮아. 장소 옮기지 않아도 커피에 디저트까지 먹을 수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넓고 쾌적하잖아.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볼 일 없으니 긴 얘기하기 좋다니까.


그니까 한 번은 가야 끝난다는 거죠?


이번엔 그녀가 웃는다.

하긴 벌써 세 번째라 더 거절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다. 매번 끌리지 않았던 이유는 뷔페식을 좋아하지 않아서기도 했지만 아무리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다지만 교수와 기숙사 학생들을 위한 식당을 겸하는 곳이라서 더 그랬다. 암튼, 장소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날 반가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녀들은 옛 직장동료들이다.


하이킹 코스로 애용하는 사람들도 많은 아담한 산 꼭대기에 있는 대학교(SFU)로 가기 위해서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광역 밴쿠버에서 산지가 27년째인데 그동안 버스는 두세 번밖에 타지 않았다. 예전엔 자동차가 생필품이나 마찬가지여서 늘 차가 있었고, 자동차 없이 지내는 요즘엔 볼일이 있어 좀 멀리 외출할 때면 스카이트레인이나 우버를 이용한다. 처음엔 딱히 불편한 것도 아닌데 뭔가 허전하고 좀 불안하더니 이젠 익숙해졌다, 게다가 자동차가 있으면 신경 써야 할 이런저런 일들에서 놓여나니 너무 좋다.


대학교로 올라가는 버스는 일반 버스 세 대를 마치 애벌레의 마디처럼 연결해 놓아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타도 쾌적했다. 방학이라 한가할 줄 알았더니 여전히 학생들이 많았다. 아마 '써머 텀'이 있나 보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의 계단을 오른다. 식당까지 가는 길은, 햇볕도 막아주고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걸 보니 여기서부터 회랑처럼 연결된 모양이다.


그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소리를 알아챔과 거의 동시에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섰다. 사방이 뚫린 야외라서 피아노 소리는 공기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져 선명하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마음은 이미 들떠서 풍경 안으로 든다.





넓은 광장 같은 공간의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 앞에서 한 남자가 연주를 하고 있다. 촘촘하고 쨍한 여름 한낮에 아름다운 '틈'이 생긴다. 뜻밖의 풍경에 모든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은 잠시 접히고, 마치 낯설고 먼 곳으로 여행을 온 것 같다. 


이십대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저렇게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피아노를 만나면 별일 아니라는 듯 앉아서 익숙하게 한 곡쯤 연주하는 멋을 부리고 싶었다. 그래서 뒤는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이런저런 핑계로 체르니도 못 끝내고 흐지부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풍경을 만나면 설레고 부럽다. 

몇몇 지나가는 학생들에겐 흔한 일인 듯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선지 이방인 같은 나이 든 여자들의 호응에 남자는 미소 지으며 목례를 한다. 허락받고 사진 한 장 찍는다. 마치 관광객이 된 것 같아 좀 쑥스러워 빠르게 찍은 사진인데도 인상적인 장면이 되었다. 운동화 차림의 피아노맨까지도.


칠월 어느 한 날, 짧은 순간의 행복으로 기억되기 충분한 풍경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