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 뻔뻔하게 수술 배우기

with 대외비

by 글쓰는 외과의사

"탁"


조용한 수술방에 실 끊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내 가슴도 철렁했다. 혈관을 결찰하던 '타이(tie)'를 실수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자동 반사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곤 황급히 타이를 다시 했다. 허둥지둥하는 전공의와는 다르게 교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실을 오늘만 끊어 먹었던 건 아니다. 이미 여러 번 끊어 먹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전공의는 몇 번 매듭을 지어야 하는지, 얼마나 힘을 주어야 할지, 어떤 손가락에 실을 걸어야 할지 아직도 어렵고 익숙하지 않다. 전공의 3년차 이지만, 지난 2년간 병동과 중환자실을 주로 본 덕에 수술실 메인은 사실상 1년차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1st assistant인 전공의는 집도의의 수술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집도의의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주변 구조물을 잡고 있거나, 썩션(suction)을 하고, 필요시에는 타이를 한다. 전공의와 교수님의 손발이 맞아야 계획한 수술을, 예정된 시간에 끝마친다. 아무리 수술을 잘하는 교수님이더라도 assistant가 받쳐주지 않으면 더 오랜 시간 수술을 하거나, 때로는 더 어려운 수술로 바뀌기도 한다. 이미 몇 백, 몇천 번의 수술 경험이 있으신 교수님한테 전공의 3년차의 assist는 이제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1학년 수준일 것이다. 심지어 처음 손을 맞춰보는 경우엔 맞은편의 전공의가 불안한 건 당연하다. 전공의도 긴장되긴 마찬가지다.

같은 교수님과 수술을 들어가는 횟수가 늘어나면 조금씩 나아진다. 수술 순서가 눈에 들어오고, 해부 구조물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조금 더 집중해서 보면 교수님이 어떤 수술 기구를 언제 달라고 하실지 예측도 가능하다. 처음보다 차츰 수술이 수월해지고, 교수님과 함께 느끼는 긴장감이 줄어든다. 이렇게 서로 조금씩 신뢰가 쌓이면 어느 순간 교수님이 하나씩 '주신다'.

처음에는 간단한 것부터 준다. 배를 열고, 닫는 것부터 수술 과정의 일부를 하나씩 준다. 집도의의 역할을 전공의에게 하나씩 맡기는 것이다. 물론 위험한 파트는 모두 교수님이 하신다. 한두 번 기회를 주시곤 전공의의 실력이 믿을만하면 더 많은 기회를 주신다.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시엔 가차 없이 다시 뺏어 가신다. 이때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준다.'의 의미는 '믿고 맡긴다.'이다. 못 믿으면 못 맡기는 것도 당연하다. 전공의 기간 동안 수술을 배우고 본인의 실력을 쌓으려면 결국 주신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집도의인 교수님은 수술 환자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본인이 진다. 치료가 목적인 수술이지만 사람의 몸에 칼을 긋는 행위는 그만큼 큰 위험을 동반한다. 본인이 직접 모든 수술을 하는 게 더 빠르고 마음이 편하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리시면서 전공의를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의사이자 선생님'이 계신다. 그런 교수님들의 인내심을 느낄 때면 무한한 존경마저 든다.

오늘도 교수님은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다. 평소에 전공의를 잘 믿지 않으시는 교수님이셨다. 매번 혼이 나면서도 꾸역꾸역 같은 수술방에 들어간 탓에 조금씩 손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기회를 주는 교수님의 마음을 알기에 평소보다 더 의욕이 앞섰다. '잘해야지.'란 마음을 먹자마자 실을 끊어 먹었다. 가슴이 철렁한 것도 결코 교수님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죄송한 마음이 훨씬 더 앞섰다. 몇 번의 실수에도 아무 말씀이 없으신 교수님은 마지막 마무리까지 맡기고 가주셨다. '알아서 마무리 잘해'라고 쿨하게 수술복을 벗으셨지만, 그래도 불안하신 교수님은 5분 뒤 한 번 더 들어와 전공의의 바늘을 확인하고 나가신다. 그마저도 조금 먼발치서 바라보시는 교수님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피가 나는 곳은 없는지 더 꼼꼼하게 확인하곤 배를 닫았다.

외과 전공의의 수술은 이렇게 천천히 배우고 성장한다. 사실 수술이라는 부담감에 외과 선택이 올바른 길이었는지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이따금씩 교수님들의 신뢰가 느껴질 때면 수술과의 매력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다. 물론 다시 빼앗기는 자괴감도 느껴보지 않을 순 없다. 아마 남은 수련 기간 동안 반복될 감정이지 않을까. 아직도 언제쯤 내 환자를 자신 있게 수술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교수님들의 보호 아래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수련 과정이 끝날 때쯤이면 조금 더 자신감 있는 'operator'가 되어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후에 전공의를 만날 입장이 되면 무한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집도의가 되길.

참고로 이건 대외비이지만. 가끔은 수술방에서 쫓겨나기도, 험한 말을 듣기도, 수술 기구로 손등을 채이기도 한다. 그런 날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녹초가 된다. '버티기'도 수련 과정의 일부라는 합리화를 하며 동기들과 약간의 뒷담화와 신세 한탄이 도움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뻔뻔하게 수술방에 들어가는 스킬을 발휘해 본다. '어느 직종이나 뻔뻔함은 필수적인 능력 중 하나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대외비는 짤막하게 마무리.

(이번 주 이틀간을 장장 8시간씩 함께 달리신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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