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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Jan 27. 2024

잘 회복하는 환자들의 비밀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 대략 하루 평균 20명 정도의 환자를 보았다. 여기서 '환자를 본다.'의 의미는 환자와 직접 대화를 하거나, 혹은 환자 차트를 열어보며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더 많은 환자를 보는 날도, 그보다 적은 날도 있었다. 주치의 시절에는 30-40명의 환자들과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다 당직이라도 겹치는 날엔 타 파트의 환자들 차트까지 밤새 열어보았다. 연차가 올라가고 수술방을 담당하는 달엔 그날 수술하는 환자들 몇 명만 보는 날도 있었다. 지난 4년간 한 번이라도 본 환자들의 수를 어림짐작해 보면 꽤나 많은 환자들의 경과를 지켜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경험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그간 환자들을 보면서 나름의 희미한 느낌도 생겼다. 잘 회복할 것 같은지, 아니면 입원 기간이 길어질 것 같은지. 가끔 동기들과 하는 말이지만 '싸한데?'라고 느끼는 환자는 열에 아홉, 경과가 좋지 않았다. 어떤 경우는 한마디 대화 없이 환자의 손이나 배를 만지기만 해도 '싸함'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싸한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리고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느낌이 전부가 아닐 때도 많다. 하지만 확실한 건 분명 존재한다.


그 희미한 느낌을 모호하게나마 말로 표현해 보자면,



1.   대개 태평하다.


 간혹 경과가 수술 전부터 느껴지는 환자들이 있다. 수술 설명과 함께 동의서를 받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때 알 수 있는 환자의 말투와 태도는 수술 후의 모습을 얼핏 보여준다. 실제로 경과가 좋으신 분들은 불안도가 높지 않다. 아무리 수술 전 수술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설명해도 다시 되물으신다. "말씀하신 경우들을 혹시나 하는 상황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런 환자들은 드물게 일어날 수 있는 합병증과 사망 가능성 등을 분명 인지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만약의 경우와 본인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는 듯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회복하면 입원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일반적인 상황들을 먼저 고려한다.


 수술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피검사 한 번, 엑스레이 한 번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수술 후 장폐색증으로 가스가 나오지 않거나, 한동안 대변을 보지 못해도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병동을 하루에도 수십 번 돌며 경과가 나아지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본인 몸에 무심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회복 경과가 조금 늦더라도 여유가 있었다. 가끔 병동에서 대화를 할 때면 본인의 현재 상태가 아닌 병원 밖 일상 얘기를 하기도 한다. 오히려 본인보다 의료진의 업무를 궁금해하며 유머를 보여주는 분들도 있다.


 

2.   지지기반이 있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나이는 대개 60-70대이다. 병원에서 50대면 젊은 축에 속한다. 환자가 수술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특성상 내과보다는 외과 환자들이 더 젊다. 결혼과 출산율이 요즘 같지 않던 과거 덕분에 지금의 60-70대 환자들 대부분 보호자로 배우자 또는 자녀가 온다. 보호자로 가족이 상주하는 환자는 의료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한층 더 원활하다. '원활한 의사소통'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하지만 수술 후 경과에는 의료진이 따라갈 수 없는 가족의 관심이 있다. 한 번이라도 기침을 더 시키고, 앉거나 누울 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은 절대 의료진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퇴원 후 돌아갈 지지기반, 집과 가족, 친구가 있는 환자들은 회복의 과정이 훨씬 더 수월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실제로 미국 연수 시절 외래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 Do you have a close relationship?"이었다. 한국의 짧은 외래에서는 결코 들어볼 수 없는 질문이었다. 수술과 치료뿐 아니라 그 후의 경과에서 안정적인 지지기반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였다. 결혼 장려를 피력할 의도는 없었지만, 병원에 있다 보면 결혼과 가족의 중요성을 무한히 느낀다.



3.   주로 미래 얘기를 한다.


 본과생 실습 시절 원로 교수님 중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환자가 집 갈 때가 되면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고. 여자분들은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남자분들은 머리를 만지기 시작한다고 하셨다. 퇴원 후의 모습을 준비하는 것이다. 환자를 옆에서 보다 보니 그 말은 진짜였다. 아침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환자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경과가 좋은 환자들은 아침 회진 시간에 씻고 있거나, 머리를 말리다 교수님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경과가 좋아진 환자가 퇴원 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인지, 아니면 퇴원 후 일상 모습을 그리는 환자가 경과가 좋아지는 것인지 그 선후관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이 전부라는 말이 있듯, 병상에 누워있는 현재의 답답함에 집중하기보다 회복 후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이런 감이 번번이 틀릴 때도 많다. 별문제 없을 것 같은 환자들이 나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면 마음이 더욱 안 좋다. 반면 싸한 느낌의 환자들이 건강히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만나야 할 환자들이 많고, 더 넓은 경험이 필요한가 보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위에서 언급한 느낌보다 경과를 좌우하는 객관적인 지표들이 많다. 나이와 기저질환, 수술 시 이벤트 등 느낌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래도 지혜롭고 평온하려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바꿀 수 없는 객관적 지표들보다 경과를 바꿀 수 있는 것과 그 느낌은 무엇일지, 병원 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할 항목 중 하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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