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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Oct 13. 2024

2024 TTS 이스탄불

"모든 세상은 무대이며, 우리는 그 무대 위의 배우들이다."

전공의 시절 국내 학회는 필수로 참석했어야 했다. 졸국을 위해선 학점처럼 학회에서 요구하는 평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춘계, 추계 외과 학회라는 명목하에 소풍 다녀오듯 하루씩 병원을 탈출했다. 당시 전공의들에게 학회란 공부의 장소라기보다 일종의 콧바람을 들이켜는 장소였다. 학회장의 발표를 듣기는 했지만, 본인의 발표, 같은 병원 사람의 발표가 아닌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색이 바랜 수술복 대신 멀끔한 셔츠를 입고, 오며 가며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주중 하루만큼은 합법적으로 수술방과 병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연중 한두 차례씩 있는 기회인 셈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참석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회 기간에 당직이라도 있거나, 응급수술이 생긴 날에는 다음 해로 학회 참석을 미뤄야 했다. 학회는 매년 있었지만, 매번 참석할 수는 없었다.


이번 TTS는 참석을 생각지도 못한 학회였다. TTS란 'The Transplantation society'의 줄임말로 세계이식학회를 의미한다. 2년마다 열리는 학회로 세계 각국에서 올림픽처럼 돌아가며 개최한다. 이번 TTS 2024는 이스탄불 튀르키예였다.


사실 TTS를 준비하면서 기대되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귀찮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학회 등록 과정과 비행기, 호텔 등을 알아보는 과정은 이전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과는 달랐다. 발표 일정도 한몫했다. 7분짜리 발표였지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준비한 TTS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터미널과 기차역, 공항은 장소만으로도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11시간 뒤에 도착한 이스탄불은 생각보다 크고 깔끔했다. 과거 아시아와 유럽을 제패했던 오스만 제국의 후손답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원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학회의 규모도 도시만큼이나 어마어마했다. 세계 학회답게 런천 미팅 장소인 대강당은 100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발표자도, 발표 내용도 다양했다. 수술과 면역억제제, 항암제 등 세계 각국에서 장기 이식을 하고 있는 의사들의 연구 발표가 있었다. 모인 의사도 수술자가 전부가 아니었다. 내과 의사, 마취과 의사, 영상의학과 의사, 의대생, 간호사 등 여러 분야의 의료인들이 모였다. 매번 외과 의사만 모였던 국내 학회와는 사이즈가 달랐다. 명찰을 목에 걸고 학회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예상과는 달리 발표도 곧 흥미로운 경험으로 바뀌었다. 부담스럽기만 했던 영어 발표는 언제 또 이런 큰 장소에서 외국인들 앞에 서보겠냐는 생각에 설렘으로 바뀌었다. 더군다나 발표장에 앉아계신 교수님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큰 실수 없이 발표는 끝났다. 내 발표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발표장에서 알게 된 교수님의 해외 인맥이었다. 각 국가별 이식하는 의사들과 쉴 새 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만 수술하는 의사가 언제 이렇게 세계의 이식 대가들과 알고 지내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수님은 실제로 "Global Big foot"이었다. 어떻게 이런 분들은 알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논문 쓰다 보면 알게 된다는 교수님의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교수님의 인맥은 단순한 친분을 넘어, 연구와 지식을 교류하고 나누는 세계적인 네트워크의 일환이었다.


20대 초반, 첫 유럽 배낭여행을 혼자 다녀온 뒤 남긴 일기장에는 '세상은 넓고 본받을 사람은 너무나 많다.'라고 적혀있다. 이번 튀르키예 TTS는 다시 한번 그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기회였다. 더불어 단순히 학문적 성장을 넘어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공의 시절에는 학회가 그저 병동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는 숨구멍 같은 존재였지만 이제는 그 학회가 내게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듯, "모든 세상은 무대이며, 우리는 그 무대 위의 배우들"이다. 학회의 한편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모습은 그 무대 위 일부분에서 '지나가는 행인 1'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이번 학회를 통해, 그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단순히 무대의 일부가 아니라, 무대 전체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의 자리와 역할을 재정의해 보아야겠다.



각자의 무대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또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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