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레벌레 Aug 04. 2023

[작문] 어느 날 현관으로 경찰이 들어왔다.

주제: '어느날 현관으로 00이/가 들어왔다'


어느 날 현관으로 경찰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명철은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경찰을 맞이했다.


“이명철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저를 찾아오셨나요?”

“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서요”


아동학대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썩을놈의 빌라는 방음이 정말 하나도 안되나보다. 아니 방음은 둘째치고, 아이 좀 다그쳤다고 그걸 못참고 아동학대로 신고할 것은 또 뭔가. 망할 놈의 이웃들.


며칠 전 아이의 중학교 기말고사가 있었다. 명철은 여느 때처럼 아이의 성적표를 검사했다. 국어 70점, 수학 60점, 영어 56점. 엉망이었다. 학원비에 들인 돈이 얼만데, 이 따위 성적을 받아오다니. 명철은 아이를 불러 다그쳤다.


“그러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어 안했어! 숙제 안해갔다고 전화와, 빠졌다고 전화와, 그 따위로 계속 살거야? 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벌어온 돈인지 몰라서 그래? 대체 누굴 닮아가지고 저 모양인지..”



명철은 2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 대디였다. 이혼 사유는 아내의 바람이었다. 행복할줄만 알았던 결혼의 끔찍한 말로는 명철의 자존심을 후벼팠다. 그 이후 한참을 술에 절여져 살던 명철은 단 하나의 결심을 했다. 비록 나는 빛바랜 어른일지언정 내 자식은 빛나게 하리라. 그때부터 명철은 하나뿐인 아들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전과목 학원을 보내는 것에 더해 글쓰기, 바이올린 등 남들이 한다는 건 전부 했다. 학원비에 등골이 휠 지경이라 집까지 팔아 낡은 빌라로 옮겼지만 '아들놈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나중에 다 갚아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명철이었다.


하지만 명철의 아들은 명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숙제를 베껴갔다거나 안해갔다는 등의 연락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했고, 학원을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철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다 본인을 위한 건데, 저 철없는 아들놈은 언제 깨달을런지. 스스로 정신차리기 전까지는 다그치는 수밖에 없다'고 명철은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한참을 혼내고 나면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아려왔다. 그럴 때마다 명철은 아이를 재운 뒤 소주를 마시며 쓰린 속을 달래곤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데, 멍청한 이웃들이 뭘 알겠어, 속에서 천불이 끓어 올랐지만 애써 참으며 명철은 몇마디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별건 아니고 며칠 전에 아이가 시험을 망쳐가지고 다그쳤는데 그게 조금 시끄러웠나봅니다. 이 놈의 빌라가 방음이 원체 하나도 안돼가지고... 이웃들이 오해를 했나보네요. 아동학대라니, 당치도 않는 말씀입니다. 허허...”


경찰은 명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헛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이명철씨, 뭔가 단단히 착각하신 것 같은데, 신고자가 이민우씨입니다.”


이민우... 아들 이름이랑 똑같다. 하긴 흔한 이름이긴 하지.


“너 맞지?”


경찰이 명철의 어깨 너머로 뒤편에 서있는 명철의 아들을 보며 얘기했다. 온몸에 피멍이 든 채 덜덜 떨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뒤로 소주병과 과자 봉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논술] 스마트폰 있는 무인도에서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