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한국에서 태국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막연히 무에타이를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태국에 와서 한동안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북부에 올라와 살벌한 더위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무에타이 생각이 났다.
나는 아예 진득이 무에타이를 배워볼 심산으로 체육관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걸어서 오분도 채 안 걸리는 야외체육관이었는데, 아침에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기가 팍 죽었다. 길쭉하고 우락부락한 외국인들이 잔뜩 모여 있는 가운데 나 같은 동양인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왜 이렇게 쫄았어. 겁먹지 마."
안에서 샌드백 치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나는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한 직원이 와서 겁먹지 말라며 나를 말로 다독였다. 그가 봐도 내가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었나 보다. 나는 그의 응원에 실실 웃어 보였지만 여전히 속은 벌벌거렸다.
시작 시간이 되자 코치들이 한 명씩 손에 붕대 같은 걸 감아주었다. 코치들은 다들 현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리 한쪽이 부러져 목발을 짚고 다니는 코치 한 명이(이름을 까먹었다) 나를 사자굴에 들어온 새끼 사슴처럼 데려다 챙겼다. 그는 내게 슬쩍 장난도 치면서 긴장을 풀어주었다.
워밍업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맨 앞에 선 한 코치의 동작에 따라 서른 명 가까이가 일제히 따라 움직였다. 처음엔 가벼운 동작부터 시작해서 점점 숨이 찼다. 타이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짝을 지어 괴로운 동작들은 죄다 시켰다. 스트레칭만 40분 가까이 이어지니 이마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구토가 올라왔다. 40도에 이르는 더위까지 이어져 스트레칭이 끝나니 정신이 혼미했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히는 시간이 이어졌다. 코치가 진지하게 주먹질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대로 따라 한다고 했는데 어딘가 계속 엉성했다.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데 냥냥펀치가 따로 없었다. 나는 이미 스트레칭에서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집에 가고 싶었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또 나오라며 한 코치가 나를 데려다 일대일 훈련을 시켰다. 주먹질도 발차기도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워서 계속 코치에게 맞기만 했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지기만 하다 첫 수업이 끝이 났다.
속으론 정말 가기 싫었지만 어쩌자고 다음날 열흘권을 덜컥 끊었다. 시작을 했으면 제대로 배워봐야지 싶은 오기이자 똥고집 같은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5일간은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체육관에 나갔다. 첫날의 고생을 발판 삼아 머릿속으로 스트레칭과 훈련의 체력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매일 아침 여덟 시에 나가 훈련을 하고 들어와 빨래와 샤워를 하고 점심까지 자는 일상을 지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체육관 코치들과도 친해졌고, 자주 나오는 훈련생들과도 말을 텄다. 그중엔 치앙마이에서 일 년째 살고 있다는 한국인 언니도 만났다. 무에타이를 배운 지도 일 년 되었다는데, 이제는 보호장비까지 다끼고 링에 올라서는 언니가 참 멋있어 보였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 훈련이 그리 힘들지 않아 졌다. 여전히 주먹치기나 발차기가 엉성하긴 했으나 다섯 개도 못 차던 발차기를 연속 열개를 했고 팔 굽혀 펴기나 윗몸일으키기는 잔꽤를 부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은 쉬지 않고 몸을 부딪혀 되는 통에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발이 퉁퉁 붓고 뼈마디마디가 멍이 든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이것도 일종의 도파민인가. 치앙마이에서 내내 무에타이를 배우는데 빠져 지냈다. 고작 열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옷을 다 적시고도 남을 정도로 땀을 내야지만 열흘권 도장중 하나를 채울 수 있었다. 방콕 미이모는 내가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다고 하니 택배로 무에타이 티셔츠까지 사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엔 체육관 코치가 출전한다는 무에타이 경기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맨날 무뚝뚝하게 내 주먹을 받아주며 한심해하던 그 코치가 노란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올라왔다. 머리엔 소 고리 같은 끈을 차고 링을 상대와 번갈아 가며 의식처럼 돌더니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코치는 다리 걸기로 상대를 한 번에 KO 시켰고 상대는 고통스러워하며 실려 나갔다. 그게 내 생애 처음 본 무에타이 경기였다.
치앙마이에서의 하루 루틴은 내게 참 재밌었다. 아침엔 무에타이를 배우고 점심엔 레이디 보이인 숙소 매니저 언니와 점심밥을 기다리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또 한나절 자고 일어나 보면 새로운 게스트가 방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면 그 사람과 또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을 같이 먹으러 나갔다. 어느 날은 한국인 친구를 만나 고기뷔페에 갔고, 내가 무에타이를 배운다는 말에 그 친구도 다음날부터 체육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짧지만 길었던 열흘이었다. 언제 다 채우나 막막했던 도장칸이 모두 채워지자 후련하기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제는 온전히 수업을 해낼 수 있는데 떠나야 한다니. 관장님과 코치들과도 알 수 없는 정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간 땀으로 미역이 된 나에게 왜 이렇게 예쁘냐는 둥 헛소리를 해가며 놀려대던 노란 머리 코치는 끝까지 붕대를 내 머리에 감아주며 장난을 쳤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 코치 덕에 수업에서 소외되거나 도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크다.
여담으로 말을 마치자면, 나는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나의 훈련기 영상을 공유하곤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 와서는 아직도 주위 사람들에게 놀림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이는 나의 엉성한 펀치와 발차기가 담긴 모습 때문일 것이라. 그래도 나는 도전에 의의를 둔다. 잘 하진 못했지만 끝까지는 해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