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태국 북부 도시 람빵

태국 람빵

by 져니박 Jyeoni Park Mar 22. 2025
아래로

전봇대 하나 없는 도로를 버스는 밤새 달렸다.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 창밖을 살폈다. 아득한 풀숲 코끼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이 들게 했다. 그렇게 열 시간가량을 북쪽으로 올라가니 새벽에 람빵에 도착 있었다. 나는 멀리 갈 것도 없이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둥지를 틀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그곳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지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종종 바퀴벌레가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람빵시내를 하루 종일 쏘다니고 들어온 저녁.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내게 빵을 구워주던 사장 아주머니는 밤늦게 양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로 사람들에 의해 실려 들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낮에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그 후로 내가 머무르는 동안 아주머니는 카운터 옆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온종일 누워 지냈다. 그런 아주머니에게 손주들이 매일 찾아왔고 아이들이 뛰노는 요란 법석한 소리가 내가 있는 2층까지 들려오곤 했다.


하루는 근교 천공사원에 가려고 마음을 먹은 날이었다. 전날에 일찍 출발한다며 오토바이를 빌려놨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을 때야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가 버닝시즌이 한참인 4월 중순이었다. 방콕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북부는 지금 덥고 공기도 좋지 않다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북부에 올라왔고 산꼭대기에 지어진 사원이 궁금해 무모한 여정을 떠났다. 처음엔 도로에 차들도 많고 마을들도 이어져 있어 그럭저럭 달릴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을린 숲을 양쪽에 두고 아스팔트가 이글거리는 길을 계속 달리게 되었다. 이전에는 달릴 때 시원한 바람이라도 느껴졌는데, 이땐 히터를 최고로 틀어놓은 것 같이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런 곳에서 오토바이가 퍼지기라도 하면 말라죽을 것 같은 생각에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구불구불한 달린 지 한 시간 반쯤 되었을 때 멀리 산봉우리에 내려앉은 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입구에 이르러 오토바이를 세웠을 때 살았다는 안도감만이 가득했다. 산 꼭대기까지 셔틀트럭으로 갈아타고 올라가는데, 거기서 푼과 깽이라는 태국 청년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송크란 연휴를 맞아 친구끼리 놀러 왔다고 했다. 그중 깽이라는 남자는 나콘빠톰에 있는 일본자동차 회사에 다닌다고 했고, 그래서인지 내가 한국인이라고 누차 말을 했음에도 자신 모르게 에또, 아노, 조또 같은 일본어가 추임새처럼 튀어나왔다.


트럭에서 내려 계단을 몇 뿐쯤 올랐을까. 깽보다 키가 크고 통통한 푼이 더위에 지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우리와 거리가 멀어지더니 간신히 벤치까지 따라 올라와서는 땀이 흥건한 채로 숨을 헐떡였다. 그래서 결국 나와 깽만이 천공사원이 있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사원 곳곳엔 크고 작은 종들이 있었고, 봉우리마다 거대한 불탑들이 올라앉아 있었다. 미세먼지에 다소 뿌옇게 흐려진 풍경이었지만 시원한 바람에 기분 좋게 여유를 즐겼다. 과 불상이 놓여있는 정좌에서 한참을 앉아 멍을 때리다가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푼이 다시 멀쩡한 몰골로 우리를 반겼다. 내가 괜찮냐고 물으니 푼은 "Never die(죽지 않아)!"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푼과 깽이 차를 타고 먼저 떠났고,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맹렬히 타오르던 해가 한층 풀이 꺾여가던 때였다. 나는 해가 질세라 정신없이 스로틀을 당기며 달렸고 어느새 다시 복작복작한 람빵 시내로 돌아왔다.



undefined
undefined
브런치 글 이미지 3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브런치 글 이미지 9
브런치 글 이미지 10
undefined
undefined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