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캄팽펫
여느 때처럼 아침에 무에타이를 하고 해가 지도록 잠만 퍼자던 날이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커튼을 걷어보니 또 다른 게스트가 들어와 있었다. 노란 단발머리에 오동통한 광대가 인상적인 여자. 엄언니는 싱긋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당시 언니는 물건을 정리 중이었다. 무얼 그리 많이 샀는지 기념품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런 언니를 지켜보며 몇 마디 말을 붙였다. 대화를 할수록 언니가 유쾌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니는 어딘가 들떠 보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오랜만에 고향에 갈 기대에 차 있었던 것 같다. 언니는 오래전 푸껫의 한 리조트에서 근무를 했었단다. 거기서 지금의 스웨덴 남자 친구를 만났고 그렇게 스웨덴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고향은 캄팽펫이라는 시골지역에 있다는데, 가기 전 치앙마이에 잠깐 놀러 왔다고 했다. 그러다 왜 고향에 갈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조카 '멍크 세리머니' 때문에."
멍크... 멍크... 스님?
언니의 대답은 내게 생소하고 뜻밖이었다. 조카가 스님이 되어서 탁발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그 탁발식은 가족 전체가 참여할 만큼 중요한 행사 같았다.
"너도 같이 갈래?"
언니가 신이 나서 내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언니를 알게 된 지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내면에 호기심이 물밀 듯 일어났다.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선뜻 따라나서는 일은 위험했다. 그래서 아쉽지만 무에타이 레슨을 가야 한다는 핑계로 처음엔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음날 바로 떠날 줄 알았던 언니는 며칠을 나와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그러다 나는 언니와 나가 밥을 먹게 되었고 언니 가족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러 따라다녔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숙소의 고인물들이 되어 레이디 보이 매니저 언니와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어느 날은 엄언니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며 치킨을 쏘는 일도 있었다. 매니저 언니까지 셋이서 해가지도록 앉아 치킨을 뜯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는 오랫동안 일하지 않고 여행 다니는 내가 새삼 부럽다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스웨덴 공장에서 일하며 지내는 일상을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눈엔 언니도 또 하나의 여행자였다. 고국을 떠나 다양한 유럽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언니를 통해 태국과 스웨덴이란 두 나라에 대한 지평 넓혔다.
결국, 언니를 따라가지 않겠다던 나의 결정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언니를 따라 캄팽펫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가는 네 시간 동안 유쾌하지만 마냥 가볍지 않은 언니와의 대화가 좋았다. 버스는 점심때가 되어 목적지에 이르렀고, 우리는 한 사람을 더 기다렸다. 듣자 하니 언니가 방콕에서 지낼 때 가깝게 지내던 친구라는데, 마땅한 친인척이 없이 외롭게 지내는 분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언니는 그분을 기회가 될 때마다 불러내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의 친구가 도착했고, 셋이서 썽태우를 하나 빌려 탔다. 엄언니는 조수석에 앉았고 나와 친구분 둘이 뒷 칸에 어색히 앉아 갔다. 둘 다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캄팽펫 어느 시골 마을의 풍경만 말없이 응시했다.
엄언니는 가는 중에 길거리 상인을 불러다 푸른 망고 네 봉지를 사 우리와 썽태우 기사님 까지 나눠주었다. 썽태우는 그렇게 한참을 또 달리더니 어느 길가에 멈춰 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내렸고, 여기가 언니 고향 집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언니 지인이 운영하는 미용실 앞이었다. 상황을 봐선 언니가 행사 전 머리를 하러 온 것 같았다. 아까 버스에선 언니가 행사 순서지도 보여주었는데, 생각보다 결혼식만큼이나 공식적인 행사인 것 같았다. 나와 언니 친구는 나란히 과자를 먹어가며 언니가 머리를 할 동안 허기를 달랬다. 다들 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통에 나는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 내 얘기를 하는가 싶으면 그냥 웃었다.
"얘도 머리 좀 해줘."
언니가 갑자기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샴푸 의자에 누웠다. 미용실 이모는 내 머리를 말리고 고대기로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언니와 같이 내 머리를 앞머리부터 양쪽으로 따주었는데, 결과는 옛 사극에서 보던 말갈족 같았다. 이마가 동그랗게 솟은 언니와 달리 납작하고 좁은 내 이마는 그러한 스타일에 치명적이었다. 그래도 시간 들여 해 주신 머리를 푸를 수 없었기에 그냥 다녔다. 그들을 따라 야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언니의 고향집에 도착하기까지 그 상태였다.
해가 질 때쯤에 도착한 언니 집은 말 그대로 잔치분위기였다. 입구부터 화려한 조명에 대형 스피커가 세워져 있었다. 한쪽에 세워진 차는 웨딩카처럼 장식이 되어 있었고 마당엔 천막부터 플라스틱 테이블까지 세팅이 되어있었다. 마당을 한가운데 두고 세 집이 가까이 붙어 있는 구조였는데, 엄언니 어머니 집을 비롯하여 나머지는 형제들의 집인 것 같았다. 제일 먼저 나는 언니를 따라 언니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차례대로 가족들을 만나 두 손 모아 '사와디카'라고 인사했다.
엄언니는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그런지 에너지가 넘쳤다. 언니는 집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오토바이를 빌리더니 나와 친구를 테우고 붉은 흙 길을 달렸다. 어느 골목에는 개가 나타나 돌을 던지다느니 막대기를 구해 휘두르냐느니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동네 구경을 마치고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친 마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쪽 재단에는 불교 용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차례로 놓여 있었고 벽에는 조카사진이 들어간 플랜카드가 붙여있었다. 가족들은 노래방기계 앞에 모여 돌아가며 태국 가요를 불렀다. 나는 엄언니 어머니 집 한쪽 구석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언니가 여러 장신구와 레이스 달린 옷들을 꺼내왔다. 그리고 내게 입어보라고 권했다.
"저도 이런 거 입어요?"
"당연하지! 내일 잔치잖아!"
나는 반 강제로 언니와 같이 분홍색 바지에 레이스 달린 상의를 맞췄다. 그리고 반짝이 핀으로 말갈족 같은 머리를 뒤로 올렸다. 차마 혼자보기가 아까운 모습에 가족과 영상통화를 걸었는데 내 모습을 본 모두가 웃겨 뒤로 넘어갔다. 엄마는 자신의 딸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까지 했다. 나는 아는 사람도 없으니 창피할 것도 없었다. 밤은 깊어갔고 한낮의 더위도 식어갔다. 노래방 소리도 끊기고 다들 잠에 든 것 같았다. 그러기도 잠시. 여자들은 새벽 한 두 시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듯싶었고 다섯 시쯤 되니 대형 스피커에서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냐면 집안이 둥둥 울릴 정도였다. 나는 그 소리를 이기고 아침 여덟 시까지 잠을 잤다. 시끌벅적한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고 낯선 낌새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처음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잠시 꿈인가 싶었다. 마당엔 동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주방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팔뚝 만한 생선을 비롯해 각종 잔치 음식이 올려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실로 더 성대하고 화려한 탁발식이 될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