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한국, 마지막 여정
룸메이트 둘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이었다. 나는 혼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유튜브 영상만 의미 없이 보던 중이었다.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가진~
이~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
알고리즘은 어떻게 내가 곧 있음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는지, '신문희의 아름다운 나라'를 추천해 주었다. 웅장하고 희망찬 멜로디와 광활한 한반도의 풍경이 담긴 영상을 보니 주책맞게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 한국 가고 싶었네?'
그 순간 6개월 간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생스럽기도, 기쁘기도 했던 순간들.
아무리 좋은 여행이었다지만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그렇게 세부의 생활이 끝나갈 무렵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그간 내 여행을 응원해 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세부의 쇼핑몰은 모두 돌아다녔다.
아빠는 하와이안 셔츠, 엄마는 원피스, 동생들은... 이모네는... 교회 청년들은...
하나하나 신경 쓰려니 머리가 아팠고 이미 잔뜩 산 망고젤리 때문에 가방이 터질 지경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냥 한국에서 사면될 것을,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흔하디 흔한 기념품을 사모으느라 케리어까지 구매했었다.
어찌 되었든 졸업식이 다가왔다. 나는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에게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작 한 달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때가 되니 서로 정이 들어 있었다. 그간 나를 생각하고 기억해 준 글과 선물들에 코 끝이 찡해지는 순간도 여럿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그렇다 할 친구도 없었는데, 졸업식이 되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장난을 치며 사진도 찍고 서로의 앞날을 응원했다.
졸업식을 마친 다음날은 아침부터 공항으로 떠나는 택시가 어학원 앞으로 들락거렸다. 한 친구가 캐리어를 끌고 나올 때마다 학생들은 몰려나와 그를 배웅했다. 그중 나는 저녁 비행기로 떠날 참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보홀 멤버들과 만나 티셔츠를 맞췄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아직 다 못 산 기념품을 사러 다녔다.
마치 밀린 과제를 벼락치기하듯, 그 와중에 못 먹어본 졸리비(필리핀에서 시작한 패스트푸드가게, 동남아시아에선 맥도널드와 양대산맥이다)도 가보고 몇몇 선생님들에게 남길 편지도 마저 썼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떠날 때가 되었다. 나는 남아있는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에 들어서니 'Korea'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글자를 보자마자 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서였는지 그동안 한 번도 안 한 실수를 몇 가지 했다. 수화물 초과금도 내고 기내 반입 금지 물품도 압수당했다. 그래도 집에 가니까 마냥 좋았다. 한국이라는 단어를 따라 탑승구와 가까워질수록 벌써 집에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얼마 간의 기다림 끝에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SNS에 짤막한 글을 남기고 비행기에 올랐다.
"안녕, 내 긴 여정이여.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준 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