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일간, 베트남-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궁금했다. "6개월 후의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24년 7월 7일.
한국에 돌아온 나는 분명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동생은 나의 크고 익숙지 않은 제스처에 잠시 멈칫했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데다 몸도 한층 더 통통해져,
어딘가 건강미 넘치는 외국인 같은 모습이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너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 너무 까매서.”
이 말은, 떠나기 전 나름 호감이 있었던 사람에게서 들었다. 여행 초반엔 자주 안부를 묻던 그였지만, 어느새 연락은 뜸해졌고, 다시 만났을 땐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겨 있었다.
지금 이렇게 여행기를 마무리하며 글을 쓰다 보니,
어쩌면 여행 이후의 내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까맣던 피부는 조금 돌아왔지만, 필리핀에서 갑자기 폭발한 여드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고, 내 잔고는 바닥을 찍었다. 한국에 처음 돌아왔을 때 내 통장에는 150만 원 남짓이 있었다.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다시 벌고 있지만, 마치 뚬벙뚬벙 떨어지는 물방울을 양동이에 받는 듯한 심정이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멀쩡하던 피부가 울긋불긋해진 건 조금 속상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값진 것을 얻었다.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매번 위기를 넘기며 쌓인 자신감,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 나눈 따뜻한 마음,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얻은 넓은 시야,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까지…
무엇보다도, 나를 알게 된 계기였다.
여행을 하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만 쫓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시행착오 끝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혼자 여행을 잘 다닌다고 자부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외로움에 약한 사람이었다.
자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음식은 뭐든 곧잘 잘 먹었다.
빡빡한 계획보다는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며
골목골목을 익숙해질 때까지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목표했던 중앙아시아까지는 가지 못했고,
인도를 앞에 두고 지쳐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전 같았으면 지금의 내 모습에 좌절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나와 조금 더 가까워졌고, 나의 결점마저 감싸줄 수 있는 단단하고 넉넉한 마음이 생겼다. 그 단단함은 오래 품고 있던 불안을 잠재웠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사실 내 얘기다.
겪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려니 말이 길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꼭 내가 지나야 했던 터닝포인트 같은 시간이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겪는 과정처럼, 순금이 되기 위해 불을 여러 번 지나야 하는 것처럼.
그 시간이 나에겐 꼭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전환점이 있는 것 같다.
그 방식이 누군가에겐 여행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여행을 고민한다면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할 것이다.
“그냥 가봐. 조심하면서”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솜씨로 써 내려간 이 여행기를 읽어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밤을 새워가며 쓴 글들이, 다시 읽어보면 민망하고 엉성할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날 것’의 글에 반응해 준 몇몇 분들을 볼 때마다 감사하면서도 송구했다.
그래도 끝까지 쓰고자 했던 이유는 사진과 영상만으로는 다 담지 못했던 경험과 감정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가끔은 신기한 일도 있었다.
글을 쓰고 있으면, 마치 약속한 듯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 그 시기에 연락을 해왔다.
특히 방콕에서 나를 돌봐줬던 ‘미 이모’는 자주 연락을 준다. “언제 오냐”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열심히 돈 벌고 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정말이다.
요즘 나는 집과 직장을 오가며 비교적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터인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징징댈 때면 도망치고 싶은 충동도 들지만, 괜찮다.
나는 다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고, 또 언젠가 떠날 날을 꿈꾸고 있다.
그게 어떤 형태일지, 언제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또다시 넓은 세상에 나를 던질 그날을 이 글을 마무리하며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