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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 삼인조 1

필리핀 보홀

by 져니박 Jyeoni Park


"너 내가 보홀 가자고 안 했으면 맨날 헬스장에서 운동만 했을 거야."


베트남 친구 부이가 말했다. 부이는 헬스장에서 가끔 마주치던 사이었는데 우연히 세부 탑스 전망대에 놀러 갔을 때 만나 친구가 되었다.


나는 부이의 말을 듣고 삐죽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간 여기저기 쏘다니던 여행자에서 어학원에 정착하고 나선 범생이가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동안 영어 공부와 운동에만 심취해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 간의 토론을 즐겼고 주말에도 강의가 열리면 대부분 들으려 했다. 어느 날은 한국의 재활용 문화에 대해 밤새 발표준비를 하기도 했다.


"왜 너는 항상 혼자 밥을 먹어?"


수업 중에 한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그리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몇 개월간의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내겐 아주 익숙해져 버린 일이었다.


"그게 어때서요? 한국에는 식당에서 혼자 먹는 게 흔해요. 혼자를 위한 테이블도 있는걸요?"


나는 한국 문화에 빗대어 흔한 일인 듯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필리핀에 아직 그런 문화는 있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만약 네가 밖에 있는 식당에서 그렇게 혼자 먹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거야. 아마 무슨 슬픈 일이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같이 먹어주려고 다가오는 사람도 있을걸?"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곳 분위기가 서로 어울리고 무리 지어 다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이십 대 초반인 친구들은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고 활기가 가득했다. 그들은 수업이 끝나고 SM쇼핑몰을 돌거나 클럽에 갔다. 주말에는 인근 도시나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에 나는 한 편으로 그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웃사이더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늘 그래왔듯 필리핀에서의 여행도 혼자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 보홀 갈래?"


사실 어떻게 베트남 친구 부이, 수업에서 만나 친해진 대만 친구 소피랑 보홀을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계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이는 행동 대장이었고 나의 승낙에 바로 배편과 택시를 예약했다. 소피와 나는 옆에서 눈만 끔뻑거리며 그거 좋은 방법이라고 거들 뿐이었다.


우리는 동이 트기 전 1층에 모여 택시를 타고 여객선 터미널로 출발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보홀행 배에 올랐다. 오른편의 소피는 곧바로 잠에 들었고 왼편의 부이는 보온병에 싸 온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나는 그런 부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남자 중 가장 세심한 사람 같았다. 그는 백팩 말고도 각종 간식이 들어있는 에코백을 들고 와 우리가 배고플 때마다 하나씩 꺼내 내밀었다. 그는 커피와 차, 그리고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고 패러글라이딩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보홀에 도착해 오토바이 두대를 빌렸다. 처음엔 부이와 소피가 같이 타고 내가 혼자 탔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너무 속도가 느리다며 뒷좌석으로 좌천되었다. 그렇게 숙소에서 잠깐 쉬고 나온 우린 짙푸른 바닷길을 달렸다. 뭉게구름이 피어난 하늘은 맑고 쨍했다. 그간 섬도 들어가 보고 많은 해변 도시들을 가보았지만 보홀은 또 다른 특유한 풍경을 품고 있었다.


"점심은 배 위에서 먹을 거야."


목적지 안내도 모두 부이의 몫이었다. 부이는 어느 선상 레스토랑을 찾아 우리를 인도했다. 나무로 만들어져 특유 전통을 담고 있는 듯한 넓적한 배 위에는 뷔페식으로 음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안내를 따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배는 강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준비하고 있던 밴드가 음악을 연주했다. 음식 맛은 평범했으나 공연이 어우러지니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그 후로도 여행은 계속되었다. 보홀의 성당들을 구경하고 안경원숭이 타르시어가 얼마나 작은지 구경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날이 어두워져 코가 새까매질 때까지 보홀을 쏘다녔다. 그리고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망이나살'에 갔다. 그땐 망이나살이 졸리비만큼이나 필리핀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식당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거기서 내가 신기하게 여겼던 점은 야채를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과 밥을 무한으로 리필해 준다는 점이었다.


"여기 야채 들어간 음식 없나요?"


나는 망이나살에 가서도 이렇게 물었다. 필리핀 여행에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식당에서 야채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고기에 밥. 어학원 선생님들에 의하면 식당에선 야채 메뉴를 잘 팔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 맨날 먹는 야채를 뭐 하러 밖에 나가서까지 먹냐는 이곳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다 필리핀 사람들은 밥을 매우 좋아한다. 쌀 소비량이 엄청나다 보니 중국에서 쌀을 수입해와야 할 정도란다. 그래서 나는 보홀에서 재밌는 풍경들을 몇 가지 목격했다. 망이나살에서는 웨이터가 밥통을 들고 다니며 아이스크림 푸는 스쿱같은 걸로 밥을 리필해 줬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야채를 먹으려고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는데 아이들 생일 파티가 열렸다. 열다섯 남짓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 앉아 모두 치킨 밥을 시켰는데,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큰 밥통을 중앙에 놓았다. 보아하니 집에서 가져온 듯한데 아이들은 치킨 한 조각을 가지고 밥을 퍼먹었다. 나는 한동안 그들을 재밌게 바라보았다. 아주 사소하지만 내가 가진 문화와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내겐 여행의 소소한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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