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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한 칸, 하루에 5만 원

싱가포르

by 져니박 Jyeoni Park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며칠간 머무르다 싱가포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사실 조호르 바루는 들를 생각이 없었는데, 싱가포르의 살인적인 물가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마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편만 창이 공항으로 잡지 않았더라면 그 나라를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환승하듯 비행기 출발 당일 갔어도 됐겠지만, 이왕 가는 거 어떤 나라인지 맛은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첫맛은 나름 강렬했다. 특히 살벌한 물가가 나에겐 가장 당혹스러웠다. 그간 아무리 비싸봐야 3만 원 남짓 한 숙소에서 잠을 자오던 나는 싱가포르 숙박비에 다소 충격을 먹었다. 개인실도 아니고 좁은 벙커 침대 하나가 하루에 5만 원이라니! 이보다 저렴한 숙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 후기에는 '베드버그''고약한 냄새'와 같은 단어들이 수 없이 달려 있었다.


그렇지만 돈값을 한다고 해야 할까. 물가가 높은 만큼 그곳 세상은 듣던 데로 쾌적했다. 가장 좋은 것은 신호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베트남부터 말레이시아에 이르기까지 나는 무단횡단에 도가 터가던 참이었다. 그 안에서 늘 불안감도 있었는데,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도로 곳곳에 쓰레기 통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도 당연한 것들이 여행하는 동안 그렇지 못해서였을까. 점점 숙소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산뜻해졌다.


"안녕! 너 여기 숙소 묵어?"


숙소 출입문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한 중국인 소녀가 불쑥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흰색 원피스에 캐리어를 끌고 머리카락은 조금 땀에 젖어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나를 이미 아는 사람 마냥 반가워하며 빠르게 말을 쏟아 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숙소를 잘 못 찾아 남의 집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체크인을 했고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짐을 풀면서 우린 이야기를 계속했다. 소녀는 메이라는 이름의 대학생이었다. 하이난에 있는 대학에서 국제비즈니스? 과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영어가 유창했다. 거기다 그녀는 사교성도 좋았다. 그때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메이도 따라가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결국 메이를 데리고 나갔고 우리는 한국인 청년 해온과 한 참 엇갈린 끝에 동행을 시작했다.


사실 싱가포르 여행이라 해봤자 계속 걷고 걷는 것뿐이었다. 비싼 물가에 식당에 들어가는 것은 사치인 것 같았고, 우리는 그냥 마트에서 초밥을 사다가 길거리 밴치에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세 빌딩 위에 배가 얹어진 마리나 베이 샌즈를 지나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들어갔다. 그땐 이미 불빛 쇼는 끝나있어 사방이 어두 컴컴했다. 나와 메이는 며칠 더 있을 예정이라 이 유명한 쇼를 다시 볼 수 있었지만 해온 청년은 그렇지 못했다. 당장 오늘 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해온 청년은 다소 시무룩했다. 그래도 기념이라고, 나무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새벽에 헤어졌다.




한국에 있을 당시, 나에게 싱가포르에 대한 추억이 딱 하나 있었다. 단양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을 때다. 거기서 싱가포르에서 온 민 언니를 만났고, 우연히 하루를 같이 여행했다. 고작 하루였지만 나에게 언니는 첫 외국인 친구였고 처음으로 영어로 소통을 해본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7년 만에 언니에게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언니는 반갑게 답을 주었고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준비하고 나가려는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다 온 메이는 아침부터 말이 많았다. 이 친구 보면 볼수록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시간이 촉박해 분주한 나를 붙잡고 카레를 먹어서 똥이 카레색이라느니 같은 사소한 정보(티엠아이)를 난발했다. 그런 친구와 간신히 작별을 고하고 나오니 버스정류장에 언니가 앉아 있었다. 처음엔 둘 다 어색한 기분도 감돌았지만 금세 편안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언니는 배고프지 하면서 나를 새우 국숫집으로 데려갔다. 동네에선 소문난 맛집이라고 했다. 사실 맛은 그냥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언니와 근황을 나눌 생각에 나는 들떠 있었다. 7년 전만 해도 언니는 남자친구도 없었다고 했는데, 이제 언니는 유부녀가 되어있었다.


"그때도 듣기로 너희 부모님이 여행 가는 거 싫어하신다며. 어떻게 6개월이나 나와 있기로 한 거야?"


내가 그런 소리까지 했었나? 그때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에 아빠가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면서 몹시 화를 내고 째려봤던 기억이 났다.


"이제 포기했어요. 이제는 알아서 잘 돌아다니니까 어쩔 땐 어딨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으신다니까요?"


나는 식당을 나와 걷는 중에 우스개 소리로 대답했다. 언니는 또 다른 로컬 식당가로 나를 인도했는데, 관광객들이 아닌 현지인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가격도 꽤나 저렴한 편이었다. 거기서 언니는 내게 당근케이크를 먹어 보자고 말했다. 내가 아는 당근케이크란 카페에서 파는 달달한 케이크뿐이다. 그런데 언니는 어디선가 까만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깍둑썰기 모양의 떡에 짭조름한 맛이 마치 간장 떡볶이였다. 언니는 당근케이크가 어렸을 적부터 자주 먹던 소울푸드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조그마한 떡조각을 콩을 집어 먹듯 하며 생각했다. 왜 이게 당근케이크일까? 당근이 들어가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근이라기보다 흰 무가 들어가서 그러했다. 중국어로는 흰 무가 당근으로도 불린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린 어느 쇼핑몰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언니말로는 요즘 핫한 포토존이 안에 있다고 했다. 막상 올라가 보니 그곳은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조금 꾸며진 것 같았으나 무엇이 멋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재밌게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 둘은 냅다 한가운데에서 점프하기 시작했다. 그중 찍힌 사진들은 대부분 뛰기 전 엉덩이를 삐죽 내밀 거나 우스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우린 7년 전 소녀들처럼 사진을 찍으며 까르르 즐거워했다. 그리곤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졌다.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용기 내서 연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세부로 떠나기 전날밤.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걸었다. 해온 청년이 보지 불빛쇼를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어느 축제장 무대 앞 인파에 섞여 음악을 즐기고, 물을 뿜는 머메이드 상 앞에서 서성거렸다. 아름다운 야경과 선선한 바람. 6개월 간의 여행이 그렇게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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