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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 삼인조 2

필리핀 보홀

by 져니박 Jyeoni Park

새벽부터 고래상어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대만 친구 소피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서 나는 어스름한 바닷길을 구경했다. 어제 청량하고 맑은 모습은 어디 가고 다소 쓸쓸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렇게 목적지 해변에 도착했을 땐 다행히 날이 밝아 오던 중이었다.


고래상어 투어의 절차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몇 가지 유의 사항을 들은 후 우린 곧장 나무 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육지에서 얼마 멀어지지 않은 곳에 보트는 멈춰 섰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에 떠다니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고래상어의 등지러미가 보였다. 고래상어는 직원들이 뿌리는 먹이를 쫓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차례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나도 스노클을 끼고 물에 머리를 담갔다. 그러자 사람들의 버둥거리는 다리 사이로 거대한 몸체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서너 마리 정도가 번갈아 가며 나를 지나쳤다. 그들이 가까워지는 순간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입이 작아 작은 새우나 먹는 녀석들이지만 크기에 압도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맴, 깁미 더 카메라."


투어 중에 한 직원이 계속 나를 귀찮게 했다. 내손으로 고래상어를 담아 보고 싶었지만 자꾸만 직원은 카메라를 뺏어다 고래상어에게 다가갔다. 그사이 나는 어쩌다 바닷물을 많이 들이키게 되었다. 고래상어가 다가오면 도망치느라 허둥지둥한 탓이었다. 처음 한 두 번은 괜찮았지만 물을 먹을수록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추측하건대 계속 뿌려대는 먹이를 나도 먹 것 같았다.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아 먼저 배에 올라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진정을 해보려 해도 계속 헛구역질이 났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배에 올랐고 육지로 가까워질 때쯤 배에 가스까지 차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갔고 입과 괄약근을 틀어막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육지에 이르렀을 때 참고 있던 구역질이 세차게 올라왔다. 정말 토가 나오나 싶었다. 그러나 방귀가 빵!


사실 사람들의 여러 소음과 바닷가 소리에 내 방귀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겠지만, 분명 옆자리 베트남 친구 부이는 그 진동을 느꼈으리라...


"맴, 깁미 더 팁 프리즈..."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상태로 의자를 향해 걸어가는데 멀리서 아까 카메라를 뺏어간 직원이 애처롭게 나를 불렀다. 물속에서 원치 않는 도움을 준 값을 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를 모른 채 지나쳤다. 애초에 내가 요청한 서비스도 아니었으며, 수중에 현금도 없었고 대답할 힘도 없었다.


"너희 들끼리 다음 목적지에 가. 난 집에서 쉴래."


같이 온 부이와 소피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가 가지 않으면 자신들도 가지 않겠다며 같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씻고 좀 잠을 자니 다행히 몸 상태는 괜찮아졌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고래상어 투어가 중지되었다. 그때의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홀 여행도 6개월 간의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주말이었던 그날. 그래서인지 보홀에서의 시간이 더 소중하고 아쉽게만 느껴졌다.


우린 주변 해변을 돌고 야자수 나무길을 달렸다. 그리고 다락방 같은 카페에서 10년 후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솔직히 반신 반의 했지만 자꾸만 상상해 보게 되었다. 10년 후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낳았을까? 그때도 여행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해가 져갈 무렵 다시 세부로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에 이르렀다.


"아마 마지막 배 끝났을 텐데?"


오토바이를 반납하는데 가게 사장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부이는 사장님 오토바이를 타고 확인하러 매표소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손을 내져었다. 정말 마지막 배가 끊긴 것이었다.


우리는 황당함에 잠시 말을 잃었다. 부이는 하룻밤 더 자고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일 수업도 있고, 어딘가 방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사장님도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한 시간 거리에 다른 선착장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곳 배는 늦은 시간까지 있으며, 원한다면 자기 트럭으로 태워다 줄 수 있다고 했다.


잠깐의 흥정이 끝나고 결국 우린 초록 미니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나무로 만든 간이 의자에 셋이 나란히 쪼그려 앉은 채로 차는 출발했다. 처음엔 처량한 기분이 들었지만 부이가 가져온 스피커로 음악을 틀은 후로 신이 나기 시작했다. 차 뒤로 따라오는 오토바이들과 같이 춤을 추고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분위기에 흥분한 부이는 잠깐 차를 새워 맥주를 사 마셨다. 그렇게 마을들을 지나 야자수 나무가 우거진 도로를 달렸고, 한편엔 노을 지는 해변이 반짝이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뜻하지 않게 낭만이 넘쳐흘렀다. 보홀 관광지에서 보지 못한 일반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배 타면 돼, 조심히 돌아가!"


세부행 배표를 끊는 것까지 도와준 사장님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그렇게 우리 셋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부이가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돈을 안 냈잖아!"


우린 잠시 눈만 꿈뻑였다. 사장님은 우리를 돕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돈도 받지 않았던 것이었다. 셋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헤어질 때 부이는 다시 보홀에 오면 연락하고 싶다고 사장님과 번호를 교환했었다. 전화를 하자 사장님은 다시 돌아왔고, 우린 감사한 마음에 팁까지 함께 지불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낭만이 넘치는 여행이었어!"


나는 여행의 마지막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기쁘고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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