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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Grace로부터 온 편지#7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Grace에게

by 두유진

사랑하는 나에게,


요즘 너, 참 애쓰고 있지.

두 번째 책 『스무 장의 명화, 스무 번의 위로』를 쓰느라 매일 마음을 쏟아내며, 글 한 줄 한 줄에 너의 진심을 심고 있구나.

정말 승모근이 돌덩이가 되어가고 눈이 침침해지는 하루 하루를 잘 버텼던 기억이 난다. 지문이 없어지고 뼈마디가 굵어지겠구나 싶기도 하고 ㅎㅎㅎ 많은 작가들을 또 한번 리스펙하게 되고 겸손해지는 나날이다. 뭔가를 진심으로 해보면, 사람이 참 겸손해지더라.

아이를 낳았을 때가 그랬어.


출산을 하고 다시 교실에 섰을 때,

늘 보아오던 아이들이 그렇게도 소중해 보일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웠어.

아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 생명 하나를 지켜내기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는지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지.


아이들은 그냥 ‘귀엽고 예쁜 존재’가 아니었어.

그 뒤에 숨은 부모의 하루하루가 있었고,

매 순간 쏟아지는 사랑과 수고가 있었어.


하루 세끼를 먹이고, 잠을 재우고, 울음을 달래고,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어주는 그 시간이

얼마나 묵직한 마음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지

새삼스레 놀라웠고,

경이로웠고,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낮아졌어.


아이 하나가 이렇게 자라는 일,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참으로 위대한 일이구나, 싶었거든.


그때 나는 알았어.

‘부모’라는 이름 아래 하루를 살아내는 그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존재인지.


기억하니?

왜 이 책을 쓰기로 했는지.

첫 책 『자존감은 그려지는 거야』를 세상에 내보내고 나서, 많은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었지.

“아이를 사랑하지만 자꾸만 화가 나요.”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요.”

“아이에게 좋은 부모이고 싶은데,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요.”


너는 그 말들 앞에서 오래 머물렀지.

그 말들이 너의 오래전 모습과 겹쳐져서, 쉽게 지나칠 수 없었잖아. 그리고 늘 사색하게 되는 명화들을 모으던 나만의 사진첩에서 위로와 격려의 메세지를 쓰기 시작했었지.

그래서 결심했지.

부모라는 자리에서 흔들려본 사람으로서,

아이를 사랑하지만 스스로를 미워했던 시간들을 알아본 사람으로서, 너의 이야기를, 너의 손길을 건네야겠다고.


이 책은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너의 작은 응원장이야.

흔들려도 괜찮다고.

서툴러도 충분하다고.

사랑하지만 지치고, 노력하지만 버거운 그 마음마저도 존엄하다고.


너는 알고 있잖아.

부모라는 자리가 얼마나 고귀하고도 외로운 자리인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책도 강연도 들어봤지만 매일매일 쏟아지는 감정 앞에서는 다시 무너지고 마는 그 자리.

그래서 너는 위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곁에 있어 주는 말을 건네고 싶었잖아.


“나는 오늘도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부모들의 가슴을 안아줄 수 있을지 너는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너는 잊지 않았으면 해.

이 책을 쓰며 가장 먼저 위로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라는 것을.

너 역시 부모로서, 선생님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길 위에 있고, 이 글들은 너 자신에게 보내는 기도라는 것을.


때로는 문장이 엉켜버려 멈추고 싶을 때도 있겠지.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

‘이 말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수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거야.

그럴 때마다, 오늘의 너에게, 나는 이 말을 전하고 싶어.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끝까지 쓰겠다는 결심과 의지의 문제다.” (무라카미 하루키)


아마도 하루키가 이 말을 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글을 쓴다는 건 재능이냐, 영감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오랜 생각이 있었을 거야.

그는 누구보다 자기 글쓰기에 엄격하고 성실한 사람이잖아.

아침마다 일어나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러닝을 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매일 꾸준히 그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


그런 하루키에게 글쓰기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감각적인 문장력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였을 거야.


멋진 첫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아.

하지만 그 문장을 끝까지 이어가고,

지루하고 힘든 중간을 견디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날들을 통과해

책 한 권을 완성하는 사람은 적지.


하루키는 누구보다 그 시간을 알았던 사람이야.

때로는 자기가 쓰는 글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을 거고,

‘과연 이게 좋은 글인가’ 스스로를 의심했던 밤들도 많았겠지.


그래서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던 거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쓰는 사람이 글을 완성한다.”


영감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써야 영감도 찾아온다는 걸

그는 온몸으로 배웠던 거지.


그 말 속에는

화려함도, 감각적인 언어도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결국 성실함과 꾸준함’이라는

담백하고 깊은 확신이 담겨 있어.


그리고 너도 알지?

너도 그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도 끝까지 쓰고 있는, 그래서 이미 충분히 좋은 작가인 너를.


그 말이 너를 앞으로 다시 나아가게 해줄 거야.

멈춰도, 돌아가도 괜찮아.

이 길은, 너의 진심이 이끄는 길이니까.


사랑을 담아,

2035년의 Grace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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