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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자란다.

by 두유진

오늘은 퇴근길에 오디오북을 들으며 스타벅스DT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사색에 빠졌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건너고 있다. 『천 번을 흔들리며 아이는 어른이 됩니다』에서 김붕년 교수는 말한다. "사춘기는 두 번째 탄생이다." 첫 번째 탄생이 생물학적 사건이라면, 두 번째는 심리적 독립이다. 아이는 자신만의 인생 무대 위에서 자기를 찾아 나선다. 그 여정은 흔들리고, 부딪히고, 때로는 무너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늘 흔들림을 함께 견디는 부모가 있다.


나는 지인의 아들을 떠올린다. 누구보다 모범적이던 아이였다.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늘 ‘잘하는 아이’로 자라야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게 속에서, 자부심과 부담이 함께 눌러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낯선 도시, 낯선 학교, 그리고 더 치열한 입시의 공기. 그는 스스로를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사춘기’라 넘기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내면의 파도가 그를 덮쳤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대로 감고 싶다는 말.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한마디가 부모의 마음을 산산이 부쉈다. 그 말은 슬픔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누군가가 지켜주지 않으면,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외침이었다.


그 엄마는 매일 아이와 산책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심스러웠지만, 그저 옆에 있었다. 아이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해석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들었다. 그 엄마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가장 원하는 건 ‘고쳐주려는 말’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어느 날,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부모는 지지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학력’과 ‘스펙’이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고등학교 중퇴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족은 믿었다. 이 아이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성적도, 명문대도 아닌, 살아있음 그 자체라는 것을.

그 아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붙들었다. 감자튀김을 튀기다 화상을 입기도 했고, 텐션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어른인 척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가족과 백팔배를 올리고, 가족의 아침을 챙겨주며, 그는 이미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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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시간은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흔들림이 그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흔들림 없이 자라는 아이는 없다. 상처 없이 크는 마음도 없다. 엄마와 아빠는 말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을 안다. “힘들었지”라는 말을 건네지 않아도, 눈빛과 손길로 전한다. ‘알고 있다’는 신호. ‘괜찮다’는 지지.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곁에 있겠다’는 약속.


아이의 성장은 단지 키가 크고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다. 부모의 길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아득하다. 하지만 그 길 끝에 ‘잘 자라 있었다’는 말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 결국 부모의 사랑이란, 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 지인의 아들처럼,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 흔들림 안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랑이란, 끝까지 흔들리는 아이 곁을 지켜주는 일이다. 말보다 마음으로, 판단보다 기다림으로, 아이의 곁에 머무는 일이다.


그것이 부모라는 이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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