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큰 아이
“우리 아이는요, 어릴 때부터 자기 고집이 엄청 셌어요.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끝까지 하려 들고, 하기 싫은 건 무슨 수를 써도 안 해요.”
상담 내내 부모님은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하셨다.
“기준이 확실한 아이라 좋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너무 힘들어요. 학년이 올라가니까 더 심해졌어요. 이제는 정말, 어떤 말도 안 통해요.”
부모님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아이의 교사로서 나는 그 ‘기준’의 정체를 조금은 다르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확고한 주관이 아니라, 실패를 회피하려는 방어였다.
그 아이는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고,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쉬운 문제는 빠르게 해결한다. 결과도 좋다.
그러나 난도가 조금만 높아지거나 실수할 가능성이 느껴지면, 아이는 “재미없어요”, “귀찮아요” 같은 말로 슬쩍 그 상황을 피해버린다.
표면적으로는 자기 기준이 뚜렷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이 조용히 숨어 있다.
성공만 하려는 아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
그 마음의 깊은 곳에는 ‘실패한 나를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이길 수 있는 경기만 하려 한다.
지면 안 될 것 같고, 지는 순간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아이는 자라오면서 수많은 상황 속에서 조건부의 사랑을 학습했을지도 모른다.
잘했을 때 칭찬받고, 못했을 때 실망한 표정을 본 적이 반복되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이렇게 믿게 된다.
‘나는 실패하면 안 되는 존재야.’
‘부모님은 완벽한 나를 원해.’
이런 마음을 가진 아이에게 ‘왜 안 하냐’, ‘좀 참아야지’라는 말은 칼날처럼 느껴질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상담 말미, 나는 조심스레 부모님께 여쭈었다.
“혹시 아이가 ‘실패한 모습’을 부모님 앞에서 보여도 괜찮다고 느낀 적이 있었을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부모님은 아주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못 했을 땐 ‘왜 못 했냐’고 다그쳤고,
잘했을 땐 ‘잘했지!’ 하고 안아줬던 것 같아요.”
그 말이 참 오래 남았다.
아이를 바꾸고 싶어서 오신 상담이었지만,
결국에는 ‘마음을 열 수 있는 부모’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날 나는 말씀드렸다.
“지금부터라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시면 어떨까요.
‘실패해도 괜찮아. 엄마는 네가 해보려 한 그 용기가 참 자랑스러워.’
‘결과보다 너의 시도와 마음이 더 소중해.’”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의 눈가가 살짝 흔들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시간, 아이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 속에서
부모님 또한 얼마나 애타고 조급했는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막막한 그 마음을.
실패를 피하는 아이가 다시 시도할 수 있으려면,
그 아이 곁에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결과보다 용기를, 성과보다 시도를 먼저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아이를 위한 시선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 어른들이 우리 자신에게도 건네야 하는 말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그걸 느끼는 너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그 부모님께, 그리고 지금도 혼자 애쓰고 있는 많은 부모님께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