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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각이 없어질까 봐요”

– 그 한 문장에 담긴 마음

by 두유진

오늘은 말차 라떼 한 잔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일명 멍때리기 챌린지. 갑자기 거울을 보니 너무 지쳐보였다. 살아내느라 힘든거냐.
늘 이제 뭐하지?하며 다음 할 일을 정리하고, 루틴대로 살아내느라 정작 ‘멍’ 한 번 놓기 어려웠던 나. 그래서 오늘은, 말차 라떼 마시는 시간만큼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려 했다. 그런데도…

습관처럼 폰을 열고,
습관처럼 메일함을 확인하고,
습관처럼 '상담사연' 폴더를 누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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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한 줄 한 줄 읽어내릴수록 말차 라떼는 더 느리게 식어갔고,
그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앉은 자리에 또 다른 마음이 조용히 앉았다.이 사연은 요즘 많은 부모님들이 마주하는 ‘정서적 의존’의 흔적을 담고 있다.

아이는 단순히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자기 감정의 기준을 타인에게 내어준 상태에 가까웠다.

그런 아이들에겐 종종 이런 말들이 익숙하다.
“너는 원래 그런 성격이잖아.”
“괜히 예민하게 굴지 마.”
“그건 네 착각이야.”

반복되는 부정과 판단은 아이로 하여금 자기 감정을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타인의 감정과 기준에 의존하게 한다.

이 아이 역시 집에서 자주 지적받고 감정을 눌러온 경험을 통해
“내가 느끼는 것보다 어른의 말이 더 중요해”라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법칙’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위축되고,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된다.



안녕하세요. 두마인드상담연구소의 두유진입니다.
보내주신 사연, 조용히 천천히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었고, 특히 “이러다 자기 생각이 없어질까 봐요”라는 말이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건 아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부모의 속상하고 두려운 마음이기도 하니까요.

말씀해주신 아이의 모습은 단순히 ‘친구에게 끌려가는 아이’가 아닙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보다 타인의 기준에 더 의존하게 된 상태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종종 가정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너는 원래 그런 애잖아.”
“예민하게 굴지 마.”
“그건 네 착각이야.”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기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고,
결국 관계 속에서 ‘나’보다는 ‘타인의 반응’을 우선하게 됩니다.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조심스레 움직이는 아이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의 감정을 다시 ‘믿어도 되는 것’으로 회복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깊은 실천을 제안드려요


✔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세요.
“그랬구나, 네가 그렇게 느꼈구나.”
이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나의 감정은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신호가 됩니다.

✔ ‘왜?’보다는 ‘어떤 마음이었어?’를 물어보세요.
문제의 원인보다, 감정의 맥락을 이해해주는 말이 아이의 마음을 더 열게 합니다.

✔ 선택과 의견을 기다려주세요.
당장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조금씩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카페에 멍하니 있으려다 다시 한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메일로 온 사연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세심히 귀 기울여야 할 감정들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전문가들의 글을 다시 찾아 읽고, 비슷한 사례들을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상담’이라는 건 무거운 책상 앞이 아니라 이렇게 말차 라떼 한 잔 앞에서 조용히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키우면서 어느 날은

“내가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보다 이 말을 먼저 전하고 싶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감정을 믿고 말할 수 있도록, 그 곁에서 기다려주는 당신은 정말, 괜찮은 부모입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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