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빨간색이 그 당이에요? 파란색은 저쪽 당?”
“선생님, 빨간색이 그 당이에요? 파란색은 저쪽 당?”
태극기의 음양무늬를 소개하던 순간, 아이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물었다. 정치 뉴스에서 흔히 보던 색의 조합이, 어린 아이의 눈엔 너무 익숙했던 모양이다. 교실 안에 가볍게 웃음이 퍼졌고, 나는 아이의 질문을 무겁지 않게 풀어주었다.
“아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은 서로 다른 ‘기운’을 나타내는 색이야. 빨강은 하늘과 해, 따뜻하고 밝은 기운을, 파랑은 땅과 달, 차분하고 조용한 기운을 상징해. 두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게 우리 태극기의 멋이야.”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해가 된 건지, 더 헷갈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태극기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 수업은 ‘나라사랑’이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을 아이들의 일상과 연결해보고자 했다. 태극기와 무궁화를 크롬북의 오토드로우 프로그램으로 직접 그려보고, 애국가 가사를 또박또박 적어보며 나라에 대해 생각해보는 활동. 디지털 기기를 활용했지만, 그 속엔 아날로그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담기길 바랐다.
“선생님, 무궁화는 왜 무궁화예요?”
“무궁화는 ‘무궁하다’에서 온 이름이야. 지치지 않고, 지고 나면 또 피는 꽃이지.”
그 말을 듣던 지안이는 자기 그림에 무궁화를 무려 열다섯 송이나 그려 넣었다. 하나하나 색을 바꿔가며 “이 꽃은 우리 가족이야. 다같이 오래오래 행복하라는 뜻으로…” 아이들은 어느새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라사랑’을 해석하고 있었다.
또 다른 아이, 태현이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네 괘를 보고선 이렇게 물었다.
“이건 왜 이렇게 생겼어요? 무슨 암호 같아요.”
맞다. 처음 보면 어려울 수 있는 괘들. 하지만 태극기 속 상징들이 자연과 삶의 균형을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그제야 감탄했다. “이건 바람인가요?” “이건 비구름이에요?” 하고 하나하나 추측해보는 시간이, 단순한 그리기 시간을 넘어서 깊은 배움의 순간이 되었다.
수업이 끝난 뒤, 몇몇 아이들이 종이에 적은 애국가 1절을 들고 와서 조용히 읽어주었다. 어떤 아이는 틀린 글자를 귀엽게 수정했고, 어떤 아이는 태극기 옆에 하트를 그려 넣었다.
단지 태극기와 무궁화를 그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라를 생각하고, 부모님을 떠올리고, 나의 자리와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에 대해 아주 조금씩 질문을 시작하는 공간이었다.
나라사랑은 어쩌면 거창한 구호나 대단한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것은 아이들의 소박한 물음 속에, 태극기의 색을 궁금해하며 던진 질문 속에, 무궁화를 조심스럽게 그려넣는 손끝에 이미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마음일지 모른다.
나라사랑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내가 소중하다는 믿음은 나를 키워준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 나를 품은 이 땅을 향한 애정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나라사랑은 단지 국경과 제도를 넘어서, 나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그 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맺어온 수많은 관계들에 대한 감사와 책임의 표현이다. 그것은 결국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