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러 가는 목요일 – 교실 밖에서 만나는 아이의 마음
“선생님, 저 다음에 언제 가요?”
“그 책방에 또 가면 안 돼요? 거기 되게 조용하고 좋았어요.”
“그때 먹었던 떡볶이, 진짜 맛있었어요!”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의 관심사는 매주 돌아오는 ‘목요일’이다.
바로 『책과 마음이 자라는 목요일』, 우리가 이름 붙인 아주 특별한 시간 덕분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책을 고르러 가는 날이 아니다.
아이 두 명, 그리고 나, 세 사람만의 조용하고 소소한 외출이다. 학교를 조금 벗어나, 동네의 작은 서점에 들르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고른 뒤, 인근의 카페나 분식집에 앉아 책 이야기, 친구 이야기, 요즘의 고민이나 반가운 일들을 함께 나눈다.
가장 좋아하는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웃기도 하고, 갑자기 털어놓는 속상했던 이야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나는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작은 모험이 되길 바랐다.
정해진 수업 시간표와 줄지어 걷는 교실 바깥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그 시간은 우리 곁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서점 문을 열던 아이들이, 이내 책장을 넘기며 신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선생님, 이거 표지가 너무 예뻐요. 그런데 줄거리는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이건 우리 동생이 좋아하는 책인데, 제가 읽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책을 고르는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고르고, 다른 친구가 읽을 걸 생각하며 선택하는 그 짧은 시간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자기 표현의 시간이라는 걸 나는 안다.
책을 고른 뒤, 우리는 마주 앉아 따뜻한 음료 한 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책을 왜 골랐는지, 책 속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새 흘러나오는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마음속 이야기들.
“요즘은 좀 힘들어요. 누구랑 친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어제 집에 가는데 비가 와서 혼자 엄청 뛰어갔어요. 근데 그게 또 재밌었어요.”
나는 이 시간을 통해, 교실에서는 미처 들을 수 없던 아이의 ‘작은 진심’들을 듣는다.
책을 고르러 갔지만, 사실은 아이의 마음을 읽고 돌아오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다음 날, 자신이 고른 책을 반 친구들 앞에서 소개한다.
떨리는 목소리로도, 수줍은 눈빛으로도, 그 안엔 분명한 자신감이 담겨 있다.
‘이건 내가 고른 책이야. 그리고 내가 이야기할 수 있어.’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고 믿게 된다.
나는 교사로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교실에서의 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쩌면 교실 밖에서의 작고 느슨한 시간들 속에서
아이와 교사 사이에 더 깊은 신뢰와 공감이 피어난다고.
『책과 마음이 자라는 목요일』은 그래서 단지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건 아이가 나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는 창구이고,
교사인 나 역시 그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문이다.
작은 서점과 따뜻한 카페 한 켠에서 시작된 이 조용한 동행이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오래도록 기억될 따뜻한 ‘교실 밖 수업’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책보다 먼저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은, 조용한 목요일 오후,
서점의 책장 사이 어딘가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