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6일 Grace에게
그날의 너를 기억해.
매주 화요일이면 익숙하게 찾던 화실을
현충일 덕분에 조금은 여유롭게,
금요일 오후에 찾았던 그날.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작업실에서
그림 한 점에 정성스레 사인을 하고,
새로운 캔버스를 조심스레 펼쳐들었지.
네가 화실에 들어설 때마다
세상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너의 내면과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
그날 너는 오랜만에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냈지.
화실을 나와 가로수길 단골 스페인 클럽으로 향했고
매니저는 너의 자리를 알아채듯 반겨주었어.
샹그리아 두 잔, 감바스, 올리브, 바게트, 하몽 샐러드.
늘 먹던 그 메뉴가
그날따라 더 특별하게 느껴진 건
아마도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렇게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전화가 울렸지.
띠동갑, 띠띠동갑 아래의 후배들이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어선
“언니, 지금 택시 타고 가요!”
하고 말했을 때,
넌 처음엔 놀라고 웃었지만
결국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지.
그 친구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온 것도 아니었어.
세상을 바꿀 고민도,
눈물겨운 고백도 없었지.
그저, 삶의 여정 속에서 시시콜콜한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그 누군가로
너를 떠올렸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더 고맙고 따뜻한 일이었지.
예전엔 그런 시간들이
당연하게 주어졌지.
특별한 주제 없이도
서로의 시간에 스며들 수 있었고,
그 ‘아무렇지 않음’이
우릴 더 가까이 묶어주곤 했잖아.
그런데 지금의 너는
더 이상 그런 시간을
쉽게 허락하지도,
선뜻 내어주지도 않게 된 나이가 되었지.
그래서 그날의 벙개는
조금은 낯설면서도
참 신선하게 느껴졌을 거야.
Grace..
그날 너는 사람 사이의 ‘틈’을 다시 기억했어.
말이 없어도 좋고,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저 마주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했던 시간들.
지금의 나는
그날의 너를 아주 깊이 이해하고,
그 순간을 따뜻하게 꺼내어 웃을 수 있어.
다시, 그런 자리에 나를 놓아줄 수 있다는 걸
그날 너는 스스로에게 증명했으니까.
가끔 그날처럼,
계획보다 마음의 끌림을 따라가 봐.
그곳엔 언제나,
작지만 찬란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랑을 담아,
2035년의 Grace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