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어려워
“이제 갈까요.”
우리는 지하철 개찰구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원래는 지하철 역사가 큰 곳이였지만, 오늘따라 길이 짧게 느껴졌다.
이대로 이 남자를 보내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순간적으로 떨렸던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번호 주실 수 있나요?”
살면서, 대놓고 대시하는 건 처음이였다.
“번호 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스치더니, 곧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왜요?”
남자의 반응은 거절이라기보단, 궁금하다는 느낌이였다.
“아.. 오늘 좀 놀라기도 했고 괜히 좀 그래서요.”
얼렁뚱땅 말을 했다. 괜히 그래서 왜 이 사람 번호가 필요한건데? 그냥 어거지로 말했다.
“아, 네.. 뭐, 괜찮죠.”
그의 말투에서 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란 어려웠다.
남자가 숫자를 누를 때마다 내 심장 소리가 커졌다.
연락처를 저장하고, 인사도 어색하게 끝낸 채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개찰구를 지나 돌아보았을 땐, 이미 그는 사라진 뒤였다.
다음날은 친구들과 만나 오픈채팅 후기를 얘기하기로 한 날이였다. 자극적인 얘기를 기대하고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반응은 예열됐다.
“야, 그래서 그 남자 어땠는데?”
다음 날 카페. 내 앞에는 고등학교때 항상 연애얘기로 불타올랏던 친구 셋이 앉아 있었다.
나는 괜히 컵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뜸을 들였다.
“응.. 좀 나쁘지 않았어.”
“뭐래. 오픈채팅에서 만났다며.”
“그건 맞는데, 막상 만나니까 완전 달라. 눈빛이 그냥 깊어.”
친구들 중 한명은 대놓고 크게 웃었댔다.
“사진있어?”
“사진은 없어”
남자는 프로필 사진이 없었고 음식사진만 있었다. 심지어 설정된 이름도 무슨 과일이모티콘이였다.
“연락할거야? 근데 좀 걱정되지 않아?”
“잘 모르겠어.”
“그럴거면 왜 번호는 물어본거니”
나는 일부러 당당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실 머뭇거리기도 했다. 오픈채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고, 그 남자를 오랜시간 동안 알아왔던 것도 아니니까.
“이게 뭔 썸이야.”
“야 문자 한 번 보내봐”
친구들이 신나게 놀릴수록 오히려 문자를 보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대화 주제는 하루 종일 오픈 채팅 얘기였다.
그날 밤, 방 안은 조용했지만 내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그의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정말 줬던 게 맞나싶게 덤덤한 번호였다.
<오픈채팅 관련해서 연락은 안오셨죠?>
어떤 핑계거리를 찾을까 고민하고, 또 한참 망설이다 결국 보냈다. 찌찔하지만.
보내고 나니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길게 느껴졌다.
새 메시지 알림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덜컥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이름은 뜨지 않았다.
그는, 답장할까.
아니면 이 번호는 가짜번호일까.
그렇게 문자를 보낸 후 일주일 동안 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의외로 연락온 건 다른 사람이였다.
ㅡ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