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들
헤어진 지 하루만에 소개팅이나 미팅시켜달라고 하면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X)로 소문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등학교 친구들이라고 해도.
하지만 혼자있을수록 외롭고 심심한 마음은 커졌다. 이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애초에 몇 주 안사귀어서 혼자시간을 가질 것도 없었기에.
‘오픈채팅이나 해볼까?’
때는 바야흐로 카카O톡 오픈채팅 만남 전성시대.
나는 헤어진 지 하루 만에 나는 서울 20대 대학생 모임 오픈채팅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남들이 하지말라고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걸, 깨닫게 되는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카카O톡에는 정말 수 많은 오픈채팅방이 많았다. 대학생연합, 서울20대모임, 9X년생모여라 등 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인원이 많아보였던 방은 가입했다가 나갔는데 이유는 다짜고짜 얼굴공개를 요청했다.
<환영합니다. 이름/지역/나이 적어주세요. 얼공은 3초안에 바로 갑니다. 얼공하고 궁금한 상대 지목해서 얼공시킬 수 있어요.>
<?>
입장하자마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키더니, 얼굴사진을 3초 이내 올리지 않으면 강퇴를 시킨다고 하는 조금 이상한 방이였다. 찝찝해서 대답을 안하고 있으니 바로 강퇴 당했다.
<안녕하세요>
그 다음에 들어간 방은 조금 조용한 방이였다. 실명으로 닉네임을 설정할 필요도, 얼공도 없었다. 다만 성비가 8:2로 여자의 수가 많이 적었다.
<오 신규>
<어디학교에요?>
<OO이요>
<몇살?>
<21살이요>
<동갑이다!>
<오~ 우리 다 근처인데 잘됐다>
<새로운 사람왔는데 금요일에 모임열게요>
내가 여자회원이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모임은 빠른 속도로 열렸다. 총 8명이 금요일 번개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중 3명이 여자였고 나머지 5명은 남자였다.
대부분 20~22살 사이의 내 또래였고, 남자는 25살의 복학생도 있었다.
이별의 슬픔을 떨쳐내려고 선택한 오픈채팅. 유튜브에서 보던 것보다는, 적어도 생각한 것보다는 정상적이였다.
그리고 드디어 금요일. 오후 수업을 끝내고 약속장소로 갔다. 시간은 저녁 6시. 장소는 대학가 근처의 치킨집이였다.
오픈채팅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게 부담스러워서 일단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말을 했다. 몇 시까지 연락없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는 좀 오바인가?
치킨집에 어색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혹시나 했지만- 그 오픈채팅모임이였다. 갈색 단발머리 여자만 혼자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혹시.. 오픈채팅..”
“아 맞아요. OO님?”
“네. 안녕하세요.”
여자들과 남자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한 명은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인사해주는 느낌이였지만, 갈색 단발머리 여자는 나를 슬쩍 흘겨봤다.
갈색머리 여자는 인사는 생략하고 나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21살?”
“네”
“전 20살이요.”
“아, 네.”
여자는 혼자 피식거리며 맥주 잔을 들기 시작했다. 뭐 어쩌라는건지.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 같았다. 단발머리 여자 옆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한 분만 더 오시면 돼요. 그 분 오면 메뉴 하나 더 주문할게요."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시죠?”
순간 구겨진 내 얼굴을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발머리 여자와 옆에 붙은 남자 둘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친절하게 대해줬고, 대화는 무난했다.
“대학 문 닫고 입학했어요.”
“저도요.”
전공은 대부분 문과였는데, 때는 4월이고 작년까지 입시를 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서로 얘기할 거리가 많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화가 무르익던 중이였음에도, 그 남자의 얼굴에 모두가 시선이 뺏겼다. 날카로운 턱선과 높은 콧대는 마치 배우 지망생을 보는 것 같았다. 무게감 있는 얼굴이였다.
“.....”
단발머리 여자는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놀란 것 같았다. 나도 오픈채팅에 별 기대하지 않았지만, 꽤 잘생긴 사람이 나타나 놀랐다.
“OOO모임.. 맞죠?”
“네!”
다들 얼어붙은거마냥 어색하게 굴어대기 시작했다. 너무 잘생긴 사람을 보면 몸이 굳기도 하나보다.
“이름이?”
“아, 진짜 잘생기셨다”
몇몇 남자들은 탄식하는 것 같았다.
“유지수입니다.”
이름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남자였다. 근데 너무 잘생겨서 엮일 건덕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가 21살이라고 하셨었죠?”
"..생각보다 노안이시네"
새로운 남자 등장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것처럼 보였지만, 작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처음 본 사람을 보고 노안이라고 하는 작은 무례함도 오픈채팅모임이여서 그런지 대부분 신경쓰지 않는듯했다.
물론 경쟁심을 당연히 느낄 수도 있지만, 기싸움이 너무 느껴지니 보는 내가 민망했다. 오픈채팅같은 거 하지말걸.
“지수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아.. 네!”
단발머리 여자는 늦게온 남자에게 꽂혔는지 계속해서 치근대기 시작했다. 역시 오픈채팅은 이런건지 재미가 없었다.
“지수씨는 재수하신거에요?”
“네. 수능 망쳐서 1년 다시했어요.”
단발머리 여자 옆에 꼭 붙어있던 남자는 살짝 비아냥거리는 느낌으로 말했다.
“아무리 OO대학이라고 해도, 재수는 1년 썩히는 거 아닌가?”
괜히 같은 재수러인 나를 욕하는 것 같아서 순간 욱했다. 괜히 먹지도 못하는 술을 먹어서 그런지 말이 험하게 방정대기 시작했다.
“니가 뭔상관인데?”
굳이 니라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말이 쎄게 나가버렸다.
“너 뭔데?”
오픈채팅에서 만난 모르는 남자랑 시비가 붙어버렸다.
ㅡ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