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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모르지만, 끌려

오픈채팅에서 만났더라도

by 잠들기전고백

“지수씨는 재수하신거에요?”

“네. 수능 망쳐서 1년 다시했어요.”


단발머리 여자 옆에 꼭 붙어있던 남자는 살짝 비아냥거리는 느낌으로 말했다.

“아무리 OO대학이라고 해도, 재수는 1년 썩히는 거 아닌가?”


괜히 같은 재수러인 나를 욕하는 것 같아서 순간 욱했다.

괜히 먹지도 못하는 술을 먹어서 그런지 말이 험하게 방정대기 시작했다.


“니가 뭔상관인데?”


굳이 니라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말이 쎄게 나가버렸다.


“너 뭔데?”


오픈채팅에서 만난 모르는 남자랑 시비가 붙어버렸다.





그동안 전조는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텐션이 올라가 가끔 이상한 말을 할 때가 있긴 했다. 술자리에서 정적을 일으키 때가 두 세 번 정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같이 술에 취해있거나 워낙 친한 친구들이여서 큰 문제는 안됐다.


이번에 ‘니가 뭔상관인데’라는 말도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한 건 맞다. 하지만 나름 떨어진 자리에 앉았고 안들리게 중얼거리게 말했었는데.. 내 잘못이긴 하다.


“죄송합니다.”


애초에 나는 호전적인 성향의 사람도 아니였고, 진짜 말실수였기 때문에 찌질해보일 수 있지만 사과로 답했다.


하지만 상대는 많이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너, 너, 나와봐”



남자는 씩씩거리며 내쪽을 향해 걸어오려는 자세를 취했다. 진짜 일어설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체를 흔들어댔다.


“아니.. 형..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그러지말죠”


술자리는 파국이 일어나기 직전이였고, 대부분 흥분한 남자를 말리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려댔다. 근데 그쪽도 왜 그런 막말을 재수생에게 하는지 잘못이 있는거 아닌가요?-라는 말은 목구멍 안으로만 삼켰다.


“지수오빠 괜찮으세요?”

파국의 방아쇠를 당긴 건, 의외로 내가 아니라 단발머리 여자의 사근사근한 한 마디였다.


흥분한 남자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생긴 남자 유지수에 대해서만 관심갖는 단발머리 여자의 모습에 남자는 순간적으로 욱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화는 나에게로 번졌다.

“야, 넌 내가 진짜 가만 안둔다”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내 자리로 다가오려고 했다.


“그만하세요.”

유지수는 손으로 버둥거리는 남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남이 재수하던 말던 신경끄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유지수는 나의 손목을 잡아 끌고, 술집 밖으로 나섰다.

우리는 역 앞까지 뛰었다.



“놀라셨죠?”


“아.. 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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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픈채팅은 하는게 아니였어..’


술집에 있는 동안 별 생각을 다했다. 1시간 남짓한 시간이였지만, 잘못하면 모르는 남자한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아까는 몸이 떨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벌벌 떨렸다.


“오픈채팅은 바로 나가세요. 아 나가셨나?”

“네..”


욕으로 도배되었을 것 같은 오픈채팅방은 의외로 채팅이 없었다. 지도 쪽팔렸나?


“제가 할말은 아니지만.”

“네?”

“오픈채팅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지하철 역 앞, 붉은 조형물이 있는 자리. 환하게 비치던 조명 아래에서 남자가 말하는 장면이, 대사는 별로지만 어째선지 마음이 떨려왔다.


“그래도 아깐 고마웠어요. 저 때문에 그렇게 얘기한거죠?”

“...”


저도 재수생이여서 그래요-라는 말을 삼킨 채,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지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던 것 반. 주저리 주저리 말을 하기에는 몸이 너무 놀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갈까요.”


우리는 지하철 개찰구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원래는 지하철 역사가 큰 곳이였지만, 오늘따라 길이 짧게 느껴졌다.


이대로 이 남자를 보내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순간적으로 떨렸던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번호 주실 수 있나요?”

살면서, 대놓고 대시하는 건 처음이였다.


ㅡ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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