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0일.
우리는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기어코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살기로 했다.
이 날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그해 12월, 종합검진으로 남편의 암 선고를 받았다.
종합검진을 받게 된 것은 회사 복지였다.
연말을 맞이하여 전 직원에게 종합검진 비용을 지원해줬다.
우리는 함께 종합검진을 받았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까지 진행했다.
나는 서른 살에 난생처음 받아보는 종합검진이었고,
동갑인 남편은 이십 대 때 한번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종합검진 옷을 입고 여러 사람 가운데 섞여 차례차례 검진을 받았다.
그러다 목 부분 갑상선을 검진하는 곳에서 남편에게 추가 검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음파로 봤을 때, 종양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무엇인지는 추가 검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명 세침검사.
남편은 추가 검진 예약일자를 잡고
다시 방문하였다.
목에 가느다란 바늘을 넣고 흔들어서 조직을 떼내 검사하는 방법이다.
아팠다고 한다.
나는 그때 회사에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들어. 암일 가능성이 높데."
무슨 생각으로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대답했다.
"응.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별일 아니네. 조심히 회사 들어와요."
나는 바로 온라인으로 교보문고에 접속했다.
'갑상선암'
200개가 넘는 책들이 검색되었다.
이 중 가장 많이 판매된 3개의 책을 바로 구매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의가 들려주는 갑상선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박정수 교수의 솔직담백 갑상선암 진료일지 (반디출판사)
갑상선암 100문 100답(국립암센터)
남편이 암일 거라도 상상한 적도 없다.
남편은 누구보다 건강했다.
매일 헬스장에서 두 시간씩 운동했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도 아니다.
술, 담배도 모두 끊었다.
그런데 남편이 암이라고 하는데도 놀랍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라는 생각과
뭔지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이 도착했다.
아무 말 없이 내가 먼저 3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서 남편에게 "이 책 볼만하다. 한번 봐봐."라고 하면서 박정수 교수님의 책을 건넸다.
박정수 교수님은 우리나라 갑상선암에 있어서 1인자이시다.
EBS '명인'에도 출연하셔서 더 유명해지셨다.
당시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계셨는데,
인기가 대단하셔서 수술 일정 잡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책을 읽은 남편은 강남 세브란스에 연락하여 박정수 교수님 진료 예약에 성공했다.
우리는 그 어떤 빽도 없다.
원무과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절실했고, 마음이 통했다.
2019년 1월 29일,
갑상선암 수술을 위해 그는 입원했다.
아래로 내려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입원을 해서도 우리는 심각하지 않았다.
장난치고 웃고 농담을 했다.
갑상선암은 일명 '거북이암'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갑상선암을 위한 카페 이름이 '거북이카페'다.
빠르게 자라지 않고 오랫동안 천천히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기 발견이 어렵다.
그래서 발견될 때에는 이미 꽤 자라 있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암도 많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어디까지 전이가 됐을지는
직접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수술을 기다리면서도 울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펑펑 우는 나인데.
수술이 거의 끝날 시간이 되어도
남편이 나오지 않아,
수술방 앞에 가서 기다렸다.
20분 정도 뒤에
아직 마취가 덜 풀린 채로 수술방에서
남편이 나왔다.
그는,
손으로 '따봉'을 했다.
다행히 전이가 심하게 되지 않았고,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하셨다.
2월 2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월 4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틀 전에, 암수술을 받은 사람이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
그의 몸 컨디션은 정말 안 좋았다.
그러나 2월 4일이 내 생일이었기에,
그는 미안했으리라.
그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때문에
나를 위해 일본에 가서 놀다 오자고 했다.
한 겨울, 추운 일본에서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목에는 수술 후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서 온몸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는 나를 위해 웃겨주는 사람이었다.
4월 8일, 항암 방사선 치료를 위해 다시 입원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던 4월 14일.
나는 우리의 단칸방에 작게 파티를 열었다.
그가 오길 기다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편의 암 선고 이후 근 5개월 만에 우리의 일상은 다시 평범해졌다.
나는 남편의 암 선고와 관련해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왜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울만한 일이 아니다.
별일 아니다는 것을
내 온몸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