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싶어서
우리반 수현이가 달라졌다. 좋은쪽으로이면 좋겠지만 그 반대다. 분명 약을 먹고 있다고 했는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꽤나 매섭다. 학급에서 매일 이 아이를 보다보면 크게 매서운 눈빛으로 날카롭게 대드는 때, 수용하는 눈빛으로 혼잣말하듯 불만을 중얼거리는 때, 모든 관계에서 부드러울 때 등으로 아이의 행동이 보일 때가 있다. 첫번째는 약을 안먹고 온 날이고, 두번째는 약을 먹었지만 약을 이기고 있는 상황이며, 세번째는 약을 잘 먹고 효과가 뚜렷할 때이다. 아이의 눈빛만 봐도 내 온 몸이 안다. 신기하게도 돌봄 선생님도 아시고 "오늘 수현이 약 안먹었죠? 쳐다보는 것이 사나운데?" 라고 물어보신다.
그런 수현이가 아무리 약을 이긴다고 해도 2학기 들어서 친구 몸에 손을 대거나 친구를 밀거나 때리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라졌던 문제행동이 최근 몇 일간 집중적으로 보이는거다. 나에게 대드는 부분은 내가 일대일로 어떻게 하겠는데 친구랑 말다툼하다 일방적인 몸 다툼을 시작하니 어머님께 연락드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는데 돌아오는 어머님 목소리가 안좋았다. 지쳐보이고 힘들어 보였다. 매일 집에서 장애가 있는 언니 물건을 손대는 건지 언니도 수현이 때문에 미치려고 하고 수현이는 장애가 있는 언니랑 사는게 싫고 양쪽에서 매일같이 싸움이 터져서 어머님이 아주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머님께 수현이가 매일 약을 먹고 오는지 물었다. 어머님은 약 봉투를 뜯어서 아이 손에 주고 아이가 먹은 것을 확인하고 학교를 보낸다고 하셨다. 어떻게 돌려서 말씀드릴까 고민하다가 저희 학교에 수현이랑 똑같은 ADHD 약을 먹는 저학년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도 알약을 먹기 싫어해서 몰래 먹은 척 한다고 하더라, 그 아이 엄마는 눈 앞에서 아이 입에 알약이 들어갔고 꿀꺽 삼킨 후에 입 안을 살펴보기까지 하고 등교를 시킨다던데.. 혹시 수현이 입으로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셨냐고 물어봤다. 어머님의 지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머님이 기분 나쁘게 들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하기가 참 곤욕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내 민감함을 믿었고, 누구보다 가정에서 수현이의 행동을 많이 보시는 어머님의 경험을 믿었다.
수현이를 매주 상담하고 있는 학교 순회 상담 선생님과 수현이 어머님과의 협의 날짜를 빠르게 정했다. 지친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수현이 관련 협의를 겨울방학 전에 진행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상담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오신 날, 협의가 끝나고 나를 보러 1학년 교실에 들르셨다. 오시자마자 바로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전화 받고 내가 쌔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수현이한테 약을 주고 먹으라고 한 후에, 느낌이 뭔가 와서 다시 쓰레기통으로 다가갔거든요. 사실 쓰레기통은 너무 크고 수현이가 먹는 알약은 작은거 하나밖에 없어서 내가 뒤져본다고 해도 찾을 수도 없어요. 근데 내가 쓰레기통으로 다가가자마자 수현이가 달려오더니 버렸던 약 봉투를 꺼내면서 '어, 왜 약이 여기 들어있지? 내가 안 먹었나?' 하면서 약봉투 속에 그대로 들어있는 약을 뒤늦게 먹더라고요. 내가 정말....."
수현이는 약을 먹기 싫어서 약을 몰래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문제행동이 드러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어머님의 마음을 공감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머님, 엄마와 자녀의 관계는 서로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관계잖아요. 어머님은 수현이를 배 아파 낳지 않았어도 엄마로서 수현이를 항상 믿으신거예요. 딸의 행동을 일일이 의심하면서 거짓말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딸을 그냥 믿는 것. 이게 엄마니까요. 어머님은 엄마로서 수현이를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해오신 것 같아요. 많이 힘드시죠? 어머님이 가장 중요해요. 어머님이 지치지 않도록, 지치더라도 회복되시는 것이 먼저예요. 그리고 지금처럼 수현이 믿어주고 사랑해주세요. 수현이가 갑자기 안 좋은 행동이 나오면, 왜 그런지 원인을 찾아보고 의심해보고 고민하는 것은 학교에서 제가 할께요. 집에서 언니랑 감정이 격해져서 싸울 때도 그때는 올 스탑! 을 외치시고 지금은 서로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따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때 엄마한테 할 말 있는 사람은 와서 이야기하라고 잠시 중단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수현이는 분명 불안하거나 어머님한테 다시 사랑받고 싶어서 쭈뼛쭈뼛 다가가서 사실대로 말할 거예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은 시간을 버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님을 꼭 안아드렸다.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도 마음 헤아리기 어렵고 힘든데, 알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 7살 때 처음만나 한 지붕 아래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오죽 힘들까 싶다. 그래서 아이를 맡아 키운다고 결심한 그 마음이 참 대단하고 고맙다. 방학까지 딱 한 달 남았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수현이가 해왔던 대로 살아왔던 대로의 삶을 살지 않고 당장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불편하더라도 평화와 애정이 가득한 일상이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상담심리에 관심이 있고 나름 책 찾아 공부하는 입장에서 학급의 아이들을 너무 행동주의이론에 입각해서만 생활 지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좋다. 격려하고 더 믿어주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은데 내 코가 석자라 소진과 방전을 거듭하다 학기 말까지 와버렸다. 돌아보면 한없이 후회지만, 이 아이 한번 잘 지도해보겠다고 열정 다한 나의 진심도 분명 있었기에, 아이를 위해 고민하기를 끝까지 놓지 않으며 2학년으로 잘 올려보내야겠다. 우리반은 인수인계 다른 것 필요없다. 생활지도적인 부분이 중요하게 인계드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