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대화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연휴와 주말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있기 때문에 함께 놀다가도 자주 쉬어줘야 한다. 그럴 때면 아이 스스로 그림을 그릴 때도 있지만 그보다 TV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기도 한데 휴일만큼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쉴 틈을 마련해 주고 싶어서 제약을 덜 두곤 한다. 그렇게 TV의 단맛을 쪽 빨아먹고 나면 그다음 날 여파가 찾아오는데 밤에 영화보다 잔 기억이 행복해서였는지 다음날 어린이집을 가야 해서 안된다고 말을 해도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영화보다 자자고 떼를 썼다. 나는 안된다고 하고 아이는 허락해 달라고 떼를 쓰는 레퍼토리가 지치고 지겨워서 어젯밤에는 반어법을 썼다. 그래. 네가 보고 싶다고 했으니 그럼 봐.라고 하면서 엄마는 안방에서 잘 테니 거실 큰 TV로 보다가 졸리면 스스로 끄고 들어와.라고 했다. 아이가 '엄마가 진짜로 말한 건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계속해서 표정연기를 하며 친히 안방문을 열어주고 보고 싶은 만큼 많~~~ 이 보고 오라고 손짓을 하며 말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역이용해서 하라고 꼭 보라고, 제발 보고 오라고, 반드시 보고 오라고 말하니 이제 아이가 울면서 안 나가겠단다. 왜 안 가?라고 하니 그럼 중독되잖아!라고 울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내가 그건 맞지. 하지만 네가 선택한 거잖아. 보고 싶은 거니까 어서 가서 보고와~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울면서 하는 말, "엄마 왜 거짓말해!!!" 재밌었다. 내가 반대로 말하는 반어법을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반어법이라는 단어는 몰라도 그 느낌을 본능적으로 알고 이건 아니지!라는 표현을 한 것이 신기했다.


한바탕 소란 후에 같이 누워서 조곤조곤 대화를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싫었어? 물어보니 싫었단다. 그럼 엄마가 '티브이 보지 마! 그럼 중독되잖아!라고 말려줬으면 좋겠어?'라고 하니 그렇단다. 대신에 화내지 말고 부드럽게 말해달라고...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마음에 있는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는 아이만의 요청인 것 같아서 5살의 최대 표현력에 감탄하며 쓰다듬어줬다. 아이와의 소통이 재밌었다.




아침에 전남편이 연락이 왔다. 딸아이의 어렸을 적 영상을 보냈는데 "이거 00 보여줘 봐. 재밌어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싶어서 출근하는 길에 차 속에서 보여줬는데 아이는 자신의 어버버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도 그보다 나와 전남편이 한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 웃으면서 대화하고 셋이 소통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친했어? 근데 갑자기 싫어했어?"라고 물어보는데 아, 자신의 아기 때 모습보다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게 더 신기했구나 싶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힝 나는 아빠 좋아하는데... 주니토니처럼 친하게 지내야지!"라고 했다. 평소 보는 유튜브 캐릭터 짝꿍들을 이야기할 줄이야... 딸이 좋아하는 엄마 아빠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 이 간단명료한 사실이 미안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숨기지 않고 사실을 담담하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엄마아빠가 지금은 서로 좋아하지 않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야.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끄덕였다.


정상가족이라는 형태는 없다. 하지만 부부의 일로 아이의 마음이 다치게 되는 상황은 여전히 미안하다. 아이의 결핍을 내가 다 채워줄 수는 없지만 내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기에 오늘도 그런 나를 다독이며 마음속 죄책감이 잘 흘러가도록 하고 싶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감정에 대해 배웠는지 며칠 전부터 계속 "엄마 지금 감정 어때?"라고 물어본다. "엄마는 우리 00이 만나서 지금 무지 행복해~! 00이는 감정이 어때?" 라고 하니, "나는 슬퍼. 00이가 놀려서."라고 답을 했다.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살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혼 후 새 삶을 시작하며 나 스스로 다짐했던 부분이었다. 내 마음이 다치고 아픈 줄도 모르고 남의 마음을 신경쓰기 바빴던 지난 날의 나를 생각하며, 안쓰러움에 이제라도 아이와 함께 연습하려고 한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책에 나온 구절처럼 나도 있지만 너도 있고, 너도 있지만 나도 있는. 그런 관계를 건강하게 이루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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