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마라톤을 달리고 있습니다(2)

함께 배우고 싶어서

by 소화록

(이어서)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이 두려웠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가슴이 답답했다. 책 <내면소통>을 쓰신 김주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세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교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나에게 소리 지르고 거친 말과 행동을 준 수현이를 향해 미소와 관심을 자연스럽게 줄 수가 없었다. 마음에 생채기가 제대로 생겼다. 오후가 되자 수현이가 다가오더니 “선생님. 그 어제 제가 그렇게 한 거 말이에요. 죄송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말을 더듬더듬 국어책 읽듯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선생님께 사과를 드려야 한다고 말을 한 것 같다. 교장감 선생님일까 수현이 어머님일까 궁금했다. 예상 밖의 고백에 놀라서 나 역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수월하게 넘어간 하루라 자리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데 교무실무사 선생님이 교실에 찾아왔다. “이거 학교에서 산 녹음기인데 쌤 필요할까요? 혹시 몰라서 대장 가져왔어요. “ 녹음기를 주고 가시며 “쌤, 힘내세요.”라고 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도 몰라주고 나 혼자 이 아이를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서러운데 알게 모르게 보는 눈 듣는 귀가 있고 수고를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몇몇 선생님들이 있어서 좋았다.


학교 행사로 인해 수현이의 상담을 못할 것 같아 순회 상담선생님께 안내하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며 수현이를 지도할 때 아이가 작은 일에도 극단적으로 반응하며 갈 때까지 끝까지 가려는 말 패턴이 습관화가 되어있는 것 같다고 우려의 마음을 나눴다. 선생님께서 "아휴, 정말 힘드시죠. 선생님이 수현이로 인해 혼란스러워하시는 것처럼 수현이도 어쩌면 더 혼란의 연속일 거예요.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 불빛하나 없는데 더듬더듬 앞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바른 행동에 대한 패턴이 없어요. 겉으로는 세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겁을 엄청 먹고 있을 거예요. 아이가 감정이 격동할 때는 최대한 짧게 훈육하는 것이 좋아요. 두 단어 이하로요. 그리고 나중에 잠잠해지면 그때 이야기해 보면 좀 더 들을 거예요. 최대한 선생님이 감정적으로 수현이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휴 이게 잘 되진 않죠 물론.... 그리고 수현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놀이에서 제외되는 거니 수현이가 문제행동을 보이면 그 순간 놀이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상황을 잡아나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어려운 친구니 이런 행동을 하면 너에게 이런 불이익이 있어. 친구들이 너를 싫어해서 같이 놀지 못한다거나, 놀이에 참여할 수 없다거나.. 직접적으로 수현이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되느냐 쪽으로 말씀하시면 좀 더 알아들을 거예요."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싶어서 둔 것이 아니라 하도 멘털이 탈탈 털려서 이제는 수현이가 어떤 문제 행동을 하고 어떤 식으로 나의 화를 돋워도 '앞에서 멧돼지가 난리를 부리는구나..' 담담하게 생각한다. '저러다 말 거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수현이를 당장 변화시키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예전에는 다른 친구들과 수현이가 갈등 상황이 생기면 교사인 내가 중재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지쳐서 갈등 상황이 생기면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으로 끝날 때도 많다. 변화시켜야 하고 해결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야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수현이는 이제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훈육의 상황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라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이 말 한마디면 된다는 표정이 듣는 이에게도 투명하게 느껴진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아가고 있고 나는 나대로 나아가는 중이다. 너와 내가 공존하기 위해 서로가 갈리며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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