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바보라면, 능동적 바보가 되자!
'무지(無知)의 지(知)'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나 스스로 '아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의 진의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대부분은 잘 모른다는 지적에 발끈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바보'라는 말에 격분했던 적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바보가 되면 안 되지?
제대로 모르는 천재보다는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겸손한 바보가 낫다는 사실을 이제 안다. 예전엔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상대방 없는 싸움에서 이유 없이 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배우는 것이 더 멋진 대처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고 있다. 대학교 때 배웠던 소크라테스의 격언이 이제야 내게 교훈을 주는 셈이다.
위의 문장은 소크라테스의 발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다. 당시 주류를 차지한 소피스트들에게 소크라테스가 모순점을 지적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하면서 답변자가 사실 제대로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문답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아이를 낳는 과정에 빗대어 이를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 이제 생각해보자. 우리가 아는 것 중에 '제대로' 아는 것이 몇이나 될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바보가 되기로 자처해본다. 그래도 그냥 바보 말고, 능동적 바보가 되련다. 바보는 바보지만, '바보로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끝없이 배워가는 사람',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능동적인 바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데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든다. 예컨대 대화를 하는 그룹에서 내가 모르는 경제 용어라던지 영어 단어가 갑자기 등장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아는 척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식은땀이 난다. 그런데 이때, 능동적 바보는 단순하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그게 무어냐고 말이다.
나의 질문에 상대방이 '이것도 모르냐'는 태도로 답변을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으니까. 여기서 능동적 바보의 태도로 가장 중요한 것이 등장하는데, 바로 한 번 배우면 잊지 않고 곱씹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곱씹는다는 것은 내가 이 지식을 소화시키는데 나의 사고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나 스스로 떳떳해질 수 있는 것이다.
회사생활 업무도 이와 비슷한데, 입사 초에는 실수가 두렵고 혹시 혼날지 몰라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선임에게 항상 '아는 척'을 하곤 했다. 그런데 결국 그게 나중엔 눈덩이처럼 불어 더 큰 재앙으로 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정말 소크라테스의 격언이 얼마나 옳은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리고 이에 더해서 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산파로서 내 주위에 끝없이 질문해줄 소크라테스 역할을, 스스로 담당해서 내가 진짜 제대로 아는지 계속해서 질문해보자. 그렇다면 능동적 바보로서의 삶도 멋지지 않은가!